짱구네 고추밭 소동

짱구네 고추밭 소동

권정생 | 그림 김용철 | 길벗어린이
(발행 : 2021/03/25)


“짱구네 고추밭 소동”은 1991년에 출간된 동명의 권정생 선생님 동화집에 수록된 단편 동화가 원작입니다. 함께 수록된 열일곱 편의 동화 중에 2001년 단행본 그림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황소 아저씨”도 포함되어 있어요.

2021년 김용철 작가의 그림 옷을 입고 그림책으로 탄생한 “짱구네 고추밭 소동”, 불의 앞에 절망하거나 순응하지 않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이들의 용기를 의인화한 고추를 통해 통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보듬어 가며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던 권정생 선생님의 목소리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짱구네 고추밭 소동

상수리나무 비탈 산등 너머에 짱구네 고추밭이 있어요. 짱구 엄마와 누나가 이른 봄부터 구슬땀 흘려가며 부지런히 고추 농사를 지었어요. 그 정성 그대로 고추들이 무럭무럭 자라더니 이내 고추 꽃 핀 자리마다 아기 고추들이 조랑조랑 맺혔습니다.

연한 초록색이던 고추들은 이내 진초록빛으로 변하더니 차츰 빨간색으로 변했어요. 빨간 색깔로 변한 고추를 권정생 선생님은 ‘가슴으로부터 곱게 나타나는 마음 빛깔’이며 ‘티 하나 없이 새빨갛게 불꽃처럼 타는 마음 빛깔’이라 표현하셨어요. 정직과 정성의 땀방울로 빚은 색, 한치의 거짓이나 꾸밈없는 완벽한 빛깔입니다.

근처만 가도 코가 아리고 눈이 쓰릴 만큼 매운 냄새 풍겨가며 고추들이 새빨갛게 익어갈 무렵, 밤마다 고추 도둑들이 남의 밭 고추를 통째로 훔쳐 간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노심초사 마음 졸이던 고추들은 짱구네 엄마가 내일 고추를 따들여야겠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안심합니다.

자란다는 것, 그리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 그 열매가 주인의 손으로 거둬지는 것은 가슴이 터질 만큼 즐거운 일입니다.

짱구네 고추밭 소동

하지만 수확을 하루 앞둔 날 밤, 짱구네 고추밭에 수상한 그림자가 숨어들었어요. 그림자는 재빠르게 손을 놀려 큼직한 자루에 무자비하게 고추들을 쓸어 담았어요. 순식간에 짱구네 고추밭은 텅 비어버렸답니다.

‘무엇이나 심은 사람이 거둬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던 고추들, 이대로 영영 도둑놈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까요?

고추를 몽땅 쓸어 넣고 재빨리 도망치는 도둑, 그런데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예요. 고흐의 밤하늘을 닮은 짙푸른 하늘이 커다란 무게로 도둑을 압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둑은 어둠을 틈타 숨어들었지만 온통 어둠뿐일 거라 생각한 밤하늘에도 별들이 저마다 빛을 내며 이들을 비추고 있어요.

자루 속 고추들은 이대로 끌려가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다 함께 ‘영차! 영차’ 소리치며 이렇게 말했지요.

“불의와 싸우자, 싸우자!”

고추들이 몸부림 치자 자루가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어요. 도둑은 땀을 비죽비죽 흘리며 간신히 어두운 비탈길을 내려갔어요. 때맞춰 나타난 들쥐 한 마리, 도둑이 얼결에 한 발짝 물러나며 발을 헛디디면서 이끼 낀 바위에 ‘꽝!’하고 부딪쳤지요.

짱구네 고추밭 소동

그 순간 굉장한 소리를 내며 폭발한 고추 자루! 하늘 위로 날아올랐던 짱구네 고추들은 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어요. 짱구네 고추가 자루에서 해방되는 소리에 모두 함께 환하게 웃습니다. 가슴 밑바닥까지 시원해집니다. 새빨간 고추들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아름다운 여름밤입니다.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의 세계를 확장하고, 이야기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 새 생명을 불어넣는 김용철 작가의 그림이 살아서 꿈틀 꿈틀 움직이며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어요. 상수리나무며 비탈 산등성이, 오솔길, 밤 하늘 별들… 구불구불 움직이는 듯 그린 선들이 편안함을 보여주고 있고 또 강렬한 색상으로 이야기 속 감정과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짱구네 수다쟁이 고추들의 가지각색 표정을 보는 재미까지 놓치지 말고 꼼꼼히 살펴보세요.

모두 함께 웃고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단결된 힘을 이야기하는 “짱구네 고추밭 소동”, 세상을 바꾸는 건 행동입니다. 무섭다고 움츠리고 숨어버리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선동하고 억누르는 이들에게 그저 꺾이고 짓밟히고 채일 뿐이겠지요. ‘영차!’라는 말, 참 좋아요.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함께의 힘이 필요할 때 우리 모두 함께 외치는 말 영차! 위기의 순간마다 한목소리로 영차!를 외치며 지금 여기까지 달려온 우리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꿈꾸던 세상을 향해 우리는 계속 힘차게 나갈 겁니다.

영차 영차 소리치며 우리 모두 함께!


※ 1991년 동화집 “짱구네 고추밭 소동” 초판이 출간된 이후 2002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권정생 선생님은 새로 쓴 작가의 말에 이런 소회를 남기셨습니다.

작품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 보니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습니다. 참 부끄러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짱구네 고추밭 소동’, ‘새들은 날 수 있었습니다’를 읽고 이 작품을 쓸 때의 군사 독재가 얼마나 힘들었나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아이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이야기여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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