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효자
책표지 : 이야기꽃
호랑이와 효자

그림 백성민 | 글 김장성 | 이야기꽃

가온빛 추천 그림책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옛날 이야기하면 호랑이를 빼놓을 수 없죠. 때로는 엄마를 잡아 먹은 못된 놈으로, 때로는 곶감이 무서워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쳐대는 멍청한 놈으로, 그리고 어떤 때는 호되게 무섭고 엄한 표정으로, 어떤 때는 다정다감한 형제의 모습으로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 속에 단골로 등장하던 호랑이.

오늘 함께 볼 그림책 “호랑이와 효자”에 나오는 호랑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호랑이와 효자

옛날 북한산에 자리잡고 사는 커다란 호랑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산의 임금’이란 뜻으로 ‘산군’이라 불렀습니다. 산군 호랑이는 북한산 위에 점잖게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보곤 합니다. 누가 산과 물을 더럽히는지, 누가 누구를 속이고 누구를 괴롭히는지 호랑이는 다 보고 있었습니다.

호랑이와 효자

그런데 얼마전부터 산군 호랑이의 눈에  들어온 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서울 사는 박태성이란 젊은이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무악재를 넘고 박석고개를 넘나드는 이 젊은이에게 호랑이는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옛날에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삼 년동안 무덤 앞에 움막을 짓고 살며 산소를 돌보는 ‘시묘’라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박태성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어려서 하지 못했던 시묘 살이를 뒤늦게 시작한 겁니다. 아버지 산소 앞에 지은 움막에서 기거하며 제대로 시묘 살이를 하고 싶지만 자신만을 바라보며 사시는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매일같이 북한산 북쪽에 있는 산소와 서울 집을 오가며 시묘 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성을 다해 시묘 살이를 하는 박태성의 정성을 산군 호랑이는 기특하게 여겼습니다.

호랑이와 효자

그러던 어느 겨울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던 저녁 산군 호랑이는 박태성을 걱정하며 그가 오가는 길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날이 험한 날은 쉬는 게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박태성은 어김없이 나타났고 눈길을 뚫고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산군 호랑이가 걱정스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박태성은 눈보라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호랑이는 한 걸음에 달려가 박태성의 얼굴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 깨운 뒤 자신의 등에 태우고 아버지의 산소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호랑이와 효자

그 뒤로 사람들은 날마다
박태성을 등에 태우고 북한산을 넘나드는
호랑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군이 정성을 알아보았구나!”

그 날 이후 호랑이는 박태성이 시묘를 마칠 때까지 늘 그의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호랑이에게 기댄 채 잠이 든 박태성이 참 편안해 보입니다. 말 없이 자신의 등을 내어 준 호랑이에게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가족을 돌보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호랑이와 효자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박태성도 늙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살아생전 그가 늘 바라던 대로 박태성은 아버지의 산소 가까이에 묻혔습니다. 그의 장례를 마친 날 밤 박태성의 무덤 쪽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는 호랑이의 울음소리 덕분에 사람들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해요.

효자 박태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장들과 긴 상여 행렬을 내려다 보는 북한산, 저기 어딘가에서 산군 호랑이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 행렬을 지켜보고 있겠죠. 상여 행렬에 흐르는 만가가 북한산 골짜기마다 잔잔히 울려 퍼지는 듯 합니다. 커다란 날갯짓으로 하늘 위로 날아 오르는 학 한 마리. 살아서는 산군과 친구처럼 지내던 박태성이 죽어서는 학이 되어 저기 구름 위 어딘가 신선들이 노니는 곳으로 날아가는 것 아닐까요……

다음 날 아침 박태성의 무덤 앞에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엎드려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박태성의 무덤 곁에 묻어 주었대요. 지금도 고양시 효자동 북한산 자락에 가면 박태성과 호랑이의 무덤을 볼 수 있답니다.

“호랑이와 효자”의 이야기를 쓴 김장성 작가는 전통사회의 수직적인 도덕윤리로 여겨지는 ‘효’가 부모와 자식 간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으로 다시 해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호랑이와 박태성을 오래도록 가까이서 지켜본 이가 옛 시절을 회상하며 들려주는 듯한 정감 깊은 글체가 그림책을 읽는 내내 편안함을 줍니다.

호랑이와 효자

이제 우리 땅에서는 호랑이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알까요? 어느 추운 겨울날, 박태성 같은 이가 산에 오르면 커다란 호랑이가 불쑥 나타나 방석 같은 등을 쓱 내밀지……

백성민 화백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죠. 객주, 장길산, 싸울아비, 토끼, 삐리, 장산곶매 등 아마도 저와 연배가 비슷한 아빠들이라면 그의 만화는 거의 빼놓지 않고 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호랑이와 효자”의 그림 한 장 한 장에서도 느껴지듯이 백성민 작가의 그림엔 우리의 강산과 얼, 그리고 우리 민족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누가 숲을 헤치고 누가 물을 더럽히는지, 누가 누구를 속이고 누구를 괴롭히는지 산 위에 점잖게 앉아 세상을 굽어 보고 있는 산군 호랑이. 이런 호랑이를 그리워하는 백성민 화백과 김장성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보통은 ‘효자와 호랑이’라고 붙였을 제목도 “호랑이와 효자”라고 호랑이를 앞에 둔 것 역시 우리 모두 호랑이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일 겁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억울한 이 하나 없는 살기좋은 세상에 대한 그리움 말입니다.


백성민 화백의 블로그 ‘광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