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새
책표지 : 길벗어린이
검은 새

글/그림 이수지 | 길벗어린이


오늘 함께 볼 그림책은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검은 새”입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여자 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울고 싶어요.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는걸요.

반쯤 열린 문틈으로 엄마 아빠가 다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더라도 엄마 아빠 사이에 흐르는 냉랭한 분위기를 우리 아이들은 기가 막힐정도로 예리하게 감지해낸다는걸 아이 키우는 분이라면 다들 공감하실겁니다. 아이가 난데 없이 울어대는 통에 본격적인(?) 부부싸움은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버리는 경험들 한두번씩은 있을테니까요.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아이 나름대로의 해법이겠죠 ^^

사실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소통과 이해의 방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 속의 여자 아이가 울고 싶은 이유는 엄마 아빠가 다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 자신만 소외되어 있는 듯한 기분때문인건 아닐까요?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왜 그러는거예요?”하고 분쟁 속에 비집고 들어가 보려 하지만 ‘넌 저리 가서 놀아!’하며 내밀리고 만 아이에게 느껴지는 소외감은 늘 자기가 활짝 웃어 주거나, 엄마 아빠 뺨에 뽀뽀를 해 주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줄로만 알고 지내던 아이가 처음으로 느끼는 무기력함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존재를 외면하는 엄마 아빠에게서 밀려난 아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다투는걸까? 그래서 나더러 저리 가라고 한건 아닐까? 저러다 엄마랑 아빠가 화해하지 않으면 어쩌지?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면 난 어떻게 되는걸까?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한 아이의 눈에 검은 새 한마리가 눈에 들어 옵니다. 종종거리며 걷기도 하고, 이리 훌쩍 저리 훌쩍 잠깐잠깐씩 날아 오르기도 하며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로이 놀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부러워집니다.

나도 너처럼 멋진 날개가 있었으면……

그 순간 갑자기 커다란 새로 변해서 아이를 내려다 보는 검은 새. 검은 새에게 매달린 채 하늘 높이 날아 오른 여자 아이. 처음엔 검은 새의 부리에 매달린 채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끌려 올라 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잠시 후 여자 아이는 검은 새의 등에 올라 자신이 꿈꾸던 하늘 높이 거대한 새를 몰아 가는 듯 합니다.

점점 더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것에 익숙해지는 여자 아이. 귓가에 들려 오는 바람의 속삭임에 여자 아이는 주춤 주춤 일어서려고 합니다.

바람이 나에게 속삭여요.

가볍게 하나, 둘, 셋!

신호에 맞춰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다시 한번 비상하는 순간 여자 아이는 검은 새에게 매달린채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날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은 새와 바람과 함께 아주 멀리, 자기가 좋아하는 바다까지 날아가게 됩니다.


이 책 이전에 접했던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들은 모두 ‘경쾌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작가가 ‘경계 그림책 3부작’이라고 표현한(“이수지의 그림책 –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림책 삼부작”) ‘거울 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세권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경쾌함을 이 책 “검은 새”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물론, 검은 새와의 비상으로 아이의 절망이 ‘희망’까지는 아니어도 아이에게 드리워졌던 어둠을 걷어 낼 수는 있었지만 다른 책들에서의 경쾌함을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경계 그림책 3부작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거울 속으로”, “그림자 놀이”, “파도야 놀자”

위 그림들에서 보듯이 경계 그림책 3부작 모두에서 여자 아이의 유희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의 느낌은 바로 ‘경쾌함’ 그 자체입니다. 실재와 거울 속의 상 두 아이의 즐거움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현실과 그림자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두가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며 하나가 되는 순간, 주저하며 넘지 않던 자신과 파도 사이의 경계를 뛰어 넘어 간 아이가 신나게 파도를 빵빵 차대는 순간 모두 여자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경쾌해 보입니다.

하지만, “검은 새”의 여자 아이는 하늘 높이, 바다 멀리 비상하며 절망을 털어내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나는 순간이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그리고 강아지로부터 반갑게 환영 받는 순간… 어느 장면에서도 아이의 표정을 경쾌하다고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마도 ‘경계 그림책 3부작’에서의 여자 아이는 천진무구함 그 자체인데 반해 “검은 새”의 여자 아이는 성장통을 겪고 난 후 그만큼 자라난 아이를 표현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검은색만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는 유주연 작가의 “어느 날“과 아주 비슷한 톤을 보이지만 빨간 전각으로 표현 된 “어느 날”의 작은 새가 ‘희망’을 안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날아 오른 것과는 달리, “검은 새”의 소녀는 ‘절망’을 안고 ‘위로와 마음의 평화’를 찾아 비상을 합니다.

어느 날
“어느 날” –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선 작은 새

그림책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어보는 것은 여러모로 이점이 많아 보입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눅눅하고 되살리기 싫은 기억을 다시 꺼내서 바람을 쐬어주고 볕을 쬐어주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성장의 자양분으로 변해있는 걸 느끼게 됩니다.

마이클 로젠의 “내가 가장 슬플 때“가 어설프게 치유나 새로운 희망 따위를 담지 않고 오로지 슬픔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비통함에 젖어 있는 작가 자신과는 달리 보는 이들에게는 그 슬픔을 넘어서기 위한 작은 촛불을 건네 주는 그림책이라면, 이수지의 “검은 새”는 마이클 로젠과는 조금 다른 슬픔을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다룸으로써 희망을 담아낸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거울 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 놀이,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 등에 이어 아이들의 마음 속에 담긴 것을 그려 내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이수지 작가를 따를 사람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종지부를 찍게 만드는 그림책 “검은 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