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딱따구리의 선물

청딱따구리의 선물

글/그림 이우만 | 보리
(발행 : 2016/11/1)

2016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몇년 전 조용한 숲길을 걷다 우연히 딱따구리가 집을 짓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단단한 생나무를 한차례 쪼고 나면 그 반동 때문인지 머리가 잘게 흔들리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따다다그르르륵 따다다그르르륵 청아하고 맑은 소리를 내면서 나무를 쪼고 있어 딱따구리란 걸 알았지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바로 옆에서 보고도 무슨 새인지 절대 몰랐을 거예요.

“청딱따구리의 선물”은 초록으로 가득한 숲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맑고 청아한 느낌이 그림책 속 가득 들어있는 세밀화로 그린 생태 그림책입니다.

청딱따구리의 선물

숲 속 새들이 둥지를 짓느라 바쁜 유난히도 더운 어느 봄날이었어요. 커다란 아까시나무에 둥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에 부지런히 구멍을 뚫던 청딱따구리는 몹시 목이 말랐어요. 청딱따구리는 엊그제 내린 빗물이 조금 고여 있는 골짜기 아래 움푹 팬 바위틈을 찾아갔어요.

청딱따구리의 선물

날이 가물어 다른 물웅덩이는 물이 모두 말랐지만 이곳은 빗물이 조금 고여 있었어요. 겨우 목을 축일 만큼만 남아있는 물을 할짝할짝 마신 청딱따구리는 물을 마신 후 바위 틈 주변 마른 낙엽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마침 물을 먹으러 온 물까치가 자신의 차례라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지만 청딱따구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틈에 낀 큰 돌들도 치우고 젖은 흙도 파헤쳤어요. (그나저나 물까치 빛깔이 어쩜 저리 고울까요? )

청딱따구리의 선물

한참을 이렇게 하다 보니 청딱따구리가 파헤친 자리에 물이 조금씩 스며들면서 아주 작은 물웅덩이가 생겨났어요.

청딱따구리는 작은 물웅덩이에서
깃털에 물을 적셔 더운 몸을 식히고
부리에 물을 묻혀 날개를 씻었어요.

목욕을 마친 청딱따구리는 나무에 올라 물기를 털어내고 날개깃을 정성스레 다듬고는 자신의 둥지로 날아갔습니다. 물 한 모금으로 마른 목을 축이고 자신이 만든 물웅덩이에서 시원하게 목욕까지 마친 청딱따구리, 땀에 젖어 열심히 일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커다란 기쁨을 맛보지 않았을까요? ^^

청딱따구리의 선물

청딱따구리의 행동이 숲 속 친구들을 생각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목만 겨우 축일 물밖에 없던 곳에 의도치 않게 작은 새들이 몸을 담글만한 멋진 목욕탕이 생겨났어요. 그 작은 물웅덩이에 박새도 찾아오고 쇠박새도 찾아옵니다. 울새, 뱁새 무리, 곤줄박이도 찾아와 즐겁게 목욕을 하고 떠나갑니다.

새들은 더운 몸을 식히고
소중한 깃털을 깨끗이 씻을 수 있어서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청딱따구리의 선물

드디어 둥지를 완성한 청딱따구리가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가 빠꼼 고개를 내밀어 숲을 내려다 보고 있네요. ^^

청딱따구리는 알고 있을까요?
자기가 욕심껏 만든 물웅덩이가
숲속 작은 새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되었다는 것을요.

즐겁게 목욕하던 새들은 알았을까요? 자신들에게 작은 목욕탕을 선물해 준 이가 다름 아닌 청딱따구리였다는 사실을요.^^

이 이야기는 새들이 물을 마실 만한 곳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가뭄이 몹시 심했던 2015년 봄, 등산로 근처에서 직접 이우만 작가가 관찰했던 풍경을 그대로 그림책에 담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새들에게 양보를 하지 않는 청딱따구리가 얄미웠지만 청딱따구리의 특별한 행동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흥미로운 장면들을 보면서 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는 이우만 작가. 세밀화로 차분하게 그려낸 그림 속에서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어디 우리 인생만 각본 없는 드라마일까요. 무심코 지나치는 자연 속에도 이렇게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담긴 깔끔하고 멋진 이야기 한 편이 숨어있다는 사실! 한겨울, 아직은 한참이나 남은 따사로운 봄, 싱그러운 초록 잎이 숨 쉬는 봄 숲, 그 속에 어울려 살고 있는 생명들의 소리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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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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