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안녕
책표지 : 글로연
귀신안녕

글/그림 이선미 | 글로연
(발행 : 2018/07/28)


그림책 제목이 잘 보이지 않아 겉표지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푸른 톤 겉표지 위에 다른 색을 쓰지 않고 투명 코팅만으로 제목을 표시한 점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형광등 빛에 반사된 제목도 독특해요. “귀신안녕”, 제목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한껏 살린 표지 디자인이에요.

여름밤 귀신 이야기, 오싹오싹 움찔움찔하다 보면 무더위가 저 멀리 싹 달아나려나요, 아니면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느라 땀 뻘뻘 흘릴 고난의 밤이 되려나요. 예기치 않게 툭 튀어나온 전설의 고향 납량특집 예고편 때문에 밤새 이불을 뒤집어썼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저는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귀신에게 안녕이라니, 인사를 건네는 걸까요? 작별을 고하는 걸까요?

귀신 안녕

이불속에 들어가 빼꼼 눈만 내놓고 있는 아이, 누가 보아도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아이는 나지막이 고백을 해요.

깜깜한 밤이 오면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들이라면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도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라면 이 상황만 보고도 왜 그런지 단번에 이유를 알아챌 테고요. 깜깜한 밤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귀신 때문에 아이는 화장실도 갈 수 없고 물을 마시러 갈 수도 없어요. 그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꾹꾹 참아야 할 뿐이죠.

귀신 안녕

아이는 밤을 ‘깜깜한 밤’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림책의 배경은 깜깜한 밤을 푸른 톤으로 표현했어요. 그저 일괄된 똑같은 푸른 톤이 아니라 푸른색의 농도를 달리해서 더욱 으스스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 위에 하얀 선만 사용해 단순하게 그린 그림은 이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게 만들어요. 글자 역시 독특해요. 발 없는 귀신이 동동 떠있는 것처럼 글자의 아랫부분 절반은 희미하게 표현해 그림과 함께 공포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글자에서 으흐흐흐하는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아요.

공포를 이기지 못해 이불속에 꽁꽁 숨어버린 아이, 매일 밤 너무너무 힘들다는 아이의 하소연은 너무나 절박해 보입니다.

귀신 안녕

하지만 이대로 영원히 숨어 지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씩씩하게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이렇게 말했죠.

잠깐!
그런데 나는 왜 귀신이 무섭지?

여지껏 귀신은 무섭다고만 생각하고 매일 밤 괴로워했던 아이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왜일까?’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그와 동시에 아이 침대맡을 맴돌던 귀신은 어느새 스르르 사라지고 없네요. 엄마 아빠에게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아이들의 ‘왜?’ ^^, 무섭다고 숨어있기만 했던 아이의 호기심이 발동되었습니다.

아이 방 가구들은 불 꺼진 방에서 짙푸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요. 불을 끄고 보면 실제보다 훨씬 무섭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죠.

귀신 안녕

아이는 의문점을 하나하나 따져보기 시작했어요. 귀신의 뾰족하고 긴 손톱 때문에 무서운 건지 길게 풀어헤친 머리 때문에 무서운 건지. 아이는 상상 속에서 그 무서움의 실체를 따라가며 직접 귀신과 마주합니다. 귀신에게 다가가 긴 손톱을 잘라주고 풀어헤친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주었어요. 귀신은 얌전히 돌아앉아 아이가 하는 대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귀신과 아이가 아니라 흔한 자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아이는 숨을 크게 쉬고 용기 내어 귀신과 마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돌아앉아있는 귀신에게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아이가 양갈래로 묶어놓은 머리 때문인지 귀신은 더 이상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 살금살금 다가가는 동안 주변의 어둡고 음침했던 푸른색은 서서히 밝은 빛이 돌면서 환해지기 시작합니다.

귀신 안녕

드디어 얼굴을 드러낸 귀신, 아이랑 꼭 닮았네요. 실체가 완벽히 드러나고 나면 오히려 두려움의 크기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아이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두려움을 떨쳐내자 귀신은 풀이 죽고 말았나봅니다. 빙긋 웃는 아이와 달리 샐쭉해진 귀신 표정 보세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니…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아이가 귀신에게 귀신놀이를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한밤 중 귀신과 친구가 되어 함께하는 진짜 귀신놀이, 이거 정말 흥미진진해 보이는데요. ^^

귀신 안녕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는 귀신이다’하고 달려드는 아이에게 귀신도 ‘내가 진짜 귀신’이라고 위협을 해봅니다. 하지만 이미 진짜와 가짜가 불분명해졌어요. 그러니 별 수 있나요. 귀신이 사라지는 수밖에.

얼핏 보면 누가 귀신이고 누가 아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요. 힌트는 치마 아래 다리뿐!  :mrgreen: 스르르르 귀신은 줄행랑치고 아이는 아쉬운 눈빛으로 귀신을 따라갑니다. 귀신은 어디로 갔을까요? 어딘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찾아 떠나지 않았을까요?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난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어요. 침대에 누워 빙긋 웃으면서 아이가 말합니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이야.

그저 깜깜하기만 했던 밤은 이제 아이에게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이 되었습니다. 시종일관 귀신처럼 절반만 선명하게 보이던 글자는 마지막에서 완벽하게 선명해졌어요. 어제와 똑같은 밤인데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푸른 어둠에 잠긴 아이 방은 오롯이 아이가 주인인 방이 되었습니다.

푸른 톤으로 사랑스러운 귀신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선미 작가는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을 오마주해 이 그림책의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한 느낌이 마크 로스코의 작품의 느낌과 아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그림책 전체를 푸른 톤으로 유지하면서 농도와 밀도를 달리해 개성 있게 표현한 그림, 글자의 배열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독특한 느낌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책 “귀신안녕”. 이 그림책에서의 ‘안녕’은 귀신에게 용기 있게 다가가며 건네는 인사이면서, 두려움을 멀리 밀어내고 귀신에게 영원히 작별을 고하는 인사입니다. 마법의 주문처럼요. 그나저나 이렇게 귀엽고 마음 여린 귀신이라니, 아이들이 앞다투어 귀신과 친구하고 싶다 말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두려움을 느낀다고 주눅들 필요 없답니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에서 시작되니까요. 두려움의 실체를 직접 마주하고 바라보고 나면 더욱 단단해지고 커져있는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림책 속 아이처럼 말이죠.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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