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 적 무더운 여름의 핫한 키워드는 뭐니뭐니해도 ‘납량특집’과 ‘전설의 고향’이었죠. 전설의 고향이 시작되면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 앉아 숨 죽인 채 브라운관에 빠져들었다가 다 보고 나면 밤새 후회했던 기억이 선명해요. 밤새 떠오르는 무서운 장면들 때문에 무더위에도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들었던 기억,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 간신히 잠들었는데 한밤중 화장실때문에 깨어나 옆자리 곤히 잠드신 할머니를 낮은 목소리로 흔들어 깨우던 기억, 할머니 역정에 괜스리 미안해서 다시는 전설의 고향 따위 보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던 기억들,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편의 납량특집들을 보다 보면 어느새 여름방학은 끝나가고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던 기억들…

아이들에게 무섭고 어두운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괜찮을까 생각하시는 부모님들도 있는데요. 오싹한 옛이야기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선과 악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무의식 속에 감춰져 있는 부정적이고 나쁜 모습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해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너무 무서워 한다면 억지로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어느 연령대가 되면 또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 무서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거창하게 ‘여름맞이 납량특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짝 오싹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들 골라봤습니다. 아이들과 읽어보면서 어떤 책이 정말 무서웠는지, 아니면 시시했는지,왜 무서웠는지, 또 왜 안 무서웠는지, 아니면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는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눠보세요. 그리고 함께 나누고싶은 오싹한 그림책이 있다면 이곳에 소개해 주세요.


여우누이
책표지 : 사계절
여우누이

글/그림 김성민, 사계절

여우누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오싹한 이야기로 기억이 됩니다. (‘내다리 내놔~’와 쌍벽을 이루는 무서운 이야기였어요.^^) 전설의 고향에서 여우누이편을 해줄 때면 무섭다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궁금해져서 손가락 사이로 찔끔찔끔 여우누이를 봤던 기억이 선하네요.

여우누이

옛날 어느 마을에 큰 부잣집이 있었습니다. 부잣집 부부는 아들만 셋이 있었는데 예쁜 딸을 하나 갖는게 소원이었답니다. 그래서 딸 하나만 낳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어 예쁜 딸을 낳았어요. 그런데 딸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이상하게 밤마다 가축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밤새 무슨일이 있는지 지켜보라고 시키는데, 첫째와 둘째아들은 졸음을 못이기는 바람에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지 못했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던 막내 아들이 누이동생이 말의 간을 빼먹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여우누이

그런데 아버지에게 지난 밤 본 끔찍한 광경을 그대로 이야기를 한 셋째 아들은 누이를 시샘한다며 집에서 내쫓기고 말아요. 결국 집을 떠나 멀리 가서 살게 된 셋째. 하지만 자꾸만 집 생각이나 한번 가보겠다하자 셋째의 색시는 노란 병, 파란 병, 빨간 병 세개를 위급할 때 쓰라며 남편에게 건네 줍니다.

오랜만에 돌아 온 집은 다 쓰러져 가고 가족들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영락없이 여우 모습이 된 여동생만이 셋째를 반가이 맞아줍니다. 밥 먹고 가라는 누이동생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셋째. 하지만 여우누이가 눈치를 채고 쫓아오기 시작해요.

여우누이

“아이고 분해, 아이고 분해. 말 한 끼 사람 한 끼, 두 끼거리 도망가네!”

바람처럼 달려와 말꼬랑지를 잡을락 말락!

어린시절 여우누이의 추격전이 아슬아슬 소름이 쫙 끼쳤던 기억이 나는데, 그림책에서도 잘 표현을 했더군요. 어른이 되었지만 읽으면서도 소름이 쫘악~ ^^

여우누이

노란병을 던지가 가시덤불이 쫙~~~ 하지만 여우누이는 덤불를 헤치고 쫓아오고, 다시 위급한 순간 얼른 파란병을 던지자 시퍼런 강이 생겨났지만 여우 누이는 강물 속을 헤엄쳐 나와 쫓아옵니다. 위기일발의 순간(들어도 들어도 여전히 긴장되는 부분^^) 마지막 남은 빨간 병을 던지자 주위는 불바다로 변했고 여우 누이는 불에 타죽고 말아요. 그렇게 여우누이를 물리친 셋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색시와 단둘이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

여우누이는 역시 명불허전 우리 옛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찌나 예쁜지 딸만 좋아하고 아들 같은 건 없어져도 좋다고 했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 이야기체로 쓰여진 문장에 명암이 뚜렷하게 표현되는 목판화 기법은 공포 분위기를 절묘하게 이끌어 가고 있고, 화면의 크기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읽는 이에게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겁많은 엄마는 밤에 아이와 단둘이 읽지 마세요. (경험담~^^)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인지라 약간씩 다른 버전의 여우누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소개해 드린 것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이야기구요. 아래는 다른 출판사 다른 작가에 의해 쓰여진 그림책이니 다른 버전으로도 한 번 읽어 보세요.


똥떡
책표지 : 사파리
똥떡

글 이춘희, 그림 박지훈, 감수 임재해, 사파리

“똥떡”이라는 재미있는 제목과는 달리 변소 위에서 아이를 내려다 보고 있는 머리 치렁치렁한 귀신 그림의 표지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오싹한 느낌입니다.

똥떡

뒷간에서 변을 보던 준호는 그만 똥통에 빠져 다급하게 엄마를 부르고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던 엄마는 허겁지겁 준호를 똥통에서 건져줍니다.

똥떡

마실 갔던 할머니는 씻고 있는 준호가 똥통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하십니다. 똥통에 빠지는 아이는 일찍 죽는다는 옛말 때문이에요.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는 액막이를 하기 위해 급하게 똥떡을 만드십니다.

똥떡

똥떡을 다 만들면 뒷간 귀신한테 먼저 드려야 한대요. 뒷간귀신은 뒷간에 살고 있는 성질 나쁜 각시랍니다. 머리가 땅에 끌릴 정도로 길고 성질이 사납고 화를 잘 내는 젊은 여자 귀신인 뒷간 귀신이 심통을 부려 아이가 가끔씩 똥통에 빠지는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는 똥떡을 만들어 뒷간 귀신의 화를 풀어 주어야만 더 큰 화를 면할 수 있답니다.

똥떡

뒷간 귀신 너무 무섭게 생겼죠? 저렇게 생긴 귀신이 뒷간 지붕에 앉아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오싹하네요. 맛있는 똥떡을 먹고 화를 풀라며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빌고 난 준호는 준호 나이만큼 똥떡을 먹고 남은 똥떡을 집집마다 나눠주러 갑니다. 귀신에게 제사 지낸 똥떡은 여럿이 나눠 먹어야 복이 오기때문이래요.

똥떡

변소 각시, 측신 각시 등으로 불리는 뒷간 귀신에 관한 으스스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옛 문화와 그 안에 깊게 배어 있는 우리의 정서를  풀어낸 그림책 “똥떡”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똥통에 빠진 아이에게 해주는 일종의 심리치료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똥통에 빠지면 아이는 아무래도 화장실을 가기 무서워하기도 하고 자다가도 놀라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을텐데, 이런 의식을 통해 나쁜 것을 물리쳤으니 이제 아무일 없을것이다라고 아이 마음을 달래주는 지혜로운 풍습이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게다 이렇게해서 만든 음식을 온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넉넉하고 훈훈한 우리의 옛정, 떡을 얻어 먹은 사람들은 모두 놀랐을 준호를 달래주어 아이가 무서움에서 빨리 극복 될 수 있게 도와주었겠죠?

저희 아이는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오들오들 떨면서 읽고는(읽어주는 저 역시 뒷간 귀신 나오는 장면에서는 무서워서 움찔움찔…^^) 이런 질문을 했었어요.

“엄마 어릴 때도 이런 똥떡 해먹었어?”

“흠…엄마네도 양변기 써서 똥떡은 처음 알았어! ^^” 라고 답하고는 우리 모녀 서로 마주보고 깔깔깔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이들이 좋아라 하는 ‘똥’을 소재로 오싹한 뒷간 귀신 이야기가 함께 하는 그림책 “똥떡”은 잊혀져 가는 우리 문화를 살리자는 기획하에 만들어지는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오싹오싹 당근
책표지 : Daum 책
오싹오싹당근(원제: Creepy Carrots!)

글 애런 레이놀즈, 그림 피터 브라운, 옮긴이 홍연미, 주니어랜덤

※ 2013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칼데콧상 수상작 보기


오싹오싹 당근

당근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토끼 재스퍼는 당근 중에서도 깡충폴짝 들판에서 자라는 당근을 제일 좋아해서 학교에 가는 길, 야구 연습하러 가는 길,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도 늘 깡충폴짝 들판에 들러 당근을 캐먹었어요.

오싹오싹 당근

그런데 어느 날 부터 재스퍼 뒤에서 당근들이 슬금슬금 뒤따라 오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잘못들었다 생각했지만 왠지 등뒤가 자꾸만 오싹해지는 재스퍼. 그 때마다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일도 없었어요.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 재스퍼를 긴장시키는 환청과 환영.

오싹오싹 당근

급기야  창고에서 만난 무서운 당근의 모습에 놀라 엄마를 데리고 창고에 갔지만  무서운 당근은 보이지 않고 그와 비슷한 물체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죠. 하지만 재스퍼는 느낌으로 알고 있었어요. 무서운 당근들이 자신의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는 사실을요.

오싹오싹 당근

오싹한 당근이 진짜 존재한다고 확신한 재스퍼는 고민 끝에 오싹한 당근을 물리치기 위한 옴짝달싹 계획을 생각해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답니다.

과연 그 계획은 재스퍼를 구해줄 수 있을까요? 마지막 반전을 놓치지 마세요. ^^

피터 브라운은 전체적으로 흑백 톤의 그림에 주황색의 컬러만으로 그림을 표현했고, 그림의 프레임을 검정색으로 칠해 TV를 통해 흑백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그려냈어요. 그리고 오싹오싹 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는 재스퍼의 표정이 긴장된 심리상태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재스퍼의 표정을 통해 왜그런지 뒤가 움찔움찔한 상황(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이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그림에 잘 어울리는 애런 레이놀즈의 으스스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스토리의 전개, 마지막 유쾌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오싹오싹 당근”은 2013년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벽장 속의 괴물 There's A Nightmare In My Closet
책표지 : Daum 책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

글/그림 Mercer Mayer, Penguin Books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

There used to be a nightmare in my closet

옷장 속에 나이트메어가 있다고 확신하는 아이는 잠 자기 전 스탠드를 켜 두고 장난감 총과 장난감 대포까지 가슴에 안고 열린 옷장 문을 걱정 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이는 잠들기 전 항상 옷장 문을 꼬옥 닫아요. 하지만 여전히 무서운 건 무서운 것…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

어느날 밤 아이는 나이트메어를 없애 버려야겠다 생각해요. 그렇게 결심하고 나자 아이의 표정은 처음과 달리 사뭇 비장하게 바뀌었습니다. 아이는 켜고 잤던 스탠드의 불을 껐고 어둠 속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이트메어가 다가오는 으스스한 소리를 들었죠.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

나이트메어가 침대까지 다가왔을 때 아이는 재빨리 불을 켜고는 당장에 사라지지 않으면 쏘겠다면서 장난감 총을 겨누었어요. 어둠 속에서 다가오던 장난기 가득한 나이트메어의 표정은 이제 잔뜩 겁먹은 듯 보여요. 그와 대조적으로 씩씩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은 전세가 역전된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

빵! 하고 장난감 총을 한 발 쏘자 앗, 상황이 더 이상하게 변했네요. 겁 먹은 나이트메어가 울기 시작해요. 서럽게 우는 표정은 마치 어린 아이 같습니다. 결국 아이는 나이트메어를 달래주었어요. 조용히 하지 않으면 엄마 아빠가 온다면서 오히려 우는 나이트메어의 손을 잡아 자신의 침대로 데려갔습니다.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

I suppose there’s another nightmare in my closet, but my bed’s not big enough for three

또다른 나이트메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명이 자기엔 부족한 침대…^^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예요. 둘이 잠들고 나자 살짝 옷장을 열고 나오는 또 다른 나이트메어의 모습!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 나이트메어들 역시 어두운 옷장 속에서 무서움에 떨고 있지 않았을까요? 매일 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오들오들 떨면서 옷장 속에서 기다렸다가 아이 옆에서 잠 자고 아침이 되면 옷장 속에 다시 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웃게 되는 그림책입니다.

※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은 국내에는 보림의 전집 ‘위대한 탄생’에 ‘벽장 속의 괴물’이란 제목으로 포함되어 있긴 한데 정식 한글판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영문 버전 그대로 소개합니다.

아래는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There ‘s A Nightmare In My Closet”동영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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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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