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학교

달팽이 학교

이정록 | 그림 주리 | 바우솔
(발행 : 2017/08/09)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초록색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그림책 표지가 시원한 느낌입니다. 이런저런 독특한 학교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달팽이 학교’라니…… 달팽이 학교에서 벌어질 일들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납니다. 빨리빨리, 제일 먼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느림보의 대명사인 달팽이들이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달팽이 학교

표지를 넘기면 바로 나오는 그림책 앞면지예요. 빨간 우산 너머로 조심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달팽이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봅니다. 달팽이라면 분명 습한 날씨, 축축한 곳을 좋아할텐데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을 들고 있다니, 그것도 무언가 쏟아질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궁금해집니다.

달팽이 학교

교문 앞에 잠시 멈춰 선 달팽이 한 마리, 무언가 걱정스러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신학기 처음 학교 가는 학생일까요? 어떤 학교일까, 담임 선생님은 누굴까, 학교 친구들은 어떨까 학교 생활이 궁금하면서도 걱정되는 그런 마음 아닐까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달팽이 학교는

학교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지 ‘달팽이 학교는’으로 시작한 문장이 다소 묵직하게 들렸는데 다음 장을 펼쳐 보고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어요.

선생님이 더 많이 지각한다.

학생들은 모두 등교해서 풀잎 자리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선생님이 오실까 교탁만 바라보고 있어요. 다음 장을 펼치면 안경에 하얀 수염을 한 달팽이가(아마도 선생님이겠죠?) 느릿느릿 학교를 향해 기어가고 있습니다. 뜨문뜨문 간격을 뚜고 쓰여있는 ‘느릿느릿’이란 글자도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꿈틀거리고 있어요. 달팽이 학교는 할아버지 교장 선생님이 가장 늦는대요. 하지만 허둥지둥 서두르거나 당황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교장 선생님, 그 모습을 보는 우리가 더 당황하는 것 같습니다.^^

달팽이 학교

조회도 운동회도 달밤에 하는(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달팽이 학교, 이웃 보리밭으로 소풍 다녀오는 데도 일주일이나 걸렸어요. 뽕잎 김밥 싸는 데만 사흘이 걸렸고요. 바람에 흔들리는 싱그러운 초록 보리들 사이로 꾸물꾸물 열심히 달팽이들이 기어가고 있습니다. 일주일이나 소풍 다녀오느라 다소 지쳤을 법도 한데 달팽이들의 표정은 늘 한결같아요. 선생님을 기다릴 때나 조회나 운동회를 할 때도, 오랜 시간 소풍을 갔다 올 때도… 한결같은 몸짓과 표정과 달리 달팽이 등껍질 무늬는 제각기 천차만별인 것이 눈에 띄네요.

달팽이들이 지나치는 보리밭 위로 하늘은 네 번의 낮과 세 번의 밤이 번갈아 나오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각 구름의 모양도 별의 위치가 다 다른 낮과 밤입니다.

달팽이 학교

그런데 이제 달팽이 학교가 아침 조회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교장 선생님이 지각하지 않기 위해 집을 교장실 옆 화단으로 옮겼거든요. 한 달이나 걸려 이삿짐을 싸서 집을 옮기는 사이 칸나꽃 빨간 집이 초록 집으로 변했어요.

달팽이 학교에서는 화장실이 코앞인데도 교실에다 오줌 싸는 애들이 많아요. 주르르 주르르 여기저기서 나뭇잎을 타고 달팽이 오줌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다들 우산이 필수!인 모양입니다. 면지에 나온 달팽이의 빨간 우산 용도가 비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닌 아무데서나 떨어지는 오줌 방지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달팽이 학교

전속력으로 화장실을 향해 달려가지만 복도 여기저기에 싸버린 색색깔 달팽이 똥들. 저 아이는 오늘 아침 당근을 먹은 것 같고 저기 저 아이는 노란 파프리카를 먹은 모양인데요. ^^ 똥을 싸고도 급한 기색 하나 없는 달팽이들, 전속력으로 뛰어간다고 하지만 표정은 누구나 평온하기만 합니다.

모두 모두
풀잎 기저귀를 차야겠다.

마지막 문구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더 빨리 달리라고, 더 일찍 서두르라고 하지 않고 그저 풀잎 기저귀를 차야겠다는 여유로움 덕분이겠죠?

자연의 속도와 순리에 따라 모든 게 평화롭고 모든 게 긍정적인 달팽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에 곁들여진 깊은 철학적 메시지와 초록으로 가득한 배경 속에 요모조모 풍성한 볼거리를 가득 제공하고 있는 그림이 아주 잘 어우러지는 그림책 “달팽이 학교”. 급박한 순간에도 언제나 진지하고 신중한 달팽이들의 표정이 늘 재촉하고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느려도 괜찮아, 일등이 아니라도 괜찮아, 지금 잘하고 있어, 네 속도대로 하면 돼. 달팽이들이 건네는 위로가 따뜻하고 편안하면서 재미있는 그림책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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