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 두더지야

힘내, 두더지야

글/그림 이소영 | 글로연
(2024/01/20)


『힘내, 두더지야』하고 말해주는 제목만으로도 위로받는 느낌이 드는 건 별별 일들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일까요? 힘내야 할 두더지가 되어 그림책을 펼쳐봅니다.

열심히 당근 농사를 지으면서 부지런히 살고 있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자꾸만 자신을 채찍질하는 두더지와 숲속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을 해주는 사슴벌레가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둘은 깊은 숲속 이웃 마을에 살고 있었지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였어요.

힘내, 두더지야

열심히 일했지만 잘 팔리지 않는 당근 때문에 슬픔에 빠진 두더지, 화가 난 내담자가 던진 돌에 맞아 턱뼈가 부러진 사슴벌레. 삶이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늘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만은 않지요. 둘은 그날 밤 그래서 울적했고 그래서 잠들 수 없었어요.

밤의 빛깔이 참 오묘합니다. 어둠 속에 깃든 빛, 현란함 속에 담긴 짙은 우울, 짙푸른 색과 보라색, 노란색 초록색이 어우러진 숲속의 밤은 늘 알쏭달쏭 물음표투성이 우리 인생 빛깔 같아요.

힘내, 두더지야

잠이 오지 않던 사슴벌레는 밝은 달을 따라 무작정 걸어가다 우연히 울고 있는 두더지를 만났어요.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는 운명의 순간, 각자 다른 페이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둘은 이렇게 한 장면에서 만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집니다.

정성껏 기른 당근이 잘 생기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크지도 않아 슬프다는 두더지의 당근 주스를 맛본 사슴벌레는 그 달달한 맛을 칭찬했지만 두더지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여전히 슬퍼하는 두더지에게 같이 산책을 하자고 사슴벌레가 제안했지만 두더지는 단번에 거절을 했어요. 왜냐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계획대로 착착착 일해야 하는 두더지에게 계획에 없는 일을 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절대 절대로!

“자자, 그러지 말고 나가자.
오늘 하루쯤 다르게 살아도 아무 문제 없어.”

그렇게 두더지와 사슴벌레의 풀벌레 소리 가득한 고요하고 한적한 밤 나들이가 시작됩니다. 갈림길에 들어설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불안해하는 두더지를 사슴벌레는 조용히 이끌어 주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알 수 없는 밤의 산책길은 우리 인생의 여정을 빗댄 모습입니다. 우울과 불안이 극에 달했던  그날 밤 두더지는 사슴벌레를 통해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사슴벌레 역시 서서히 변해가는 두더지를 통해 믿음을 회복하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지요.

커다란 당근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괴로워했던 두더지는 이제 자신이 만들어낸 작은 당근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면서 살게 되었어요. 사슴벌레는 두더지네 당근 맛을 보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었고요. 물론 둘은 밤마다 산책 가는 걸 잊지 않았답니다. 그 길에서 무얼 만나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될지… 인생은 그저 알 수 없는 길입니다.

이 그림책은 이소영 작가의 전작 『괜찮아, 나의 두꺼비야』에서 흰 두꺼비 하양이의 친구였던 사슴벌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괜찮아, 나의 두꺼비야』에서 산딸기 타르트를 정말 맛있게 만들고 시를 아주 잘 쓰고 식사를 마치면 설탕 없는 진한 커피를 즐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단 집에 있는 걸 좋아했던 빨간 두꺼비 빨강이가 카메오로 등장해요. 빨강이가 이 그림책에서 어떤 변신을 했는지 꼭 찾아보세요.

농사를 짓는 것과 상담의 공통점은 깊은 곳(땅속, 마음)에서 자라는 그 무언가를 길러 밖으로 꺼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두더지와 사슴벌레가 단번에 통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하루쯤 다르게 살아도 아무 문제 없다고. 지금껏 잘 하고 있고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는 그림책 『힘내, 두더지야』.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함에 가슴이 답답하다면 자리를 떨치고 나가 보는 거예요. 계획했던 것들 잠시 내려놓고. 혹시 모르죠. 길모퉁이에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멋진 인연을 만나게 될지…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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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맹은
서맹은
2024/04/22 06:01

“농사를 짓는 것과 상담의 공통점은 깊은 곳(땅속, 마음)에서 자라는 그 무언가를 길러 밖으로 꺼내는 일” 멋진 말입니다. 길러 내는 일, 나와 타인의 마음을 함께 길러보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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