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순간부터 우리는 이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아이는 세상을 파악하고 때가 되면 의미를 지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평소 읽거나 쓰지 않는 날은 있어도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날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듣기와 말하기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듣기를 잘 하지 못하면 제대로 말할 수 없고 제대로 말할 수 없으면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듣기는 실제 의사소통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오늘 준비한 세 권의 그림책들은 듣는다는 것과 말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림책들입니다.

마수드 가레바기 작가의 『남의 말을 듣는 건 어려워』는 어린 물총새의 일화를 통해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어린이 눈높이에서 재미있게 알려주는 그림책이에요.

구리디 작가의 『어려워』는 소통을 어려워하는 아이를 통해 그 마음을 헤아려 보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구리디 작가의 또 다른 그림책 『말』은 말의 쉬움과 어려움, 유약함과 복잡함을 이야기하는 소통과 사랑, 관계에 관한 그림책입니다.

듣기가 어려운 친구와 말하기가 어려운 친구, 그리고 말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세 권의 그림책을 통해 말이란 무엇인지 소통이란 무엇이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남의 말을 듣는 건 어려워

남의 말을 듣는 건 어려워

(원제: The Little Kingfisher)
글/그림 마수드 가레바기 | 옮김 이정은 | 풀빛
(2024/02/28)

남의 말을 듣는 건 어려워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어린 물총새 때문에 물고기를 놓친 아빠 물총새가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말을 하면, 남의 말을 들을 수 없어.
남의 말을 듣지 못하면, 배울 수도 없단다.”

그러자 지루해진 어린 물총새는 같이 이야기할 친구를 찾아 훌쩍 날아가 버렸어요. 그리고 마침 한자리에 모여 수다를 떨고있는 앵무새들을 발견하자 그들 무리에 끼었어요. 그들이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슬그머니 다가온 사냥꾼들은 단번에 새들을 사로잡아버렸습니다. 앵무새들은 각자 자기 말만 하느라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거든요.

문제는 물총새가 탈출 방법을 의논하고 싶었지만 쉴 새 없이 자기 말만 해대는 앵무새들과는 의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어요.

남의 말을 듣는 건 어려워

공포와 혼란 속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물총새는 쉴새 없이 들려오는 말들 속에서 아주 중요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떠들어대는 앵무새들 이야기 속에 저마다 새장 문 여는 데 필요한 정보가 있었던 거예요.

앵무새는 사라지고 그들의 입 밖으로 나온 말만 가득한 화면은 어지럽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그 말들 중에 가만히 살펴보면 의미를 가진 말들이 숨어있어요. ‘빨간 단추를 누르는 거, 둥근 다이얼을 돌릴 때까지, 저긴 막대를 집어서…’ 수많은 말들 가운데 자세히 집중해야만 보이는 중요한 말들은 집중해서 귀 기울여야 하는 상황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정작 남의 말은 듣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새장 문을 열지 못했던 거죠. 앵무새들이 각자 지껄여대는 조각난 말들을 귀 기울여 들은 물총새가 하나하나 따라해 보았더니 마침내 새장 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 말만 하느라 바쁜 앵무새들은 물총새가 ‘어서 나가자’라고 하는 말도 듣지 못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간 물총새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 남의 말 듣는 법을 배우고 왔어요!”

어린 물총새는 목숨과 바꿀 뻔한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계속 자기 말만 하다 보면 남의 말을 들을 수 없어요. 남의 말을 들을 수 없다면 어떤 것도 배울 수도 없습니다. 앵무새들처럼 자기 세상에 갇혀버리는 것이지요.

내 생각, 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의 입을 틀어막는 순간 내 귀는 닫혀버립니다. 귀가 닫히면 결국 내 세상이 닫혀버립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잠시 멈추고 상대의 말을 경청해 보세요. 나와 상대를 그리고 세상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세상이 활짝 열립니다.


어려워

어려워

(원제: Lo difícil)
글/그림 라울 니에토 구리디 | 옮김 문주선 | 미디어창비
(2021/06/15)

『어려워』에는 소통을 힘들어하는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는 아침마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빵집 아저씨, 이웃, 친구들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고 싶지만 말은 늘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에요.

표지 그림을 보면 낙서처럼 어지럽게 그은 선 끝에 ‘안녕’이란 작은 글자들이 매달려있어요. 어지러운 낙서와 작게 쓴 글자는 안녕이란 짧은 인사조차도 꺼내기 어려운 아이의 마음입니다.

어려워

집을 나서면 모든 게 어렵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다.

까만 배경 위에 글자로만 채운 첫 장으로 아이의 막막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넓은 화면 구석에 쓴 흰색 글자는 외부 세계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의 상황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어려워

다음 장면엔 그림만 있고 글이 없어요. 문밖으로 한 발 떼기가 어려워 멈춰 선 아이, 뭉개진 풍경은 아이의 막막한 마음이에요. 이렇게 그림책은 검은색 배경에 흰색 글자로만 이루어진 장면과 흰색 배경에 그림으로만 구성된 장면을 오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집을 나서자마자 만난 빵집 아저씨는 아주 조심스럽게 ‘안녕. 얘야’하고 인사를 건네지만 마음과 달리 아이는 그 말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말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하루가 지나갑니다. 하지만 소통을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 시끄럽고 누가 말이라도 시킬까 겁이 납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혼자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작가 구리디는 연필 스케치로 거칠게 표현한 선과 튀는 색상의 이미지를 통해 아이 마음에 이는 불안과 혼돈의 미묘한 감정을 조심스럽게 표현했습니다. 타인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들과 분리된 공간에 고립된 것처럼 아이 둘레에 연필 선을 어지럽게 그어 표현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전히 아이는 말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암흑 같은 세상에서 빠져나와 다시 빵집 아저씨를 만나는 것으로 표현했어요.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그 인사를 아주 작은 글자로, 마른 나뭇가지 끝에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 마디가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 아저씨가 깜짝 놀라 멈춤하고 선 장면은 소소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소리로 가득한 세상이 늘 힘겹고 어렵게 느껴지기만 하는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해 주고 생각해 주는 이들의 따스한 마음 덕분에 아이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냅니다. 여전히 모든 게 너무 어렵지만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또 살만한 세상입니다.


말

(원제: Palabra)
글/그림 라울 니에토 구리디 | 옮김 문주선 | 반달
(2023/06/15)

제목은 책의 내용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말』은 파격적으로 표지에 제목을 넣지 않았습니다. 제목을 찾아 요리조리 살펴 보다 책등에서 이 책의 제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죠. 말로 상대와 소통하려면 귀를 열고 눈을 바라보면서 적극적으로 임해야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 모든 걸 작가 라울 니에토 구리디는 표지 한 장에 담아냈습니다.

말

앞뒤 표지를 활짝 펼쳐서 보면 이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이 보입니다. 왼쪽 사람은 입술이 움직이는 듯 표현했고 오른쪽 사람은 귀를 열어 그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검은색 책등을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하고 있어서 둘 사이 뭔가 가로막혀있는 느낌이에요. 책등이 둘 사이의 경계가 된 그런 느낌이죠. 이 두 사람 잘 소통할 수 있을까요?

말

이 그림책은 특정 주인공이 나오지 않아요. 각각의 장면은 이어지기도 하고 또 개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장면마다 커다랗게 그려낸 얼굴들엔 특별한 표정이 없어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머뭇거리다가 하지 못한 말, 떠오르지 못한 말, 남들에게는 했지만 당신에게만 하지 않은 말… 온갖 말들이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쏟아져 내립니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는 듣기 좋은 말, 또는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고 듣고 싶지 않았던 말, 후회의 말, 되돌리고 싶은 말일 수도 있겠지요. 사랑해, 실망했어, 기다렸어, 힘들었지? … 여러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아마 이 그림책을 열 명이 보면 열 명이 각자 다 다른 말을 마음속에 떠올릴 거예요.

시작은 ‘머뭇거리다가 하지 못한 말’로 시작해 말 때문에 계속 분열되었던 얼굴들은 마지막 장면에 ‘가슴속에 품은 말, 그 말을 지금 당신에게 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분열되어 있던 두 얼굴들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마무리됩니다. 결국에 가슴속에 품었던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가 한 사람의 통합을 가져온 것이죠. 둘로 갈라지게 만든 것도 말이고 둘 사이 벽을 허무는 계기도 결국 말이라는 것을 마지막 장면에 경계가 사라진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말을 하는 것도, 또 제대로 듣는 것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는 정말 제대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지 묻는 그림책 『말』, 적절하게 제대로 표현하기 너무나 어려운 말에 대한 심상을 간결한 글과 시각적 은유를 통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함께 읽어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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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맹은
서맹은
2024/04/26 21:05

하지 못한 말을 하고 나서 비로소 하나로 통합되는 얼굴
그 지점이 참 좋아요. 마음 치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말, 그 소중하고 귀한 이야기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최미경
최미경
2024/04/28 10:44

소통에 대해 알려줄때 꼭 필요한 책인것 같아요..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듯~^^ 꼭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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