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 아가씨의 굉장한 버스

표범 아가씨의 굉장한 버스

(원제: Леопарда)
글/그림 나탈리야 샬로시빌리 | 옮김 김선영 | 보림
(2023/11/30)


‘나탈리야 샬로시빌리? 처음 보는 작가네’하고 그림책을 펼쳤다 쏘옥 빠져들었던 그림책이에요. 포근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 웃다 울다 다시 책을 덮을 무렵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던  그림책 『표범 아가씨의 굉장한 버스』입니다.

표범 아가씨는 길가 오래된 나무 위에서 잠자기를  좋아해요. 나뭇가지 사이로 네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잠을 자는 표범 아가씨는 너무나 편안해 보입니다. 표범 아가씨는 낮엔 버스를 몰아요. 표범 아가씨처럼 밝은 에너지로 가득한 샛노란 색깔 버스예요. 볼일이 있는 동물들을 마을 이곳저곳을 데려다주는 표범 아가씨의 버스는 언제나 북적거렸답니다. 그 일이 일어났던 바로 그날도 버스에 동물 친구들을 싣고 가던 중이었죠.

어디선가 나타난 작고 까만 자동차 한 대가 뿌연 연기를 내뿜고는 표범 아가씨가 모는 버스를 앞질러 슝~하고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그 모습을 본 동물들은…

표범 아가씨의 굉장한 버스

정말 굉장해!

경외감에 사로잡힌 동물들의 표정이 압권입니다. 각자의 머릿속에서 팽팽 돌아가는 생각들이 읽히는 것만 같아요.

굉장한 그것을 본  다음 날부터 늘 붐볐던 버스에 빈자리가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버스에 빈자리가 늘어가는 만큼 도로에는 여러 모양의 자동차가 점점 더 많아졌고요.

표범 아가씨의 굉장한 버스

점점 더, 점점 더 많은 동물들이 버스를 타는 대신 자동차를 몰고 거리로 나오게 되자 버스에는 표범 아가씨만 남게 되었어요. 도로를 모두 각자 타고나온 자동차가 차지해 버렸죠. 자동차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도로는 꽉 막혔고 마을은 매연으로 가득한 잿빛이 되었어요. 꽉 막힌 도로에서 서로 앞질러 가려고 다투던 이들은 결국 ‘쓸모없는 것을 전부 치우기’로 합니다. 그들이 생각한 ‘쓸모없는 것’은 아무도 타지 않는 그래서 주행을 방해하는 버스와  길가의 오래된 나무였어요. 일을 마친 표범 아가씨가 잠을 자는 그 나무.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자꾸만 콜록콜록 기침이 나는 데다 늘 꽉 막혀있는 도로에서 다들 서로를 탓하며 머리끝까지 잔뜩 화가 나있는 상태였어요. ‘굉장해!’ 이 느낌에 빠져 다들 자동차를 몰고 다니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전혀 굉장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이들 앞에 어느 날 표범 아가씨가 다시 나타났어요. 모두에게 잊혔던 그 표범 아가씨가 멋진 자전거를 타고서요.

표범 아가씨의 굉장한 버스

이 굉장한 풍경을 목격한 동물들은 그날부터 하나 둘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순리에 맞게 살게 되자 사라졌던 시간이 돌아오고 자연이 돌아오고 친구들이 돌아오고 웃음이 돌아오고 행복이 돌아왔어요. 굉장한 건 바로 이런 일이지요. 세상을 움직이는 이 평범한 진리를 한바탕 커다란 소동을 겪은 끝에야 동물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존의 가치와 의미를 따뜻한 감성으로 들려주는 그림책 『표범 아가씨의 굉장한 버스』, 우리에게 쓸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기준이 너무 자주 바뀌는 바람에 우리 모두 함께 병들어 가면서도 절대 멈추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실려간 오래된 나무가 떨군 나뭇가지를 심어 새순이 돋는 긴 과정을 지켜본 표범 아가씨는 그 나무로부터 진리를 깨달았어요. 이 모든 것은 표범 아가씨가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의 순리를 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작가의 그림책을 보다 기분 좋은 놀람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작가들의 그림책은 당연히 좋을거란 기대를 갖고 보기 때문에 감동은 있으나 놀람은 없습니다. 반면에 생소한 작가의 그림책을 아무런 기대 없이 보다 ‘참 좋다!’라던가 ‘그렇지! 이게 그림책이지!’하며 놀라게 되는 그 느낌은 참 묘한 기분 좋음을 선사하죠. 두 번째 그림책에서도 비슷한 감동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작가에게도 기대를 하게 되고요. 나탈리야 샬로시빌리가 바로 그런 작가입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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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빠진50대아저씨
그림책에빠진50대아저씨
2024/03/29 09:05

“작은고양이에게무엇이필요할까”의 작가로군요 ~ 역시나 … 그림이 너무 좋네요 ~~~ 감사합니다.

Yon
Yon
2024/03/29 09:54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정숙
임정숙
2024/04/05 22:22

표범아가씨의 굉장한 버스,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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