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안 자랐네

어린 시절, 밥을 먹다 배부르다고 하면 우리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별로 안 먹었네. 배부르다는 건 목구멍 숨 쉬는 요기요(목젖 부근) 있지? 요기까지 딱 차서 밥술을 떠넘겨도 더 이상 들어갈 때가 없을 때 하는 말인기라. 뱃속에서 꿈틀하는 그기 배가 부른 게 아니고.” 라고.

가끔 그 느낌을 소환해 보다 혼자 웃음 짓곤 해요. 목젖 부근까지 다 찼나 안 찼나. 나는 지금 배가 부른 게 맞나, 더 먹을 여지가 있는 것인가…

그림책 속의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를 소환합니다. 작은 화분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이 오래전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우리들을 돌봐주시던 우리 할머니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이웃이 버리고 간 작은 화분 하나를  집으로 데려온 할머니는 날마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별로 안 자랐네.

할머니의 사랑에 답이라도 하는 듯 나무는 날마다 날마다 쑥쑥 자라났어요. 하나 둘 늘어가는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모습이 ‘할머니 나 배불러요~’하고 귀여운 투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라나도 할머니에겐 별로 안 자란걸로 보이는 나무는 비좁은 집안에서 넓고 환한 옥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어요. 나무를 따라 할머니의 공간도 집 안에서 옥상으로 확장되었지요. 물, 바람, 햇빛 가득한 옥상에서 더욱더 건강하게 자라난 나무는 고양이, 새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 찾는 모두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누어 먹고도 남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토마토를 내어 준 나무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말 잘 자랐다.


별로 안 자랐네

별로 안 자랐네

글/그림 홍당무 | 소동
(2024/01/09)

할머니의 사랑으로 나무가 자라면서 그림책 속 공간이 점점 더 따스한 빛깔로 채워지는 『별로 안 자랐네』는  소박한 행복을 안겨주는 그림책입니다.

내 손주 돌보듯 정성껏 나무를 돌보는 동안 할머니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그 미소는 세상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퍼져갑니다. 사랑이 사랑을 불러온 것이죠. 위로 펼쳐지며 공간이 두 배로 확장되는 페이지는 나무가 얼마나 커다랗게 자랐는지, 그 나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줬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할머니가 버려진 나무를 키우고 그 나무가 외로운 할머니를 보듬고,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살아갑니다. 나무는 키가 자라고 할머니는 마음이 자라고, 그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 안고 그렇게 모두 모두 ‘정말 잘 자랐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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