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그림, 책!]은 그림으로 그림책을 읽어보는 시간! 한 장 한 장 넘겨볼수록 그림이 주는 감동을 배가시켜 줄 새로운 형식의 그림책 이야기입니다. 그림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백슬기 객원 에디터의 톡톡 튀는 그림책 이야기에 푹 빠져 보세요!

※ 본 글의 저작권은 백슬기 객원 에디터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할 수 없습니다.


※ 연재 순서

  1.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2. 그림 재료 탐구 ② 페인팅(Painting)
  3. 그림 재료 탐구 ③ 판화(Print)

그림책을 보다가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하면 “우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에 OTT까지 볼 것이 참 다채로워진 세상이지만, 그림책은 여전히 그림책 특유의 감동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이런 감동은 그림책의 어떤 특징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원천은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그림이 종이를 통해 독자들의 손끝으로, 눈과 마음으로 스며들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연재 <그림 재료 탐구>는 어떤 재료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게 되면 그림책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연재에서 다루고자 하는 ‘그림책’과 ‘재료의 기준’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재료와 기법은 그림책의 범위만큼이나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림책 = 유아동 문학’이라는 협의의 범주를 벗어나면 플립북(책처럼 한 권으로 묶인 종이들 위에 움직임을 연속으로 그려, 한 손으로는 종이의 묶인 부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한 장씩 훑는 애니메이션의 한 방식, 우리말샘 국어사전)도 그림책이 될 수 있고, 그래픽 노블(문학적 구성과 특성을 보이는 작가주의 만화, 우리말샘 국어사전) 역시 그림책의 범주에 포함되며,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의 묶음까지도 그림책이 될 수 있죠. 또, 백희나 작가처럼 인형과 입체적인 배경을 만들고, 조명을 세팅한 후 사진을 찍어 그림책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예술 지향적인 넓은 의미의 그림책이나 한 작가만의 독특한 기법을 다루기보다 종이에 그려진 그림으로 만들어진 대중적인 그림책을 대상으로 하려 합니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직접 물감을 짜지 않고도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을 이용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채화의 번짐 표현부터 유화의 고유한 붓 터치, 작가가 원하는 질감까지 디지털로 합성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그림 재료 탐구’인 만큼 디지털 드로잉 방식은 제외한 ‘재료’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하려 합니다!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그림 재료는 기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드로잉(Drawing), 페인팅(Painting), 판화(Print). 서양 회화에서는 Draw(그리다)와 Paint(색칠하다)를 구분하곤 했습니다. 드로잉(Drawing)은 주로 연필, 목탄(숯), 펜 등을 통해 색 없이 선을 그려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말했고, 페인팅(Painting)은 다양한 색상을 붓, 나이프, 롤러 등을 통해 면으로 채우는 이미지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색이 없던 드로잉 도구들도 다양한 색상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미술 사조의 변화에 따라 드로잉과 페인팅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입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색의 유무보다 얇은 선을 그리는 데 더 수월한 도구는 드로잉(Drawing)으로, 넓은 면을 채우는 데 더 수월한 도구는 페인팅(Painting)으로 분류해 보려 합니다!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대표적인 드로잉 도구 : 연필, 목탄(숯), 콩테, 파스텔, 오일파스텔, 크레용, 색연필, 펜(딥펜), 마카(알코올/아크릴)

 

연필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필기도구이자 그림 도구는 연필입니다. 완전한 검은색이 아닌 흑연 고유의 색감 덕분에 연필 그림은 참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또, 잡는 힘을 조절하면서 다양한 톤으로 그려낼 수 있고, 여러 겹 덧칠할 때마다 깊이감을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연필 하나만으로도 ‘풍부하다!’라는 느낌을 주죠. 샤프도 연필만큼이나 많이 쓰이는데요. 물고기 비늘을 표현하는 등 작고 섬세한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 샤프에 원하는 흑연 농도의 샤프심을 넣어서 아주 얇게 사용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혹시, ‘4B 연필’에서 ‘4B’는 어떤 뜻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으셨나요? 미술 도구로 주로 쓰는 B심은 ‘Black’의 약자이고 심이 부드럽다는 특징이 있으며 앞의 숫자가 높아질수록 색이 진해집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같은 진하기를 만들기 위해 4B연필로는 2~3번을 덧칠해야 하지만 8B 연필로는 한 번만 그어도 되는 것이죠. 진하기는 12B까지 있지만, 10B만 되어도 연필심이 너무 부드러워서 반죽을 위한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이와 반대로 H심은 ‘Hard’의 약자이고 B심보다 훨씬 단단한 강도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H심의 경우 종이에 그었을 때 연필 자국이 훨씬 쉽게 나죠. 또, H심은 숫자가 높아질수록 옅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연필 종류 덕분에 부분마다 원하는 종류의 연필심으로 바꿔가며 명암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연필로 그린 대표적인 그림책

 

목탄과 콩테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목탄은 숯 그 자체입니다. 다 타버리고 남은 숯으로 바닥에 낙서해 보았다면 여러분도 목탄 그림을 그려본 것이죠! 목탄은 연필(흑연)보다 더 검정에 가깝기 때문에 진한 느낌을 받습니다. 또, 종이에 가루 형질로 얹히기 때문에 잘 번지는 특성이 있고, 그 때문에 훨씬 더 부드러운 표현이 가능합니다. 특히 목탄은 면과 덩어리 느낌을 표현하기 쉽기 때문에 연필보다 확연한 명암 대비를 통해 더 큰 부피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목탄은 가루 날림이 있다 보니 머리 모양을 고정하는 헤어스프레이처럼 목탄 전용 픽서(Fixative)를 사용하여 가루 날림을 방지하면 좀 더 오랫동안 그림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목탄(숯)에 점토를 더한 콩테(Conte)라는 재료도 있는데요. 이는 처음 발명해 낸 니콜라 자크 콩테(Nicolas Jacques Conte, 프랑스의 화가이자 화학자 겸 군인)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콩테는 우리가 사용하는 연필의 원형이지만 연필보다 진하기 때문에 더 빠르게 명암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콩테의 심은 연필보다 훨씬 무르다 보니 칼이나 연필깎이를 사용한다면 뚝뚝 부러져버리죠. 그래도 콩테는 점성이 있는 점토가 더해지다 보니 가루 날림이 적은 편입니다. 특히 오일 타입 콩테의 경우 손으로 문질러도 잘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거의 번지지 않는 특성이 있죠!

목탄이 단일 색상이라면 콩테의 기본 색상은 크게 4가지로 검은색(Black), 흰색(White), 밝은 갈색인 생귄(Sanguine, Light Red), 흑갈색인 세피아(Dark Brown)로 나눌 수 있습니다(제조사마다 이 안에서 색을 세분화해서 출시하기 때문에 요즘은 아주 다양한 색의 콩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연필과 목탄, 콩테는 미세한 차이여서 원화가 아닌 그림책에서는 서로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만 얇은 선 하나하나가 잘 구분되면서 옅은 흑연의 느낌이라면 연필임을 추측해 볼 수 있고, 진한 숯검정 색인데 안개가 서린 듯한 느낌이라면 목탄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또, 흑연색보다 진한 검은색이거나 컬러가 있고, 부드럽게 묘사된 중에도 선이 도드라진다면 콩테로 그린 그림임을 추측할 수 있죠. 다만 작가들은 목탄 그림에도 날렵하고, 섬세한 묘사를 위해 연필과 콩테를 섞어 사용하기도 해서 100% 단일 재료라고 판단할 수는 없겠습니다.

목탄/콩테로 그린 대표적인 그림책

 

파스텔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파스텔톤을 좋아해요’라고 할 때는 보통 연하고 부드러운 색상을 가리키죠. 파스텔이란 재료는 안료 가루를 문질러서 색감을 표현하는 재료입니다. 그래서 은은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통칭하는 일상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듯해요.

이러한 파스텔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파스텔을 직접 채에 갈아서 가루를 내어 사용하는 하드 파스텔, 종이에 바로 그어서 문지르며 그리는 소프트 파스텔, 마지막으로 유화처럼 강렬한 색채를 만드는 오일 파스텔이 있습니다.

이렇게 분류해 보니 굉장히 복잡한 듯싶지만 단순하게 비교한다면 분필 같은 느낌이 소프트 파스텔이라 할 수 있고요. 우리가 흔히 ‘크레파스’라고 부르는 재료가 바로 오일 파스텔입니다!

소프트 / 하드 파스텔의 경우 가루가 번지면서 부드럽게 표현되는 특징이 있어요. 이 가루는 물에 녹아서 수채화 효과도 낼 수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기법은 액체의 도움 없이 손으로 문지르는 것입니다. 목탄처럼 가루 날림이 있기 때문에 픽서(Fixative)를 사용해야만 그림을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습니다.

또, 많은 경우에 흰 종이가 아닌 색이 있는 종이에 파스텔화를 그리는데요. 파스텔이 연하게 표현되다 보니 색을 쌓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어 이를 상충하기 위함입니다. 종이 바탕색의 도움을 받아 좀 더 깊고 풍성한 색을 연출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파스텔 그림을 볼 때 종이 색과 사용된 색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아도 재밌겠네요!

파스텔로 그린 대표적인 그림책

 

오일 파스텔(크레파스)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개인적으로 ‘크레파스’라고 하면 고사리 같은 유아들의 손에 녹아버려 찐득해진 크레파스가 떠오르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크레파스와 오일 파스텔을 다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1921년 일본 문구회사가 파스텔과 크레용을 섞어서 만든 것이 첫 오일 파스텔이었습니다. 크레파스는 상표명이죠. 1949년 시넬리에라는 페인트 회사가 파블로 피카소와 헨리 괴츠라는 화가를 위해 만든 것이 지금의 전문가용 오일 파스텔이랍니다. 아동용으로 나온 크레파스와 전문가용으로 나온 오일 파스텔은 질적인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도구입니다.

오일 파스텔은 이름 그대로 오일을 섞어서 점착력(끈끈하게 달라붙는 힘)을 높인 파스텔을 말합니다. 소프트 파스텔과 다르게 손으로 문질렀을 때 잘 섞인다는 느낌보다 뻑뻑한 느낌을 받죠. 그래서 오일 파스텔을 섞거나 부드럽게 번진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면봉을 사용하거나 종이를 뭉쳐서 연필 모양으로 만든 ‘찰필’이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또, 소프트 파스텔이 투명함을 가진 도구라면 오일 파스텔은 불투명한 매력을 갖고 있어요. 덕분에 어두운 색 위에 밝은 색을 얹힐 수 있죠. 색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서 유화처럼 진하지만 붓이 아닌 연필처럼 드로잉한 느낌이 난다면 오일 파스텔을 쓴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오일 파스텔을 ‘유화 작업을 위한 밑그림용 보조 도구’로 여겼었지만 지금은 독자적으로 사용하면서 완성도를 갖춘 멋진 그림을 만드는 재료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오일 파스텔 그림은 날카롭고 섬세한 느낌보다 부드럽고 뭉툭한 느낌을 주는데요. 마치 따뜻한 프라이팬에 버터를 바르는 것처럼 뭉개지듯 그려지기 때문이에요. 다른 건식 재료를 쓸 때에도 발색과 발림성이 좋으면 ‘마치 오일 파스텔처럼 진하게 / 부드럽게 / 꾸덕꾸덕하게 발려요.’라는 표현을 할 만큼 말이죠. 하지만, 다 그려진 후에도 찐득하게 묻어나기 때문에 전용 픽서(Fixative)나 표면을 코팅해 주는 바니쉬(Varnish)를 발라주어야 합니다.

오일 파스텔(크레파스)로 그린 대표적인 그림책

  • 여름빛 / 문지나 / 사계절 / 2023
  • 점옥이 / 오승민 / 문학과지성사 / 2023

 

크레용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기록상 크레용은 18세기 전후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목탄에 오일을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검은색이 주색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다양한 염료가 개발되면서 색의 범주가 늘어났고 오일 대신 왁스를 사용해 크레용을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해요. 우리에게는 ‘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동요도 있을 만큼 크레파스가 친숙하지만 크레용에 좀 더 깊은 역사가 있었네요!

크레용의 아쉬운 점을 보완해서 만든 것이 오일 파스텔인 만큼 크레용과 오일 파스텔은 비슷한 듯 서로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크레용은 왁스를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손에 묻어나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종이에서도 안료가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또, 색을 섞기 어렵고 다소 연하게 표현되는 편이죠.
반면 오일 파스텔은 오일이 주원료이다 보니 크레용보다 안료가 훨씬 잘 묻어나요. 특별히 더 무르게 만든 오일 파스텔의 경우 나이프로 잘라서 종이에 펴 바르면 마치 유화 물감을 바른 듯한 질감 표현이 가능하죠. 다만 오일 파스텔은 뭉개지듯 그려지기 때문에 자칫 그림이 둔하게 보일 수 있어요.

이런 이유에서 좀 더 컨트롤이 쉬운 크레용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전문가용 크레용의 경우 안료의 비율이 높아서 오일 파스텔처럼 진하고 발림성이 좋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일 파스텔처럼 색의 밀도가 충분한데도 잘 정돈된 섬세함이 느껴진다면 크레용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크레용이 사용된 대표적인 그림책

  • 휴가 / 이명애 / 모래알 / 2021 (색연필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 고정순 / 노란상상 / 2021 (콜라주 기법과 함께 사용했습니다)

 

색연필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색연필은 그림책 작가들이 애용하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연필처럼 섬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서 다양한 색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또, 그라데이션 기법을 사용해 서로 다른 색을 연결할 수 있고, 세게 눌러 그리면 마치 물감으로 색칠한 듯 선명하고 밀도 높은 색상을 만들어 낼 수 있죠. 색연필로 선을 긋다 보면 안료가 뭉치는 부분과 풀어지는 부분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특유의 따뜻하고 양모펠트 같은 부드러움을 만들어내는 듯합니다.

전문가용 색연필의 경우 대개 나무 연필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또, “마치 오일 파스텔처럼 부드럽고 진하게 그려져요!”라고 할 만큼 색연필 역시 부드러운 발림성을 갖고 있어요. 색이 진하고 밀도가 높을수록 심은 무르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거나 색연필이 곯아버리기도 합니다.

붓이나 판화, 콜라주 기법과 다르게 색연필 같은 건식 재료(물이나 기름과 같이 액체를 사용하지 않고 안료를 쓸 수 있는 재료)는 작가의 의도가 잘 반영됩니다. 우연적인 효과 보다 작가의 손끝에서 섬세하게 기획된 그림이 그려지죠. 색연필로 그려진 그림책을 만나면 어떤 색을 썼는지, 어떤 부분은 진하게 표현했고 또 어떤 부분은 부슬부슬 연하게 그렸는지, 어떤 색들로 그라데이션을 주었는지 등 작가가 색연필을 사용한 흔적을 찬찬히 따라가 보는 것도 그림책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색연필로 그린 대표적인 그림책

 

펜(딥펜)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옛 만화가의 책상 위에 있을 것처럼 생긴 이 미술도구는 딥펜(Dip Pen)입니다. 딥펜은 펜촉과 펜대가 따로 구성되어 있고, 영단어 딥(Dip, 살짝 담그다)의 의미대로 잉크병을 따로 두어 펜촉에 잉크를 찍어서 사용합니다. 카트리지(cartridge)에서 저장해 둔 잉크를 흘러나오게 하는 만년필과 차이가 있죠. 만년필의 경우 매번 잉크를 찍지 않아도 되어 편리하지만 잉크가 모세관으로 잘 흘러 들어가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좀 더 묽은 편입니다. 반면 잉크병에 따로 담긴 잉크는 점도가 높아 선을 그릴 때 이어나가기 쉽고, 더 쨍한 발색력을 가집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딥펜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잉크만 따로 수채화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죠.

일반 펜의 경우 종이 위에 잉크가 얹힌다면, 딥펜의 경우엔 날카로운 펜촉에 종이가 미세하게 눌리고 그 속에 잉크가 스며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에서 훨씬 더 선명하고 잉크가 쏙 박혀 있는 인상을 받습니다. 또, 펜촉을 누르는 압력에 따라 선의 굵기가 달라지고, 잉크가 부족하면 종이를 긁는 듯한 거친 선이 나오기 때문에 딥펜으로 그린 선은 참 다채롭고, 재밌습니다!

펜이 사용된 대표적인 그림책

 

마카(알코올 / 아크릴)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백슬기의 볼수록 그림, 책!] 그림 재료 탐구 ① 드로잉(Drawing)

연필꽂이에 한 자루씩 갖고 있는 ‘네임펜’이나 ‘유성 매직’처럼 미술 도구 중에도 마카가 있습니다. 마카는 알코올 포함 유무에 따라 일반 마카와 아크릴 마카로 구분할 수 있어요!

일반 마카는 한쪽은 두꺼운 직선을 그릴 수 있도록 네모난 팁이 달려있고 반대쪽은 좀 더 가는 선을 그릴 수 있도록 얇고 둥근 팁이 있습니다. 알코올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특유의 화학 냄새가 나고, 그림을 그릴 때도 알코올 성분으로 인해 종이가 잠시 젖었다가 금세 마르는 것을 볼 수 있죠. 이러한 알코올 성분이 마르기 전에 색을 섞으면 자연스러운 블렌딩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또, 긋는 횟수에 따라 투명한 표현부터 아주 진한 표현까지 가능하고, 마카가 지나간 자국을 일부러 남기면 질감 표현도 가능해요. 이러한 특징 때문에 미대 입시생부터 캐릭터나 의류 디자이너, 건축가까지도 마카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아크릴 마카는 브랜드에 따라 페인트 마카라고도 불립니다. 이름처럼 물감이나 페인트를 쓴 듯 진한 발색력을 갖고 있어서 밑 색이 잘 비치지 않죠. 또, 종이뿐 아니라 유리나 금속처럼 매끄러운 표면에도 지워지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천이나 돌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물감이나 페인트를 부은 것처럼 색이 진한데도 가느다란 선이나 섬세한 표현이 돋보인다면 ‘아크릴 마카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 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마카가 사용된 대표적인 그림책


💬 알면 사랑하게 된다

본 연재를 준비하며 ‘알면 사랑하게 된다’라고 간결하게 기억하던 말의 출처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1700년대 조선 후기 미술 애호가이자 전설적인 컬렉터였던 석농 김광국은 자신의 서화 수집품을 화첩 <석농화원>으로 꾸려 냈고, 동시대의 문인 유한준이 이에 대한 발문을 남긴 것이 ‘알면 사랑하게 된다’의 원문이었습니다.

그림에는 그것을 아는 자, 사랑하는 자, 보는 자, 모으는 자가 있다. 한갓 쌓아두는 것이라면 잘 본다고 할 수 없고, 본다고 해도 칠해진 것밖에 분별하지 못하면 아직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해도 오직 채색과 형태만을 추구한다면 아직 안다고 할 수 없다. 안다는 것은 화법은 물론이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오묘한 이치와 정신까지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림의 묘미는 잘 안다는 데 있으며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때 수장한 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한 번의 재료 탐구로 오묘한 이치를 꿰뚫는 안목이 생기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림책을 더 사랑하게 되고, 나아가 앎의 기쁨으로 책장 속 그림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림 재료 탐구 ② 페인팅(Painting)>으로 이어집니다.

※ 각 재료별 사진과 예시 그림은 백슬기 객원 에디터가 직접 촬영하고 그렸습니다. 작가의 사전 허락 없이 원문(사진 및 그림 포함) 전부 또는 일부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할 수 없습니다.

백 슬기

침대맡에 그림책을 두는 사람.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며 살고 있고, 가온빛에서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이 사람들에게 꽤 힘을 주고, 퍽 기억에 남기를 소망합니다. | skpaik100@naver.com | 인터뷰 보기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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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들
프린들
2024/04/12 08:28

우와! 알찬 정보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 말을 새기며 오늘하루를 알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림책에빠진50대아저씨
그림책에빠진50대아저씨
2024/04/12 13:37

안 그래도 정말 궁금했던 것인데 …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니 너무 잘 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백승진
백승진
2024/04/12 21:36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홍선수
홍선수
2024/04/12 21:47

연필 하나에도 이렇게 다양했다니!
다양한 드로잉 재료를 알게되어 새삼 놀랐네요^^쑥쓰럽~;;
꼬꼬마랑 그림 그릴 때 참고해야겠어요.

뽀로로
뽀로로
2024/04/13 10:35

와 궁금했던 내용들도 많고 글도 그림도 사진도 너무 이쁘네요

작은꽃씨
작은꽃씨
2024/04/17 22:18

우와, 이런 글을 써주시다니, 참 알고 싶어하던 내용이에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맹은
서맹은
2024/04/21 21:45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림을 볼 때마다 이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표현이 되었지? 멋지지? 아름답지? 환상적이지? 궁금했는데 다양한 재료의 특성과 관련된 그림책까지 올려 주시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림책 조금 더 사랑하게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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