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에는

한밤중에 자는 아이를 깨워 도망치듯 이사한 곳은 공사장 한 켠에 세워둔 봉고차. 아빠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아이는 하루종일 차 안에서 아빠를 기다립니다. 아빠는 밤마다 아이에게 약속합니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어!”라고. 아이는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얼만큼이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아빠가 말한 다음 달이 되면 학교 가는 날은 또 다음 달이 되고 마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아이는 현실을 조금씩 이해합니다.

그렇게 한동안 차가 아니라 집인줄로만 알고 지내던 그 차가 실제로 움직이기도 하는 자동차라는 걸 깨닫는 날이 찾아옵니다. 낯선 어른들이 저만치서 사납게 달려오고 허겁지겁 올라탄 아빠는 급하게 차를 출발시키고 정신없이 도망쳤으니까요.

이제 안전하다 싶을만큼 달린 뒤 차를 세운 아빠는 운전대에 엎어져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상황이지만 아이의 가슴은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아이의 손은 자기도 모르게 아빠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이고 있습니다. 덩치 커다란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작아보이고, 작은 아이는 어른처럼 듬직합니다.

아빠는 울면서 말한다.
“다음 달에는 꼭 학교에 보내 줄게.”
아빠가 울지만 않는다면
학교는 다다다다다음 달에 가도 되는데…
아빠가 불쌍하다.

점심 시간이 되면 공사장에서 나눠준 밥을 들고 달려오는 아빠, 어린이는 꼭 우유를 마셔야 한다며 아들의 아침으로 삼각김밥과 우유를 꼭 준비해주는 아빠, 쉬는 날이면 목욕탕에 가서 아들을 힘차게 씻겨주는 아빠, 비가 와서 일이 없는 날이면 도서관에 데려가서 함께 책을 읽고 컵라면과 우유를 사주는 자상한 아빠… 학교를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서도 아이에게만큼은 웃음과 사랑을 잃지 않는 그런 아빠 덕분에 비록 봉고차 안에서 살아가는 나날들에도 아이는 꿈과 희망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자신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아빠를 어루만져줄 수 있을 만큼 말입니다.

몇 번째 다음 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다음 달에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와 새로운 ‘다음 달에는…’ 약속을 합니다. 새 약속은 과연 어떤 걸까요? 뿌듯한 아빠 얼굴, 힘차게 고개 끄덕이며 활짝 웃는 아이가 그려진 마지막 장면에서 꼭 확인해보세요.


다음 달에는

다음 달에는

글/그림 전미화 | 사계절
(2022/03/28)

“다음 달에는”은 예전에 소개했었던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운전대에 엎어져 우는 아빠의 등을 토닥이는 아이를 보며 ‘언젠가는…’ 놀이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의 두 모녀가 생각납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야기들을 보며 ‘현실이야 어디 그래…’라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절망 그 자체로 끝나는 이야기건,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건 그 안에 담긴 화자의 바람은 결국 ‘희망’이라는 점입니다. “화가 호로록 풀리는 책”에서 ‘화를 잘 푸는 것도 재능’이라고 한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역시 재능인가 봅니다. 물론 어떠한 상황에서도 투덜댈 수 있는 것 역시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죠(사실 이건 재능이라기보다는 반복에 의해 굳어진 버릇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재능을 원하나요? 이왕이면 희망 쪽이 더 낫지 않을까요?

현실이야 어디 그래… 이러고는 그냥 무심한 채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의 배려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없는지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편이 훨씬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이 하나 둘 모이다보면 웃음으로,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살맛 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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