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원제 : It’s a No-Money Day)
글/그림 케이트 밀너 | 옮김 정철우 | 꿈꾸는섬
(발행 : 2020/09/01)


행복은 어디서 올까요? 가난한 사람들도 마음 속에 희망이란 걸 품고 있을까요? 물론 관념적으로는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라고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사실 마음으로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한데 어떻게 행복하고, 삶이 고단하고 힘겨운데 어떻게 희망이 생기냐고… 말이죠.

삶의 가장 힘든 시기를 겪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한 모녀의 하루를 지켜 보며 그 의구심을 조금은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삶의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우리 마음 속 희망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지 보고 느끼게 해주는 그림책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입니다.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엄마, 일어나요. 배고파요!

배가 고파서 엄마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난 아이. 오늘의 주인공인 두 모녀의 하루는 아이의 배고픔으로 시작됩니다.

찬장문을 열어보니 먹을 거라고는 식빵 한 장과 티백 서너 개뿐. 아이가 좋아하는 시리얼은 다 떨어졌습니다. 오늘 아이의 아침 식사는 식빵 한 장, 엄마는 차 한 잔으로 겨우 허기를 달랩니다.

다행히 엄마는 배가 안 고프대요.

두 모녀에게 아직 ‘다행히…’라는 말이 남아 있다는 것, 초라한 아침 식사지만 아직은 서로 마주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엄마가 열심히 일해야 버스도 타고 집세도 내고
먹을 것을 살 수 있어요.

나는 ‘기타 등등’ 저금통을 맡았어요.
엄마는 이 유리병이 가득 차면 고양이를 기를 수 있다고 해요.
언젠가는 그날이 올 거예요.

엄마와 아이에게는 다섯 개의 저금통이 있습니다. 교통비, 집세, 식비, 공과금,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기타 등등. 아이가 예쁜 고양이를 기를 수 있으려면 ‘기타 등등’ 저금통이 빨리 채워져야 하는데 아직은 동전 대신 ‘언젠가’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그런데 오늘은 돈이 없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엄마에게는 용도가 딱 정해져서 채워지면 바로 비워지고 말 저금통 다섯 개를 채우는 일조차 버겁습니다. 전기가 끊길까봐 집세 저금통에서 조금 빼서 쓰고, 아이 끼니 위해 교통비 저금통에서 조금 빼서 쓸 수밖에 없는 힘겨운 나날들.

그마저도 오늘은 모듬 저금통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아침은 식빵 한 장으로 간신히 먹였지만 아직 두 끼가 남아 있습니다. 언제 또 아이가 ‘엄마 나 배고파’할지 모릅니다. 일이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버티고 저녁 한 끼라도 든든히 먹일텐데, 오늘은 일거리조차 없습니다.

엄마 품에 포옥 안긴 아이. 아이는 엄마 품이 포근해서 행복하고, 엄마는 달큰한 아이의 체취에서 희망을 찾고 힘을 냅니다.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돈이 없는 날에도 할 수 있는 놀거리는 많아요.

일거리가 없는 덕분(?)에 엄마와 아이는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기도 하고, 즐거운 노래도 부르고, 비둘기를 쫓아 다니거나 중고품 가게에서 맘껏 멋도 내봐요. 진짜 고양이를 기르기 전까지는 엄마 잠옷으로 만든 고양이를 데리고 놀구요.

중고품 가게에서 한껏 멋을 낸 두 모녀. 아이는 하루종일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배고픔도 잊은 채 즐겁기만 합니다. 거울 앞에 선 아이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데 엄마는 아이만큼 활짝 웃지는 못합니다. 다음 끼니를 걱정하느라, 내일 또 일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에…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엄마는 푸드뱅크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좋아요.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와 함께 푸드뱅크 앞에 늘어선 줄에 섭니다. 엄마는 어떻게 하든 이곳에 오지 않기 위해 늘 열심히 살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엄마가 이상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랑 주스도 먹을 수 있고, 자기랑 죽이 척척 맞는 아주머니랑 수다도 실컷 떨 수 있는데 엄마는 왜 여기 오는 걸 싫어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푸드뱅크는 기본적인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기부받은 식재료를 나눠주는 복지 제도입니다. 1967년에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나는 ‘언젠가는’ 놀이를 해요.
‘언젠가는…’ 엄마가 시작하면
‘언젠가는…’ 나도 따라 말해요.

언젠가는 자동차도 사고, 언젠가는 예쁘고 따뜻한 패딩도 사고, 언젠가는 달콤한 케이크도 실컷 먹고, 언젠가는 예쁜 고양이도 길러야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모녀의 ‘언젠가는’ 놀이. 아이에게는 희망을 꿈꾸는 신나는 놀이고, 엄마에게는 버거운 삶을 견뎌내기 위한 응원입니다.

언젠가는
엄마와 내가 빈 저금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거예요.
그래도 오늘 밤에는 마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 배가 부르답니다.

푸드뱅크에서 가져온 음식들로 맛있는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난 아이는 행복합니다. 비록 기부 받은 재료로 차린 한 끼였지만 아이를 든든하게 먹일 수 있어서 걱정 가득했던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아이의 환한 웃음에서 엄마는 내일의 희망을 찾습니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결코 행복을 잃지 않는 모녀의 하루를 지켜보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과 또 새로운 내일을 힘차게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와 ‘언젠가는’ 놀이를 하며 예쁜 고양이를 키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에게서 힘찬 희망을 배웁니다. 잠깐이라도 세상을 원망할 법도 한데 한 끼의 포만감이 자신들을 잊지 않고 보살펴준 이웃 덕분이라고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엄마에게서 행복의 의미를 배웁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 마주 잡은 두 손을 절대로 놓지 않는 모녀의 하루를 통해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의 의미와 희망이 안겨주는 위대한 가능성을 배우는 그림책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입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One Reply to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