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그림, 책!]은 그림으로 그림책을 읽어보는 시간! 한 장 한 장 넘겨볼수록 그림이 주는 감동을 배가시켜 줄 새로운 형식의 그림책 이야기입니다. 그림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백슬기 객원 에디터의 톡톡 튀는 그림책 이야기에 푹 빠져 보세요!

※ 본 글의 저작권은 백슬기 객원 에디터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할 수 없습니다.


아트'브라카다브라

아트브라카다브라

(원제: Art’bracadabra)
글/그림 라파엘 가르니에 | 옮김 박정연 | 로그프레스
(2021/10/01)


“아트’브라카다브라”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라파엘 가르니에가 예술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책입니다. 왠지 마법사가 생각나는 듯한 제목은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다!’라는 서양의 마술 주문 ‘아브라카다브라’를 응용해서 지었다고 해요. 마법처럼 펼쳐지는 예술 세계를 담은 그림책이기에 유쾌하면서도 참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됩니다!

라파엘 가르니에는 현대 미술부터 디자인과 패션,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스스로를 ‘디지털 우주비행사’라고 부른다고 해요. 이 그림책의 시작은 파리 퐁피두 센터의 어린이를 위한 웹 시리즈 ‘Mon Oeil(직역: 나의 시각)’에 참여하며 만든 10편의 짧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8년에 아마테라 출판사와 협업하며 지금의 “아트’브라카다브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은 눈길을 확 사로잡아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는데요. 그 효과를 독자들이 종이 위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플랩북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직접 만져보고, 당겨보고, 펼쳐보면서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손끝에서도 예술이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볼수록 그림,책!> 코너의 시작을 알리는 “아트’브라카다브라”에는 어떤 그림의 방식이 있는지, 작가가 소개하는 예술의 구성요소들로 이 그림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점(Point)
예술이라고 부르는 끝없는 우주에서의 어떤 만남

붓과 캔버스의 첫 만남, 예술의 시작점이죠.
점은 예술가라는 마법사가 지팡이 끝으로 심은 작은 씨앗이에요.

우리가 처음으로 점, 선, 면을 접했을 때는 학교 수학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점=도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정도로 간단하게 배우고, 도형의 각도를 구하는 등 수학적인 기술 익히기에 중점을 두었죠. 그래서 이 그림책에서 만나는 ‘점’의 존재는 더 마법같이 다가옵니다. 붓과 캔버스의 첫 만남이자 예술의 시작점을 직접 손으로 펼쳐보고 만져보며 느끼게 되는 것이죠!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예술의 바탕이 될 수 있는 큰 힘을 갖고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사실 아무리 작더라도 모든 점은 ‘방사력’을 갖고 있습니다. 방사력이란 중심에서 원의 둘레 방향 혹은 원의 둘레에서 중심으로 뻗는 힘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예술가는 점의 ‘뻗는 힘(방사력)’을 이용해서 때로는 배경을 압도해버리는 장관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안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을 만들기도 하죠.

아트'브라카다브라

위 그림은 흰 점과 검은 점의 배치, 점 사이의 간격이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방사력을 가진 수많은 점들을 통해 더 큰 방사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덕분에 종이 위에서도 씨앗에서 새싹이 토독! 하고 터져 나오는 듯한 역동적인 움직임을 느껴볼 수 있죠!

📺 Mon Oeil 01. Le point(점) [영상 보기]

 

선(Line)
모든 것의 테두리이자 언젠가 완성될 밑그림

마치 종이 위에서 산책을 하듯
아직 존재하지 않는 형태를 향해 나아가죠.

‘선’은 수학에서처럼 ‘점이 움직인 자리’를 뜻합니다. 또, 우리가 잘 잊고 지내지만 모든 것의 테두리는 ‘선’이기도 하죠! 작가는 오돌토돌 섬세하게 책의 낱장을 오려내어 ‘테두리에 존재하는 선’을 직접 느껴볼 수 있게 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예술이 손끝에서 선의 감각으로 피어나는 순간입니다.

아트'브라카다브라

위 그림들은 검은 선이 인쇄된 투명 필름지 덕분에 선을 더하고, 빼는 것의 차이를 직접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 페이지를 넘기면서 예술가처럼 선의 조련사가 되어보는 것이죠! 또, 투명 필름지를 왔다 갔다 넘기다 보면 검은 선 뿐 아니라 선들 사이의 공간 역시 ‘흰 선’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려지는 선도, 여백의 선도 모두 예술가가 짜낸 실이기 때문이죠!

📺 Mon Oeil 02. La ligne(선) [영상 보기]

 

형태(Form)
아름다운 면의 일부이자 의도를 담는 그릇

형태는 자유로워요.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 우리가 ‘추상화’라 부르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도 하죠.

수학에서는 선이 모여 생기는 표면을 ‘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예술에서는 좀 더 미학적인 접근으로 ‘면’을 만들어냅니다. 바로, ‘형태’, ‘질감’, ‘도구’와 ‘색’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면’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 그림책에 그려진 형태, 질감, 도구와 색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일상적이지 않고 인공적인 느낌이 가득하다는 점이죠. 일상적인 나무, 풀잎 등등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굉장히 단순화 시키고 인공적인 화려한 색상을 썼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그림책이 예술의 구성 요소 10가지를 소개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민들레의 구성요소를 소개하는 그림책이었다면 꽃잎과 잎, 줄기나 뿌리 등을 좀 더 사실적으로 그렸을 겁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의 주제인 ‘예술’은 고정된 형상을 갖고 있지 않죠. 사람마다 갖고 있는 ‘예술’에 대한 느낌이나 머릿속에 그려지는 형상이 다른데 그것을 모두가 공감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엮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일상적인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도록 하면서도 특정한 형상 때문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 예술은 쉽고, 재밌는 세계랍니다! – 가 흐려지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만을 사용해 예술을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 세계인 자연이나 사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충분히 마법 같은 예술 세계를 오감으로 느끼며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이지 않고 인공적인 표현을 사용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라파엘 가르니에의 고유한 작업 방식 때문입니다. 바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재현 미술의 방식이 아닌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표현하는 ‘그래픽적인 형태’로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그래픽 디자인, 음반 재킷, 책, 포스터, 의류 브랜드 디자인, 큐레이션과 공간연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여준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래픽적 형태를 고집하는 그의 스타일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트'브라카다브라

<사진 출처: 라파엘 가르니에의 인스타그램>

이 두 가지가 “아트’브라카다브라”가 일상 세계와 구분되는 예술 세계를 그래픽적으로 표현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 Mon Oeil 03. La forme(형태) [영상 보기]

 

질감(Texture)과 도구(Tool)
아름다운 면의 일부이자 의도를 담는 그릇

질감은 동물의 털과 비슷해요.
예술가는 자신의 개성에 어울리는 도구를 사용해 표현해요.
속삭이거나, 소리를 높이거나, 때론 웃음 소리를 섞어서.

이 그림책을 만들 때 ‘특정한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도록 하기’ 라는 의도는 ‘질감’과 ‘도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습니다. ‘질감’과 ‘도구’가 무엇인지 소개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이 그림책에서 촉감이 느껴지는 그림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이 단면 색종이를 오려 놓은 것 같아서 특정한 감각이 떠오르지 않죠.

‘질감’은 ‘도구’와 굉장히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만약 작가가 물에 녹여 쓰는 수채화 물감을 도구로 선택했다면 지금과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물이 번진 느낌, 물방울이 튀긴 느낌, 색이 진해지거나 연해지는 부분에서 우리는 ‘질감’을 느꼈을 테니까요.

덕분에 형태와 마찬가지로 질감과 도구도 같은 의도가 적용된 것을 알 수 있고, 평소 작가가 추구해오던 그래픽적인 작업 방식을 잘 담고 있습니다.

📺 Mon Oeil 04. La matière(질감) [영상 보기]
📺 Mon Oeil 05. l’Outil(도구) [영상 보기]

 

색(Color)
아름다운 면의 일부이자 의도를 담는 그릇

색은 예술가의 기분을 드러내요.
팔레트처럼 온갖 색이 존재하죠.

아트'브라카다브라이 그림책은 ‘색’에 대해서 “예술가의 기분을 드러내고, 감정을 전달한다” 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은 전체적인 구성을 고려하지 않고 예술가의 기분만을 표현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 그림책에 사용된 색을 살펴보며 어떻게 전체적인 구성을 고려한 감정 표현이 됐는지 알아볼까요?

흰색과 검은색을 제외한다면 굉장히 밝고(고명도), 탁하지 않은 쨍한 색상(고채도)을 사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형태와 질감을 결정했던 기준이 색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떠올려지는 자연물의 색상이 아닌, 작가가 만들어낸 색(인공적인 색)을 통해 고정관념 없이 마법 같은 예술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바로 ‘대비’ 효과 때문일 것입니다.

📺 Mon Oeil 06. La couleur(색) [영상 보기]

 

대비(Contrast)
예술 작품의 맛을 내는 소금

대비가 없다면 삶은 무미건조할 거예요.

작가는 ‘대비’가 예술작품에서 ’소금’과 같다고 소개합니다. 앞서 소개된 구성 요소들(점, 선, 형태, 질감, 도구, 색)은 당근이나 감자, 돼지고기처럼 요리의 재료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입맛을 사로잡는 맛있는 요리를 완성하기에 조금 부족합니다. 소금이 음식의 감칠맛을 내듯이 ‘대비’가 예술에서 미학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아트'브라카다브라

이런 관점에서 이 그림책의 ‘형태’, ’질감’, ’색’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형태와 질감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색은 이와 반대로 매우 화려하고 다채롭습니다. 형태와 질감이 단순 명료한데 색깔까지 흑백뿐이었다면 이 그림책의 재미는 훅! 떨어졌을 거예요. 반대로 형태와 질감이 색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웠다면 독자들은 너무 많은 시각 정보 때문에 도대체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자칫 ‘예술은 역시 어렵고 복잡해!’라고 느끼게 될 수 있죠.

그래서 작가는 ‘색’도 전체적인 구성의 관점에서 ‘대비’를 고려해 정했을 것입니다.

📺 Mon Oeil 07. Le contraste(대비) [영상 보기]

 

입체감(Volume)
종이 위에서 실물처럼 피어나는 마법

그림자는 빛과 숨바꼭질을 해요.
이 놀이는 입체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죠.

아트'브라카다브라

앞선 내용에서 이야기했듯이 라파엘 가르니에는 입체감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주로 평평하게 단면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이 그림책 전체를 통틀어 입체적인 그림은 입체감을 설명하기 위한 단 두 장뿐이지만 촉각과 그림자놀이로 입체감을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올록볼록 종이에 엠보싱 처리를 하거나 핸드폰의 플래시 불빛만으로도 즉석에서 빛과 숨바꼭질 놀이를 할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 Mon Oeil 08. Le volume(입체감) [영상 보기]

 

구성(Composition)
보이지 않는 작품의 뼈대

아름다움엔 적절한 비율이 필요하고,
균형은 필수적이죠.

작가는 구성을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려 작품의 뼈대를 세운다.” 라고 소개합니다. 한 장의 그림 안에서도 구성은 참 중요하지만 그러한 한 장 한 장의 그림들이 엮어진 그림책에서는 ‘전체 맥락을 이어가는 보이지 않는 구성’ 또한 중요합니다. 라파엘 가르니에가 일관된 기준을 통해 형태와 질감, 색을 구성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구성의 이유를 분석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술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색은 감정을 전달하는 꽃” 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작가가 이 그림책을 통해 우리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분석의 결과가 아닌 예술로 느껴지는 감정들일 테니까요!

📺 Mon Oeil 09. La composition(구성) [영상 보기]

 

원근법(Perspective)
예술 세계를 향한 차원의 문

꽉 잡아야 해요! 예술가는 원근법으로 우리를…
우주로 보낼지도 몰라요!

아트'브라카다브라

작은 점으로 시작했던 예술 여행이 어느덧 ‘원근법’을 통해 다시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며 마무리됩니다.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이동선이 가득 담긴 페이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형태와 질감 덩어리들, 꼬불꼬불한 선이 펼쳐진 페이지를 차례로 넘기면 ‘원근법’을 감각적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빨려 들어가는 깊! 이! 감!으로 말이죠.

마지막 마침표 같은 검은 점 하나에서 예술 여행의 막이 내려집니다. 그래픽 스타일의 그림이 주는 미학과 수미상관 구성에서 오는 아름다움, 무엇보다 시를 읽는 듯한 표현들까지..! 볼수록 ‘예술’의 다양한 맛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마법 같은 그림책입니다.

📺 Mon Oeil 10. La perspective(원근법) [영상 보기]

 

“아트’브라카다브라”‘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술을 구성하는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주며 새로운 세계를 꽃처럼 피워내거든요. 예술은 진지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느꼈던 분들, 미술을 암기 과목처럼 공부했던 분들까지도 재밌고 새롭게 예술의 세계에 스며들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백 슬기

침대맡에 그림책을 두는 사람.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며 살고 있고, 가온빛에서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이 사람들에게 꽤 힘을 주고, 퍽 기억에 남기를 소망합니다. | skpaik100@naver.com | 인터뷰 보기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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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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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책
2023/05/19 07:52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지는 그림책이네요.
제목도 재밌어요. 점점 책장이 비좁아 지더라도
인정하고 사서 보아야겠습니다.^^

홍선수
홍선수
2023/05/20 08:35

점선색의 움직임과 조화로움이 재밌고 따라 그리고, 오리고 싶어지네요.~잘읽었습니다^^

이 선주
Editor
2023/06/06 22:06
답글 to  홍선수

책도 재미있지만
아, 해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보고 또 보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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