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린드스르툄의 그림책들은 보고 나면 ‘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과 그림 모두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서 그 속에 담아낸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눅들 것 까지는 없습니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 살아온 삶의 이해 속에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니까요. 한 번 두 번 거듭해서 읽고 그림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마음속으로 가만히 귀 기울여 보세요. 글과 글 사이에서, 그림과 그림 사이에서 작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작가는 미완의 작품을 독자들에게 건네고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비워둔 행간과 여백을 독자들이 저마다의 삶의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주길 기다리면서 말이죠.

오늘 소개하는 에바 린드스트룀의 두 권의 그림책은 유난히 더 그림과 이야기 속에 여백이 많습니다. 독자들과 잔뜩 수다라도 떨고 싶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죠. 독자들에게 해석의 권한을 훨씬 더 많이 내어준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읽기 참 좋은 그림책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른들보다 훨씬 더 풍성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거든요.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나는 너어무 바빠』와 살면서 얽히고설키는 관계 속에서 관계의 소중함 못지 않게 나를 잃지 않고 지키는 것 또한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림책 『나는 물이 싫어』입니다.


나는 너어무 바빠

나는 너어무 바빠

(원제 : MYCKET ATT GÖRA HELA TIDEN)
글/그림 에바 린드스트룀 | 옮김 이유진 | 단추
(2023/05/12)

『나는 너어무 바빠』는 어린아이와 세 마리의 반려견이 주인공입니다. 특별한 스토리 없이 아이가 깨서 개들을 깨우고 함께 뛰어 놀고, 달아나거나 몰래 숨고 또 찾으면서 보내는 하루가 그려져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개들은 아주 크게, 아이는 아주 조그맣게 그렸다는 점입니다. 아래 그림들처럼 말이죠.

나는 너어무 바빠

나는 너어무 바빠

나는 너어무 바빠

겉표지 포함해서 모두 열세 장의 그림으로 구성되었는데 겉표지와 마지막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열한 장에는 각 그림마다 한 개의 단어만 적혀 있습니다. 깨다, 깨우다, 달리다, 뛰다, 생각하다, 애먹이다, 달아나다, 한숨쉬다, 몰래숨다, 찾다, 만나다, 모두 열한 개의 단어를 단서로 그림을 보며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찾아내야 합니다.

아이가 깬 다음 개들을 깨우는 장면을 가만히 살펴 보면 왼쪽 페이지엔 슬쩍 곁눈질로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개의 표정이 재미납니다. 이미 깼지만 아이가 깨워주길 기다리는 걸까요? 아이의 깨우는 재미를 빼앗고 싶지 않은 속 깊은 개네요. 어쩌면 세 마리 중 가장 먼저 깨웠는데 다른 개 깨우러 간 사이 또 자려고 눈치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몰래숨다, 찾다, 만나다 세 단어가 담긴 각각의 그림들도 재미있습니다. 몰래숨었다고 하지만 개들은 아이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엉성하게 숨어 있습니다. 찾고 있는 아이 역시 이미 개들을 발견했지만 도저히 찾지 못하겠는 것 마냥 숨어 있는 개들을 지나쳐 갑니다.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아이와 개들을 보면 서로의 마음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한 다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들입니다.

이 그림책을 보는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선 작가가 제시한 단어와 그림들 사이의 연관성,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들을 찾아보는 겁니다. 열한 장의 그림들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 그림과 그림 사이를 연결짓기 위한 이야기들을 한 번 더 만들어 보는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나는 너어무 바빠』가 매력적인 건 바로 이 일련의 과정 덕분입니다.

누군가에게 어디까지 집중할 수 있는지,
존재의 크기가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 등
타자와의 관계와 일상에 대한 이야기

출판사 서평 중에서

이 그림책에서 출판사가 찾아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찾아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물이 싫어

나는 물이 싫어

(원제 : JAG TYCKER INTE OM VATTEN)
글/그림 에바 린드스트룀 | 옮김 이유진 | 단추
(2021/07/24)

『나는 물이 싫어』는 앞서 소개한 『나는 너어무 바빠』와 달리 정해진 스토리가 있습니다. 물을 싫어하는 알프의 이야기입니다. 물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이 재밌어라 하는 일들 중에는 알프가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올챙이를 잡으러 간다거나 잡아온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면 다시 냇물에 풀어주는 일처럼 말이죠. 하지만 알프가 좋아하는 것도 있죠. 바로 친구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비록 자신이 싫어하는 일들일지라도.

나는 물이 싫어

나는 물이 싫어

나는 물이 싫어

말은 공원 수영장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싫어하는 물에 옷이 다 젖어도 친구들과 함께 수영장에 가는 알프, 차가운 물에 빠질까봐 타기 싫지만 그래도 친구와 함께 카누에 올라타는 알프(결국엔 물에 빠지고 말지만… 😅), 올챙이를 잡으러 가는 것도 싫고 올챙이가 개구리로 자라는 과정을 지켜 보는 것도 싫지만 다들 모여 있는 친구네 집에 빠지지 않고 가서 딴짓을 할지언정 친구들과 함께 하는 알프. 정말 매력적인 친구 아닌가요?(나중에 개구리를 풀어줄 때도 기껏 따라가서는 돌아서서 눈 가리는 알프의 재미난 모습 놓치지 마시길~)

알프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입니다. 물이란 물은 죄다 꽁꽁 얼어버리는 계절이니까요. 썰매를 타고 타고 또 타며 신나게 겨울을 즐기지만… 다시 물의 계절들이 돌아오는 걸 막을 수는 없죠.

다른 친구들은 물놀이를 하는데 나는 행복해.
나는 내가 개구리가 아니라서 너무 기뻐.
너무너무 좋아.
나는 물놀이를 안 해도 돼.

하지만 알프는 불행하지 않아요. 친구들이 신나게 물로 뛰어드는 동안 알프는 열심히 튜브에 바람을 넣었고, 침대처럼 생긴 튜브 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었거든요. 친구들이 물놀이를 하며 행복해 해서, 자신이 물가에서 살아야만 하는 개구리가  아니라서, 물놀이를 안 해도 돼서 기쁘다는 천진한 알프에게서 삶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을 배웁니다.

알프와 친구들 모두 참 멋집니다. 물을 싫어하는 알프와 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친구로서 잘 지내는 걸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꼬맹이들이 몸소 보여주잖아요. 우리 어른들도 잘 못하는 걸, 심지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간들조차 그러지 못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알프와 친구들이 참 대견합니다.

물을 싫어하는 알프가 그걸 극복하고 물에 뛰어들게 된다는 식상한 이야기로 작가가 꼬마 알프를 괴롭히지 않았다는 점도 참 멋집니다. 싫어하는 것 역시 존중되어야 할 우리의 다양한 감정 중 하나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친구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은 다르지만 언제나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알프와 친구들이 멋진 이유, 알프에게 물을 싫어하는 걸 극복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은 작가가 멋진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우리는 모두 타고난 그대로 존중 받아 마땅한 소중한 존재임을 한결같이 보여주니 말입니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을 신나게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자신은 비록 그게 썩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서 또 행복할 수 있는 알프. 그런 알프의 곁을 항상 지켜주는 한결같은 우정의 친구들. 알프와 친구들이 신나게 노는 그림들 속에서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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