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드와 큘란

오늘의 주인공은 룬드 씨와 그의 반려견 큘란입니다. 룬드 씨는 언제나 큘란만 바라봅니다. 큘란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뭐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충실한 집사입니다. 반면 큘란은 까칠하고 무심합니다. 룬드 씨가 저녁으로 맛있게 구운 돼지갈비를 슬쩍 다 먹어 치우고는 왜 자기에겐 구운 음식을 주지 않냐고 따지고, 그 말을 듣고 기껏 사료를 구워 주면 배가 터질 것 같이 부르다며 룬드 씨 침대에 가서 드러눕는 식이죠.

저녁이 되었어요.
숲 위로 달이 하얗고 희미하게 떠 있었어요.
“나는 달이 정말 좋아.” 큘란이 말했어요.
“정말?” 룬드 씨가 말했어요.

큘란이 창밖에 떠 있는 달을 보며 달이 참 좋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룬드 씨는 달을 따러 갈 준비를 합니다. 달을 어떻게 따냐고요? 음… 별도 달도 다 딸 수 있는 건데… 아직 모르셨군요. 원래 사랑하는 이를 위해 따다 주라고 하늘에 걸려 있는 거잖아요. 😄 별로 어렵지도 않아요. 우선 로켓을 만든 후 그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간 다음 별 또는 달 중에서 사랑하는 그(녀)가 원하는 걸 따서 돌아오면 됩니다.

룬드 씨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큘란에게 달을 따다 주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큘란은 시큰둥하기만 합니다. 완성된 로켓을 보면서 “그냥 우주로켓이네.”라고 하거나, 룬드 씨가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달이야!”라며 달을 내밀자 “그래? 고마워.”라고 한 마디 던지는 게 전부였죠. 심지어 속으로는 그다지 별다를 것 없는 꽤 단조로운 달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다음 날 큘란은 아침 해를 보며 “나는 해가 정말 좋아.”라고 말했고, 룬드 씨는 또 “정말?”이라고 말했답니다. 룬드 씨는 또 부지런히 우주로켓을 만들겠죠? 지난밤 달이 사라져서 놀랐던 사람들은 오늘 하루 종일 해가 사라졌다며 또 놀라겠네요.

새로운 날이에요.
어쩌면 전혀 다른 날이었을지도 몰라요.

큘란이 자기는 해가 정말 좋다며 창밖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에 적혀 있는 이 짤막한 두 줄의 글에 『룬드와 큘란』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그저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의 끝없는 되풀이였을지도 모를 나의 하루들이 매일 새로운 날로, 어쩌면 전혀 다른 날처럼 찾아오는 건 바로 사랑 덕분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죠. 물론 룬드 씨와 큘란처럼 집사와 반려동물 사이의 사랑일 수도 있고요.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오늘은 어제와 같을 수 없고,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내일은 오늘과 같을 수 없습니다. 단 하루도 똑같지 않은 수많은 내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그림책 『룬드와 큘란』입니다.


룬드와 큘란

룬드와 큘란

(원제 : Lunds Hund)
글/그림 에바 린드스트룀 | 옮김 이유진 | 단추
(2024/01/05)

아낌없이 주는 사랑꾼 룬드 씨와 그의 사랑을 당당하게 누릴 줄 아는 개 큘란의 늘 새로운 하루들을 담은 『룬드와 큘란』은 사랑이 무엇이고 또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 돌아보게 해 주는 그림책입니다. 단 작가는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엔 정답이 없으니까요. 우리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이니까요.

『룬드와 큘란』을 읽을 때 글만 따라 가면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림을 세심하게 살펴 보면 큘란 역시 사랑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큘란의 목줄을 유심히 보세요. 룬드 씨와 함께 있을 때는 목줄을 차고 있는데 룬드 씨가 달 따러 간 사이 혼자 있는 동안은 목줄이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습니다. 룬드 씨가 달을 따서 돌아왔을 때는 목줄이 큘란의 손에 들려 있고, 그 다음 장면부터는 다시 목줄을 차고 있습니다. 큘란에게 목줄은 아름다운 구속입니다.

룬드 씨를 향한 큘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서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뭘까요? 정답은 여러분이 직접 그림책을 보고 찾아보세요. 😉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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