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소나무

(원제: Furan)
글/그림 리센 아드보게 | 옮김 전시은 | 베틀북

(2023/03/20)


‘동티 난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을 할머니에게서 들어봤어요. ‘동티’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려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걸 뜻해요. 나무를 함부로 베어낸다거나 특정 동물(구렁이 같은)을 죽이거나 하는 식으로 신이 관장하는 자연물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침범했을 때 동티가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땐 그런 거 다 미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옛 어른들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일을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말이죠.

리센 아드보게의 “소나무”를 보았을 때 이 ‘동티 난다’는 말이 딱 떠올랐어요. 기예르모 델 토로의 기묘한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서늘하고 오싹한 느낌의 이 그림책,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살펴볼까요?소나무

한 가족이 꿈에 그리던 집터를 발견했어요. 가족은 그곳에 있던 낡은 집을 허물고 주변을 둘러싼 커다란 소나무들을 베어내어 그 나무로 집을 만들기로 합니다. 뚝딱뚝딱 나무집이 세워집니다. 잘라진 나무는 벽이 되고 가족의 식탁이 되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소나무를 베어내고부터 자꾸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소나무

벽에 못을 박으려고 하면 벽이 흐느끼는 소리를 냈고 못 구멍에서 이상한 물이 흘러나왔어요. 몽땅 다 베어버리고 없는 소나무의 솔잎이나 솔방울들이 집 앞에 쌓여있다거나 밤이면 나뭇가지들이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침대에 개미가 득시글거리거나 하는 식으로요.

나무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는데 나무의 흔적이 나타나 가족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나무는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에요. 집의 모양으로 변한 것일 뿐이죠. 가족은 베어낸 소나무의 속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소나무막내의 보드라운 뺨이 나무껍질처럼 변해가고 가족의 발에서 뿌리가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자 이들은 병원을 찾아갑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았을 때는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았지만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갔어요.

꿈에 그리던 집터에 자신들만의 멋진 새집을 지었을 때만 해도 희망으로 가득해 보였는데 이제 처음의 밝고 희망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그림의 색감도 점점 더 어두워집니다. 마치 햇빛 한 줄 들어오지 않는 나무 그늘 속에 갇힌 사람들처럼 보여요.

어느 날 밤 막내가 엄마 아빠 방문을 열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아빠 내 발이 물을 마시고 싶대요.”

이제 잠시도 발에 물을 담그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 가족, 혹시 우리 가족이 죽게 되는 거냐고 묻는 딸에게 아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죽는다니 무슨 소리! 우리는 여기서 지내고, 여기서 살 거야.
우리는 이곳에서 자라고… 뿌리를 내릴 거란다.”

오싹한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설마?’하고 생각했던 머릿속 상상이 그대로 그림책 속에 펼쳐집니다. 중요한 건 한 가족이 비극을 맞게 되고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자연을 함부로 대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자연의 경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는 그림책으로 꼭 확인해 보세요.

“소나무”는 우리가 그동안 그림책에서 잘 접하지 못했던 서늘함 혹은 오싹함으로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러니 앞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게 좋을 거라고, 그러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후회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땐 이미 늦었다고.

소나무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오싹함이 더해지는데 개인적으로는 속표지에 나오는 이 장면이 가장 무섭게 느껴졌어요.

날카로운 도끼날에 잘린 소나무 가지마다 새빨간 피가 흘러나옵니다. 거기에 잘린 채로 흐느적거리며 기어가는 모습으로 묘사된 나무는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입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 만큼이나 유명한 ‘내 다리 내놔!’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어요.

호흡 크게 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페이지를 열어보라고, 뭐 무서워 봤자 얼마나 무서우려고! 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고 작가가 미리 속표지 그림 속에 경고장을 붙여둔 것 같습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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