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색시

손 없는 색시

기획 예술무대산 | 글 경민선 | 그림 류지연 | 고래뱃속
(발행 : 2019/05/20)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화불단행( 禍不單行)’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는 다소 자조 섞인 뜻이 담겨 있죠. 하지만 이 고사성어에는 불행한 일이 닥쳐왔을 때 또 다른 재앙을 경계하고 대비해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 “손 없는 색시”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색시를 찾아오는 모진 운명, 그녀는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하고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손 없는 색시

전쟁터에서 남편이 보내온 커다란 소포를 받았을 때 색시는 곧 태어날 아기의 침대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상자에는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죽은 색시의 남편이 누워 있었어요.

색시는 손으로 아픈 가슴을 두드리고 손으로 아픈 눈물을 닦으며 울고 또 울었어요. 그렇게 손으로 아픈 모든 곳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을 때 ‘이제 그만하라’며 커다란 목소리로 누군가 소리 질렀어요. 그리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죠.

“네 슬픔은 지겨워!”

손 없는 색시

소리를 지른 것은 다름 아닌 색시의 손이었어요. 갑자기 들이닥친 불운에 눈물 흘리며 아픈 모든 곳을 어루만지던 색시의 손. 손은 색시의 몸에서 뚝 떨어져 나오더니 그만 도망쳐 버렸어요.

“난 내가 만지고 싶은 걸 만지러 떠날 거야!”

모진 운명 앞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색시를 거부하고 스스로 도망쳐 버린 손. 그렇게 색시는 손 없는 색시가 되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손마저 떠나버린 봄비 내리던 그 밤에 색시의 아기가 태어났어요. 모든 것이 색시 곁을 떠나간 밤에 유일하게 아기가 색시를 찾아왔어요.

손 없는 색시

하지만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머리카락도 수염도 하얗게 센 폭삭 늙은 할아범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엄마가 날마다 눈물을 흘려서!
깊고 깊은 한숨을 쉬어서 내가 늙었어!

으앙!”

색시의 슬픔에서 시작된 일련의 이상한 일들. 하지만 할아범 아기는 엄마처럼 슬퍼하고 있지 않았어요. 엄마에게 엄마 손을 찾으러 가자고 말했죠. 그러고 보니 아기 손등에는 색시 손등에 있던 것과 똑같은 붉은 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날부터 아기는 ‘붉은점’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손 없는 색시

무섭게 생긴 살구밭 주인, 전쟁 통에 폭탄 맞아 죽은 딸의 해골을 찾아다니는 누더기 할멈, 셀 수 없을 만큼 박힌 총알 때문에 눈물 흘리는 땅… 색시와 붉은점은 한 해가 다 가고 다시 봄이 찾아올 때까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색시를 떠나버린 손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결국 동그란 우물가에 이르게 되었어요. 붉은점의 손등에 있던 점이 색시의 도망친 손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운명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물 한 모금 마시려던 붉은점이 그만 우물에 빠져버렸거든요. 위급한 상황에 직면했지만 아기를 건질 손이 없는 색시는 도와 달라 소리쳤어요.

손 없는 색시

그때였어요. 색시를 떠났던 손이 어디선가 나타났습니다. 낡고 검댕이투성이인 소맷부리가 색시를 떠난 손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었는지 보여줍니다. 손은 예전처럼 색시의 몸에 다시 붙고 싶었어요.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너무 오래 떨어져 있던 탓에 손이 떠나간 자리에 새살이 돋았고 상처가 아물어 버렸기 때문이에요.

살려달라는 붉은점의 간절한 외침에 손이 우물로 내려갑니다. 색시는 선물 받은 목도리를 입으로 물고 한 쪽 끝을 손에게 던졌어요. 그리곤 온 힘을 다해 목도리를 당겼죠. 하지만 운명은 모질고도 참 모질기만 합니다. 목도리가 툭! 끊어지고 말았어요.

그런데,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한 그 때 우물이 무언가를 툭 뱉어냅니다.

손 없는 색시

그것은 할아범 껍질을 벗고 아기의 모습으로 돌아온 붉은점이었습니다. 우물에 빠진 아기를 구하기 위해 던진 붉은 목도리는 색시와 아기가 하나로 연결된 탯줄처럼 보입니다. 탯줄로 연결된 둘은 언제나 같은 운명으로 연결된 존재입니다. 그 붉은 목도리가 툭! 끊어진 순간 그 운명은 끝이 났어요. 붉은점은 그렇게 새로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어요. 물론 색시의 손이 아기의 모진 운명을 가져가 준 덕분에 색시는 그대로 손 없이 살아가야 했지만요.

아기를 잉태하던 날 남편은 전쟁터로 끌려갑니다. 슬픔에 빠진 색시가 지겹다며 색시의 손이 떠나던 날 아기가 태어났어요. 우물이 아기를 삼킨 순간 색시의 손이 색시를 찾아왔죠. 우물이 아기를 뱉어낸 순간 손은 다시 사라져 버렸어요. 밀려오고 밀려가며 채우고 비우며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한가운데에서 휘청휘청 살아가는 색시의 모습은 우리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도 희로애락으로 가득한 세상 살이의 모습들은 그리 크게 변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옛날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옛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모양이에요.

색시와 색시의 어린 아들 붉은점이 주인을 버리고 떠난 손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그림책 “손 없는 색시”, 상처 없는 삶은 없어요. 단지 우리가 그 상처와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손 없는 색시”는 인형극 창작 단체 예술무대산이 동명의 설화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희곡을 그림책으로 다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예술무대산이 보여주는 인형극 “손 없는 색시”, 잠시 감상해 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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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이선주
2019/06/17 14:36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 그림책입니다!. 이런 설화가 있었는 지도 몰랐고, 연극으로 봤어도 엄청 재미있었겠어요. ^^ 좋은 그림책 추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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