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아이

눈아이

글/그림 안녕달 | 창비
(발행 : 2021/11/30)


눈덩이 두 개를 얹어 길가에 덩그마니 놓아둔 눈사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뽀득거리며 작은 몸짓을 하던 눈사람을 살짝 피해 지나쳐 갔던 아이는 왠지 온종일 신경이 쓰입니다. 아이는 학교가 파하자마자 눈사람에게로 달려갔어요.

혹시 보셨나요? 수업종이 울리자마자 호다닥 책가방을 싸는 아이를 바라보는 선생님 손에 들려진 국어 교과서에 ‘눈아이’란 제목의 글을.

눈아이

뽀득 뽀득 뽀득… 몸짓만 하는 눈사람에게 눈을 뭉쳐 팔과 다리를 만들어 주고 눈과 입을 만들어 준 아이가 ‘안녕’하고 먼저 수줍은 인사를 건넵니다. 짧은 인사는 ‘우아 우아 우아 우아…’ 수백 번의 메아리가 되어 아이에게 돌아오지요.

그렇게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눈아이를 만났다.

이제 눈사람은 눈 온 날 흔히 볼 수 있는 눈사람이 아닌 ‘눈아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어요. 둘은 눈으로 빚은 동그랗고 하얀 눈빵을 함께 나누어 먹고, 함께 토끼를 쫓고, 맞잡은 손의 온기에 행여나 눈아이 손이 녹을까 빨간 털장갑을 한 짝씩 나누어 끼고, 함께 책가방 썰매를 타며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보냅니다. 어딘가 조금 다르지만 둘 사이에 그 다름은 문제 되지 않아요.

눈아이

넘어진 눈아이가 아플까 호오~ 불어주는 입김에 그만 주르륵 눈물 흘리는 눈아이.

왜 울어?

따뜻해서.

참 이상한 말이었다.

둘 사이 오가는 대화를 꾹꾹 눌러 쓴 안녕달 작가의 눈아이같이 동글동글한 손글씨가 따스하고 다정합니다. 따뜻해서 좋아서 행복해서 감사해서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 호오 토닥토닥 마음의 온기를 나누는 두 친구. 계절 끝에서 눈아이는 점점 작아지고 더러워졌어요. 숨바꼭질 하자고 말한 눈아이는 어디로 꼭꼭 숨어 사라져 버렸지요.

둘이 함께 놀던 그 언덕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어나고 녹음이 가득해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눈아이를 그리며 아이는 목청 높여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봅니다.

반칙! ‘못 찾겠다 꾀꼬리’ 외치면 활짝 웃는 얼굴로 나와야 하는데… 눈아이와 함께 했던 추억을 되짚는 아이 모습에 한동안 잊었던 내 오랜 추억들, 그리운 이들이 생각나 잠시 울컥해졌어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눈아이

이 이야기는 새드엔딩이 아니에요. 겨울은 다시 찾아오고 또 눈이 내릴 테니까… 그리고 내가 널 꼭 찾아낼 테니까…

그 언덕에 누군가 새로 만들어 놓은 하얀 눈사람, 그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한 컷을 찾을 수 있어요. 그 눈사람이 눈아이라는 증거를 만날 수 있는…

녹아내린 눈아이, 물이 되어 흘러 흘러 강물로 바다로 흐르다 어느 계절 비로 안개로 이슬로 서리로 그렇게 돌고 돌다 어느 날 눈이 되어 다시 찾아온 언덕. 수없이 많은 날들이 흐르는 동안에도 눈아이는 늘 곁에 있었어요.

가만히 공기를 느껴봅니다. 바람을 느끼고 계절을 느껴봅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도 있어도 우린 결코 헤어질 수 없어요. 언제나 내가 너를 찾을 테니까. 늘 네 곁에 있을 거니까. 우리 잠시 숨바꼭질할까? 술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찾는 거. 그리고 찾았으면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거!

찾았다!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우리, 몽글몽글 겨울 감성 가득한 서정적 겨울 풍경 속에 꼭 닮은 눈아이와 아이의 환한 미소는 어쩌면 지난날 어느 순간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을 뭉클하게 그려낸 그림책 “눈아이”, 여운을 가득 안고 표지 그림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마치 두 아이에게 다가올 시간을 예고하려는 듯 눈빵을 만드느라 눈을 싹싹 모은 아이 앞에 드러난 흙, 그 속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작은 새싹. 오는 시간을 막을 수 없고 계절을 거스를 수 없는 노릇이기에 그저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삶의 묘미 아닐까요? 그 작은 새싹 역시 흐르는 물을 생명수 삼아 또 자라나게 될 테니 온천지가 눈아이의 어루만짐입니다.

안녕달 작가의 “눈아이” 출간 인터뷰 보기(채널예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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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영
우선영
2022/01/10 07:28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선생님, 우리 꼭 다시 만나요 ^^ 오늘도 선생님 덕분에, 가온빛 덕분에, 그림책 덕분에 행복한 날입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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