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앞산에 떡갈나무 잎 피고 꾀꼬리 울면
텃밭에 참깨 싹 납니다.
문 열어 두고 잤습니다.
꾀꼬리가 나를 물어다가 산에다가 버렸습니다.
떡갈나무 나뭇잎 위에서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구름 속에서 놀던 배가 흰 피라미들이
비를 데리고 떡갈나뭇잎 위로 놀러 왔습니다.
손잡고 참깨 밭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텃밭 농사 거든답시고 오전 내내 엄마 아빠 뒤꽁무니 따라다니던 꼬마. 새로 돋은 참깨 싹 사이에서 만난 애벌레 한마리 데리고 돌아온 꼬마는 노곤했는지 방문 활짝 열어둔 채 낮잠을 잡니다. 솔솔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들려오는 꾀꼬리 울음 소리가 꼬마를 꿈나라로 데려다 줍니다.

떡갈나뭇잎 위에서 애벌레와 잠들었던 꼬마는 구름 속에서 뛰어내린 배가 흰 피라미들과 함께 엄마 아빠가 바지런히 농사짓고 있는 참깨 밭 위로 뛰어 내립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달콤한 비에 참깨 싹들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고된 땀방울 시원하게 씻어주는 단비가 반가운 엄마 아빠가 활짝 웃음 짓습니다.

꼬마와 애벌레, 꾀꼬리와 떡갈나무, 구름과 비… 시간이 물 흐르듯 바뀌는 풍경과 이야기에 편안히 내 마음을 맡기고 있자니 어느새 나도 빗방울 기분 좋게 떨어지는 참깨 밭에 가 있습니다. 꼬마네 가족과 함께 즐겁게 깡총대는 배가 흰 피라미와 초록 애벌레 사이에서 빗물 촉촉히 젖어 가며 흥겨워하고 있습니다.

밭에서 만난 애벌레를 한참을 구경하다 집에 데려가 함께 낮잠을 즐기고, 꾀꼬리가 잠든 꼬마를 물어다 숲속 높다란 가지 위에 내려놓자 아무렇지 않은 듯 아기 새들과 어우러져 놀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마저 친구 삼는 꼬마의 모습은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여유로운 삶입니다.

자연과 하나 된 한 가족의 소박한 삶과 천진한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담아낸 그림책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맑고 투명한 수채화 그림 위로 흐르는 시인의 이야기에 퍽퍽한 일상의 찌든 때들이 씻겨지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글 김용택 | 그림 김슬기 | 바우솔
(발행 : 2019/05/29)

섬진강 시인 김용택 작가의 글과 김슬기 작가의 맑디맑은 수채화 그림이 잘 어우러진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골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단란한 가족의 일상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이른 아침 맑은 공기와 새들의 지저귐, 따사로운 햇볕에 조금씩 움트는 새싹들, 온갖 채소와 곡식들 무럭무럭 자라라고 내리는 반가운 빗소리…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에 만져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느껴져 다 읽고 나서도 그냥 덮어버리기 아쉬운 그림책입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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