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때
봇도랑 미꾸라지
쏟아붓는 빗줄기 잡아타고
하늘로 헤엄쳐 오른다오르다 오르다
쏟아붓는 빗줄기를
바꿔 바꿔 갈아타고두엄 못을 건너뛰고
수숫대를 비켜
호박밭을 가로질러
빗속을 헤엄쳐 간다소나기 그친 뒤,
앵섭이네 봉당 처마 밑
말가니 괸 물에
미꾸라지 네댓 마리앞동산
둥그런 무지개는
소나기가 부려 놓은
무지개
소나기 한창인 여름날. 제 모든 것을 걸고 빗줄기 한 자락에 몸을 내던진 미꾸라지 한 마리. 앞선 동료에게 힘을 얻어 또 다시 제 몸을 내 던지는 또 다른 미꾸라지 한 마리, 또 한 마리. 이리저리 빗줄기를 갈아타며 오르고 또 오른 끝에 도달 한 곳은 고작 앵섭이네 처마 밑 고인 물.
이제 곧 비가 그치고 나면 한 줌도 안되는 물에 의지한 몸뚱아리가 말라 비틀어져 죽어 버릴지라도, 하늘에서 떨어진 미꾸라지들 주워 담느라 옳다구나 신이나서 이 웅덩이 저 웅덩이 뛰어다니는 아이네 저녁 찬거리로 생을 마감할지라도, 주저 없이 하늘을 향해 뛰어오른 미꾸라지에게는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적어도 소나기 끝자락에 펼쳐진 둥그런 무지개를 보았으니까요. 그토록 꿈꾸던 그 찬란함을…
여름날 펼쳐지는 작은 생명의 무모한 도전이 아름다운 싯구와 힘찬 수묵화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도전이 누구나 꿈꾸었을 법한 것이었기 때문이겠죠. 비슷한 꿈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이들에게 미꾸라지의 무모한 도전은 현실의 갑갑함을 찢어버리고 훌쩍 떠나는 호쾌한 여행으로 느껴졌을 테니까요.
오늘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로운 내일을 꿈꾸는 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림책 “소나기 때 미꾸라지”입니다.
소나기 때 미꾸라지
글 이상교 | 그림 김세현 | 창비
(발행 : 2020/07/03)
비 오는 여름날 드넓은 하늘을 향한 미꾸라지의 힘찬 비상, 그 웅장한 여행을 수묵화로 멋지게 담아낸 “소나기 때 미꾸라지”, 시인의 눈과 화가의 마음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