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은 착한 왕
책표지 : 계수나무
혼자 남은 착한 왕

글/그림 이범재 | 계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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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나라에 살고 있는 착한 왕은 사람이나 동물, 식물, 세상 모든 물건들까지도 모두 착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어요. 그래요. 모두 착해야 하죠. 세상 모든 것은 착해야 해요.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나면 “혼자남은 착한 왕”이라는 제목이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세상 모든 것은 착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왜 왕은 혼자 남게 되었을까요? 그 나라에는 나쁜 것들만 모여 있었던 걸까요?

어느 날 왕이 말합니다.

“여봐라, 궁전에 있는 물건 중 착하지 않은 것을 모두 없애도록 하라.”

착하지 않은 물건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신하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왕은 오래되고 낡아 보기 싫은 것은 착하지 않은 것이라 말합니다. 왕이 가진 착함의 기준이 어째 좀 이상하게 느껴지죠?

혼자 남은 착한 왕

하지만 왕의 명령이니 신하들이 별 수 있나요? 신하들은 ‘착하지 않은’ 물건을 모두 궁전 밖으로 내다 버릴 수 밖에요. 그리고 착하지 않은 물건들의 자리를 대신 할 착한 물건들로 궁전을 다시 채웠고 궁전 역시 더 크고 멋지게 바꾸었어요.

어느 날 궁전 밖으로 나간 왕은 잡초가 곡식이 자라는 걸 방해한다는 백성의 말을 듣고 잡초와 함께 꽃이나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나 풀을 모두 뽑아 버리라 명령을 내려요. 그러자 곧 착한 나라의 산과 들에는 메마른 흙이 드러났어요.

혼자 남은 착한 왕

다음 번에 또다시 궁전 밖으로 나간 왕은 코가 삐뚤어진 남자와 거지, 글을 읽지 못해 길을 잃고 헤매던 노인과 마주치자 보기 싫은 자, 가난 한 자, 무식한 자 역시 모두 나쁜 것이라 생각해 모두 쫓아내라 명령을 해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눈에 거슬리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 이상한 옷을 입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는 모든 사람을 모두 나라 밖으로 추방하라 했죠.

퀴리 부인,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박사부터 서태지… 고흐까지 모두 나라 밖으로 추방 당하고 있네요.

이렇게 해서 착한 나라에는 착한 사람들과 착한 물건들만 남게 되었을까요?

물건은 한 번만 써도 헌 것이 되고, 가장 못생긴 사람이 떠나면 그 다음으로 못생긴 사람이 떠나야 하니 매일 매일 버려지고 쫓아내도 이 일은 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착함을 표방한 아집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왕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죠.

혼자 남은 착한 왕

착한 것만 남게 하기 위해 불철주야 오늘도 세상 나쁜 것을 모두 없애겠다는 왕은 드디어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시커먼 그럼자가 보기 싫으니 이제는 해를 없애라 합니다.

남은 백성들이 하루 종일 온갖 무기를 동원해 해를 향해 쏘아대도 없앨 수 없었던 해가 밤이 되어 사라지니 이제 왕은 어둠이 싫어 어둠을 사라지게 하라고 명령 했어요. 하지만 전등을 켜니 그림자가 다시 생겼고, 그래서 전등을 끄니 다시 어둠이 생겼죠. 백성들은 밤새 왕의 명령에 때라 전등을 켰다, 껐다 반복하다 보니 새벽이 찾아왔고 해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다시 해를 떨어뜨리기 위해 하루종일 해와 전쟁을 벌이고 다시 찾아온 밤, 그리고 아침에 다시 떠오르는 해.

혼자 남은 착한 왕

왕은 해 하나 없애지 못하는 신하들에게 나약하다며 불같이 화를 냅니다. 그리고 나약한 것도 나쁜 것이니 모두 쫓아버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제 착한 나라에는 착한 왕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되었으니 누구 하나 왕의 명령을 따를 사람이 없었어요. 산과 들에는 잡초가 무성해지고, 궁전의 물건들은 점점 낡아 갔지요. 그리고……

혼자 남은 착한 왕

혼자 남은 왕이 어느 날 거울을 보게 되니 거울 속에는 사람도 짐승도 아닌 이상한 것이 버티고 있었어요.

“저 더러운 자가 누구냐? 저 자를 당장 쫓아내도록 하라!”

저 더러운 자를 과연 누가 쫓아 낼 수 있을까요?  시종일관 왕을 따라다니던 하얀 고양이 한마리만 생각에 잠긴 듯 우두커니 앉아 있네요.

혼자 남은 착한 왕은 행복했을까요?

혼자 남은 착한 왕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땅 한가운데 혼자 남은 왕과 착한 나라 밖으로 쫓겨난 백성들의 모습이 아주 대조적입니다. 착한 것만을 남기기 위해 착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자신의 나라 밖으로 내쫓았던 왕은 마치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힌 것 처럼 보여요. 반면 소박한 집과 푸른 들, 즐겁게 일하며 사랑하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쫓겨난 백성들의 모습이 훨씬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이 장면을 자세히 살펴 보면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이상한 옷을 입거나 엉뚱한 생각을 해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와있으니 찬찬히 한 번 살펴 보세요. 서태지와 마이클 잭슨, 어우동은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있고, 스티브 잡스는 폰을 팔고 있어요. 고흐는 그림에 심취해 있고, 모짜르트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구요. 퀴리부인과 아인슈타인은 칠판 앞에서 뭔가를 서로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답니다. 싸이도 있으니 꼭 찾아 보세요…^^

착한 나라를 위해 왕이 변해 가는 모습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혼자 남은 착한 왕

착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점점 변해 가는 왕의 모습은 그림책을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데요. 정작 자신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마지막 자기 자신을 보면서 저 자를 쫓아내라 말하는 모습을 보면 끝까지 변하지 않는 왕의 태도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착한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누가 판단한 할 수 있는 일일까요? 모든 것이 착해야 한다는 왕의 생각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생각일 수도 있을거예요. 하지만 왕이 독선과 아집에 의해 주관적 생각이 너무 깊이 개입되자 왕이 꿈꾼 착한 나라의 방향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선과 악, 착한 것과 나쁜 것에 집착하던 왕은 일반적인 기준을 벗어난 개성 넘치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나쁜 것으로 분류해 버리는 실수를 범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을 추구했지만 그것이 아집과 독선으로 바뀌며 ‘악’이 되어버린 거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한 것들이 어우러져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할 거리, 볼거리가 참 많은 그림책 “혼자 남은 착한 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