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맛

바람의 맛
책표지 : Daum 책
★ 바람의 맛

글/그림 김유경 | 이야기꽃

2015 가온빛 BEST 101 선정작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은 항아리에서 장을 뜨며 환하게 웃고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그곳에서 놀고 있는 토실토실 귀여운 강아지들, 채반마다 널려있는 호박고지와 빨간 고추들, 토담 위에서 몰래 할머니를 엿보고 있는 얼룩고양이까지 한 폭의 풍경이 다양한 추억을 자아내는 표지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네요.

넉넉한 웃음으로 장을 뜨고 계신 할머니가 한상 가득 맛난 음식을 차려줄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그림책을 펼치게 되는 “바람의 맛”에는 계절마다 제철 재료로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일곱가지 우리 음식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바람의 맛

된장이야 콩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간장도 콩에서 온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알고 있을까요? 우리 음식 재료의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간장 된장은 마른 콩꼬투리가 달그락 거리는 가을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콩타작을 시작으로 수많은 손을 거쳐 얻은 탱글탱글 예쁜 콩으로 만든 메주로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간장과 된장을 만들고 나면 비로소 올 한 해 부엌살림의 가장 기본이 마련됩니다.

마을 사람 모두 모여 흥겹게 도리깨질을 하고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드는 과정이 그림 한 장에 정성스럽게 들어가 있네요. 이런 정성으로 만들어졌으니 우리네 음식들이 몸에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가 없는 것이겠죠.

바람의 맛

못난이 감자를 썩혀서 만든 감자떡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신기합니다. 감자떡은 작은 것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들 마음에서 시작된 음식이에요.

여름 내 캐낸 감자 중 썩거나 쥐가 파먹었거나 호미에 찍혔거나 새파란 감자를 알뜰히 모았다 물에 담가 썩힌 후 앙금만 가라 앉혔다 잘 말린 감자 가루로 반죽을 해서 만든 떡이 바로 감자떡이죠. 감자 가루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렇게나 심한 똥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학교 갔다 돌아온 손주들 입에 맛난 감자떡 넣어줄 생각에 할머니는 번거롭고 힘든 것도 잊으시는 모양입니다.

바람의 맛

텃밭 가득 풍성하고 싱싱한 여름을 가을 겨울까지 데려가기 위해 씻고 절여서 만드는 장아찌들. 아삭아삭 짭잘한 장아찌만 있으면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이죠. 장아찌만으로 한상 차려진 그림을 보니 더운 여름날 물에 찬밥을 꾹꾹 말아서 오도독 오도독 오이지를 먹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바람의 맛

가을은 농사 짓는 농부들에게 가장 바쁜 계절입니다. 거두고 말리고 저장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계절이니까요. 온 세상에 색잔치가 벌어지는 가을 날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린 감들은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처음 껍질을 깎아 널었을 때는 언제 먹나 하지만 두달이 지나면 하얗게 자연분이 생긴 달디단 곶감을 먹을 수 있어요.

우는 아기 뚝 그치는 달콤한 곶감
호랑이도 달아나는 대단한 곶감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그렇게나 달콤하고 대단한 걸까?
감꽃 피고 지는 봄날의 햇빛,
열매 맺어 굵어 가는 여름날의 비,
여문 감 따고 깎고 엮어서
달마매는 가을날의 땀과 이야기,
떫디떫은 땡감 다디달게 익혀 준
햇볕, 바람, 시간 그리고 기다린 마음

햇볕과 바람, 정성어린 손길로 가꾸고 기다려준 시간 그리고 기다린 마음이라는 싯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일 년 농사를 마무리 하는 시기에도 할머니는 쉴새가 없어요. 주워온 도토리의 껍질을 까서 물에 담가 떫은 맛을 우리고 곱게 갈아 체에 받친 앙금을 말려서 도토리묵을 만드느라 바쁜 할머니, 탱글탱글 야들야들 찰진 도토리 묵 역시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음식입니다.

바람의 맛

야들야들 탱탱한 묵 맛을 떠올리면
입안에 스르르 군침이 돌지.
다른 건 자식 손주 다 퍼주어도
요것만은 두 분이 맛나게 잡수시길.

고된 어깨를 서로 주물러 주고 잘 쒀진 묵 한 쪽 상대방의 입에 먼저 넣어주며 구수한 장맛처럼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참 정겹습니다. ‘다른 건 자식 손주 다 퍼주어도 요것만은 두 분이 맛나게 잡수시길’ 하고 바라는 작가의 마음도 포근하구요.

바람의 맛

사계절 내내 제철 먹거리를 거두느라 바쁜 것은 어촌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잡아 올린 홍어는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의 내장을 꺼내 삭힌 홍어는 그 맛을 알고 나면 절대로 잊지 못하는 음식이죠. 한 입 먹으면 막힌 코가 뻥 뚫리는 삭힌 홍어회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정성어린 시간으로 만들어내는 우리 대표 음식입니다.

홍어… 어느 하나 맛없는 부위가 없지만 입에 넣으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는 듯한 식감이 일품인 홍어애는 정말 거부하기 힘들죠. 요즘 아이들에게 홍어는 살짝 거부감이 드는 음식 중 하나지만 “바람의 맛” 덕분에 우리 옛 맛을 입 안에 머금어볼 용기를 우리 아이들이 낼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바람의 맛

계절이 돌고 돌아 찬바람에 코끝이 시린 계절이 돌아오면 겨우내 먹을 김장 김치 마련에 엄마들은 마음이 바빠집니다. 소금에 절이고 김칫소를 넣어 버무려 만든 김장 김치는 겨우내 가장 중요한 기본 반찬이 됩니다. 갓절인 김치 맛도 좋지만 발효된 김치에서 나는 새콤매콤한 맛, 오래된 묵은지에서 나는 시금털털한 군내가 감도는 깊은 맛까지…… 김치는 말이 필요없는 한국인의 음식이죠.^^

바람의 맛

모두의 손길을 거쳐 준비된 일곱가지 찬으로 거나하게 차린 밥상 앞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았어요. 넉넉한 밥상 앞에 모두가 행복한 표정입니다.

간장과 된장, 감자떡, 장아찌, 곶감, 도토리묵, 홍어, 그리고 김장김치, 한 상 보기 좋게 차려낸 김유경 작가가 그려낸 정갈한 밥상 위에는 어느 하나 금방 해낼 수 있는 음식이 없습니다. 우리의 논과 밭, 들과 산, 강과 바다에서 채취한 식재료들은 다시 또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을 거치고 짧게는 몇날 몇 달 길게는 해를 넘기며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제대로 된 맛을 맛볼 수 있는 음식들입니다. 그 음식들을 먹으며 가족 간의 사랑을 느끼고 이웃 사이 정을 나누는 우리네 음식 문화 이야기를 담아낸 그림책 “바람의 맛”.

음식의 원재료가 어디에서 나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음식으로 만들어지는지, 다 만들어진 음식에서 어떤 맛이 나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듯 재미있게 써내려 간 글과 정갈하면서도 단아하게 그려진 그림에서 조미료를 쓰지 않은 담백하고 깔끔한 맛, 오랜시간 공들여 만든 작가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자는 사람의 바람과,
햇볕, 시간 그리고 자연의 바람이 만든
바람의 맛을 먹는다.
바람의 맛을 나눈다.

작가는 온갖 정성과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담아낸 음식들에는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하는 우리들의 바람과 햇볕, 시간 그리고 자연의 바람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은 바로 그 ‘바람의 맛’이라고 말입니다. 작가가 정성 가득 ‘바람의 맛’을 담아낸 그림책 “바람의 맛”에는 자연과 한데 어우러져 살아온 우리네 삶의 지혜와 알콩달콩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정겨움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족과 이웃 모두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마음과 함께 말이죠.


※ 항아리에 걸쳐진 버선의 정체는?

그림책 표지에서 장독대 가득한 항아리들마다 거꾸로 붙어 있는 버선이 무얼까 궁금했어요. 찾아보니 부정 타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풍습이라고 합니다. 광목 버선을 거꾸로 붙이는 곳도 있고, 한지로 버선 본을 떠 거꾸로 붙이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림책 덕분에 처음 알게 된 풍습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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