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책표지 : Daum 책
우리, 집

진주 | 그림 진경 | 고래뱃속


소파와 하나가 되어 늘어지게 단잠에 빠진 나무늘보의 모습이 친근해 보이네요. 한 주를 마친 휴일 날 우리 집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요.^^ 편안한 휴식이 있는 우리 집,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편안한 우리 집을 생각하면서 그림책을 펼칩니다.

우리, 집

긴 목을 가진 체형에 꼭 맞는 높은 테이블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식사를 즐기고 있는 기린 가족입니다. ‘와~ 멋진 집인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군요. 다음 장을 넘기면 아름다운 거실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화려한 공작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먼지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깨끗한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공작의 모습은 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요.

우리, 집

스컹크는 깨끗한 변기 위에서 볼일을 보고 있고, 수달들은 풀빌라처럼 보이는 멋진 곳에서 태평스럽게 물놀이 중입니다.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 치타, 볼풀장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원숭이들, 기품 있는 모습으로 왕좌에 머물고 있는 사자 가족들……

우리, 집

맛있게 밥을 먹고 우아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깨끗한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도 보고 하루종일 물놀이도 하고 맘껏 뛰고 한숨 늘어지게 잘 수 있는 곳…… 와~ 세상에 천국이 따로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 생각도 그럴까요?

우리, 집

이층 침대와 소파, 나무가 그려진 벽지 아늑하고 편안해 보이는 집 안에서 낮잠을 즐기던 나무늘보를 보고 다음 장을 넘기면 나오는 페이지입니다.

우리,                집입니다.

단 한 줄의 문장과 혼자 앉아 있는 나무늘보 그리고 커다랗게 비어있는 여백이 생각거리를 남겨주네요. 인간이 만들어 준 동물들의 집이 사실은 그들에게는 ‘우리’일 뿐이라는 말이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우리, 집

지금껏 멋진 집에서 편안하게 보내는 것처럼 보였던 동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꿈꾸는 집을 소개합니다. 대문 접지 형태로 된 페이지를 좌우로 활짝 펼쳐 보면……

우리, 집

바로 이 곳이죠.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우리 집입니다.

매 장면 마다 우리 집이라고 소개한 그들의 집은 동물원입니다. 인간의 기준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갖추어 만들어진 동물들의 집은 사람들이 보기엔 안전하고 편안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그 집은 그저 갇혀있는 ‘우리’에 불과할 뿐이죠. 한가롭고 깨끗하고 편안하게 보이는 장소에서 쉬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이 무언가 어색하고 맥업이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있어야 할 진짜 집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을 독자에게 안내하듯 페이지마다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풀밭에서 콕콕 무언가를 쪼아 먹기도 하고 먹이를 찾아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하늘을 날며 볼일을 찍~ 보기도 하죠. 참새가 등장하는 곳에는 참새를 닮은 작은 소품도 등장합니다. 참새는 그림책 속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로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들과 대비되는 존재입니다. 그와 달리 갇힌 동물들은 참새를 닮은 소품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놓아주는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는 전혀 상관 없이 살아야 하는 그런 존재로 말입니다.

동물들에게 ‘행복한 집’이라며 만들어 준 동물원 역시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폭력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닌 진짜 ‘우리 집’에 있어야 할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림으로 전달하는 그림책. 그래서 ‘우리 집’이 아닌 ‘우리, 집’이라는 제목 마저도 심오한 그림책 “우리, 집”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4 Replies to “우리, 집

  1. 아이들이 친구 집평수에 대해 당연한 듯이 물어 보는 세상이지요. 아이들에게 늘 돈, 지위, 안락한 물질적 풍요외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가르치고 싶은데….점 점 더 어렵더라구요.
    저는 집은 물리적인 시공간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크기나 종류나 주위 환경의 한계를 넘어 집이 집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공간을 차지하는 살아있는 생명들의 조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집에 집착하거나 측정할 수 있는 가치에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집의 진정한 의미를 잊었거나 모르기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좋은 책이라서 학생들과 꼭 같이 읽어 보고 싶어요 .

    동물들을 가두는 인간들은 어쩌면 스스로를 가두는 거인지도 모르겠어요 …….

    1. 안녕하세요? 홍여진님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누가 누구를 가둔 것인지 달리 생각해 볼 수있는 문제겠죠.
      아주 오래 전에 동물원에서 동물들의 이상 행동을 본 적이 있었어요. 우리 끝을 왔다갔다 하거나 고개를 계속해서 위 아래로 흔들면서 단조롭고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네요. 그것도 사육 스트레스에서 온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주위 환경의 한계를 넘어 집이 집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살아있는 생명들의 조화 때문이라는 말씀이 참 좋네요.^^
      “우리, 집”은 글자가 거의 없이 그림만으로 아이들에게 생각거리를 많이 남겨주는 그림책입니다. 동물 이야기를 넘어서서 누군가를 위한다고 해준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그림책이죠.
      꽃샘추위가 극성이네요. 늘 건강 조심하세요.

  2. 어른이 되서 동물원에 갔더니 차마 못보겠더라구요. 이제 곧있으면 아이 데리고 갈 일이 생길텐데 뭐라고 해줘야할지 모르겠네요. 좋은 책 소개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1. 반갑습니다. 유정윤님!
      어린시절 동물원 나들이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했는데 어른이 되어 내 아이를 데리고 가보니 동물들의 슬픈눈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기억이 나네요. 동물들의 이상행동이며, 쓸쓸해 보이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와 갈 때마다 어찌나 서글프던지요.
      그래서 저희는 동물쇼 관람이나 만지고 타고 동물이랑 같이 놀수 있다고 홍보하는 동물원은 가지 않았어요. 그걸 아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성장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거든요. 대신 다른 것에서 더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주면 되니까요.^^
      동물원을 없앤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동물 복지 차원에서 좀 더 동물들에게 맞는 그런 동물원으로 탈바꿈 했으면 좋겠네요. 관람시간 제한이라든지, 동물 한 마리당 공간을 더 확보해 준다든지 그런 식으로요. 엄마 아빠가 아이 데리고 동물원 갈 때 단순히 동물만을 보고 오는 것 보다는 아이들에게 관람예절 알려준다면 더 좋겠죠.

      “우리,집”은 동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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