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빼떼기

빼떼기
책표지 : Daum 책
빼떼기

권정생 | 그림 김환영 | 창비
(발행 : 2017/05/04)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 2017 한국출판문화상 후보작


“빼떼기”는 권정생 선생님이 1988년 출간한 동화집 “바닷가 아이들”에 수록된 단편 동화로 만든 그림책입니다.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는 것을 동화를 통해 늘 들려주셨던 권정생 선생님은 이 이야기에서도 생명과 생명이 어우러져 가는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가슴 먹먹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다고 어리다고 어디 함부로 할 생명이 있을까요? 세상에 나온 순간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경이로운 것인걸요. 일 년 남짓 순진이네 집에서 살다 간 빼떼기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빼떼기

순진이 아버지가 새까만 토종 암탉 한 마리를 사 오던 날, 순진이네 가족은 잔칫날이라도 된 양 기뻐하며 아빠를 도와 닭장을 지었습니다. 순진이네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암탉의 이름은 ‘깜둥이’였어요. 가족들은 깜둥이가 혹여나 외로울까 보름 뒤에 닭 두 마리를 더 사 왔어요. 순진이와 순금이는 자기가 돌볼 닭을 정해놓고 알뜰살뜰 닭들을 돌보았습니다.

내가 살 집이라도 짓는 것처럼, 정성 들여 닭장을 짓고 있는 순진이네 가족, 그 행복함이 온 가족의 몸짓과 표정에서 느껴집니다.

빼떼기

다음 해 봄이 되자 깜둥이가 품은 알에서 병아리가 깨어났어요. 엄마를 닮아 털빛이 새까만 병아리 열다섯 마리, 빼떼기도 깜둥이게서 태어난 솜털이 보드랍고 귀여운 아기 병아리 중 한 마리였어요. 세상 근심 걱정거리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오동통 어여쁜 병아리들이 엄마 닭을 따라 오종종 걸어 다니는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이 모습을 ‘새끼들은 엄마를 따라 솔방울처럼 굴러다니듯 뛰어다녔다’고 표현하셨어요. 세상 무슨 걱정 근심이 있을까 싶은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빼떼기

그런데 어느 날 사고가 일어났어요. 엄마 닭을 따라 따뜻한 아궁이 앞을 지나던 병아리 한 마리가 아궁이 속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솜털이 모두 타버리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순진이 어머니가 품에 넣고 아기처럼 돌보아 주고 순진이와 순금이가 정성으로 보살펴 준 덕분에 불에 덴 상처는 곧 아물었지만 병아리의 부리는 뭉뚝하게 문드러지고 발가락도 한 마디씩 떨어져 나갔어요. 종아리가 오그라들어 바로 서지도 못했고 솜털이 다 타 버린 알몸뚱이에는 여기저기 딱지가 붙어 거들떠보기도 힘든 모습이 되었어요. 엄마 닭은 그런 모습이 된 제 새끼를 알아보지 못하고 근처에 오면 무섭게 달려들어 쪼아 버렸습니다.

빼떼기

시간이 지나 병아리가 엉거주춤 빼딱빼딱 걷기 시작하자 순진이네 가족은 병아리 이름을 ‘빼떼기’라고 지어주었어요. 빼딱빼딱 걸어서 빼떼기, 엄마 닭조차도 새끼를 알아보지 못하고 쪼아대는 탓에 빼떼기는 순진이 어머니 곁에만 맴돌았어요. 추위에 바들바들 떠는 알몸뚱이가 애처로워 보였던 어머니는 헝겊에 보드라운 솜을 넣은 옷을 만들어 빼떼기에게 입혀주었습니다.

그렇게 빼떼기는 사람처럼 옷을 입고 조롱박 모이 그릇과 깡통 물그릇을 따로 가지고 순진이네 가족이 되어 버렸다.

빼떼기

골목길 이웃 사람들도 빼떼기를 유달리 눈여겨 보아 주었다.

“빼떼기는 절대 잡아먹거나 팔아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라도 제명대로 살다가 죽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합니다.”

이렇게 똑같은 말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악몽처럼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지만 빼떼기는 순진이 가족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속에서 자기 몫의 삶을 열심히 살아갑니다. 빼떼기가 초록빛 잎을 싹 틔우고 하얀 꽃을 피운 어여쁜 민들레를 순진한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네요. 빼떼기 앞에 닥친 시련처럼 세차게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오도카니 서서 민들레 꽃을 바라보는 빼떼기의 모습은 희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강아지 똥이 온몸을 녹여서 피워낸 희망의 상징 민들레가 여리디여린 병아리를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고 이후 무거운 색감으로 표현되었던 빼떼기 주변이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빼떼기

뭉그러진 부리로 쪼면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모이를 쪼고 또 쪼아 먹으며 더디게 자란 빼떼기, 발가락이 없어 홰 위에 올라앉지 못해 닭장 바닥에 혼자 떨어져 잠이 들면 홰 위에서 다른 닭들이 눈 똥이 빼떼기 등에 떨어지곤 했어요.

다른 병아리들이 솜털이 모두 빠지고 새 깃털이 나도록 영 깃털이 나지 않을 것 같았던 몸뚱이에 엉성하게 나마 하나둘 새까만 깃털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머리에도 새빨간 볏이 나기 시작해서야 순진이네 식구들은 빼떼기가 수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른 병아리들은 큰 닭이 되어 벌써 서너 마리씩 다래끼에 담아 장에 내다 팔았지만 빼떼기는 오래도록 병아리처럼 삐악삐악하고 울었어요. 순진이네 가족은 빼떼기가 다른 수탉처럼 크게 홰를 치며 울어 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요.

빼떼기는 태어난 지 한 해가 지나서야 목을 늘이면서 울었어요. 두 날개를 엉거주춤 치켜들고 목을 늘이면서 ‘꼬르륵’하고 우는 빼떼기의 울음소리가 우습기도 했지만 대견스럽고 신기해서 순진이네 식구들은 한바탕 웃곤 했습니다.

빼떼기

빼떼기의 삶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이 찾아온 것은 1950년 6월에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피난을 떠나기 위해 기르던 닭과 병아리를 모두 내다 판 순진이네 가족은 고생고생 기르던 빼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어요. 장에 내다 팔아야 살 사람이 없을 테고 그냥 버려두고 떠나자는 어머니 말에 순진이는 다래끼에 담아 가지고 가자고 졸랐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빼떼기는 눈만 똘방똘방 뜨고 있을 뿐이었죠. 결국 아버지가 마지막 결정을 내렸어요.

“할 수 없다. 본래부터 짐승을 키우는 건 잡아먹기 위한 것이니 빼떼기도 우리가 잡아먹자.”

순진이네 가족의 보살핌이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꺼져버렸을지도 모를 빼떼기의 생명은 결국 사랑받았던 가족들에 의해 거둬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운명을 거스르며 꾸역꾸역 제 삶을 살아가던 빼떼기. 전쟁은 이토록 잔혹하게 모든 이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습니다.

모진 운명을 짊어지고 묵묵히 살아가는 빼떼기는 권정생 선생님 동화의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이에요. 몽실언니의 모습도 강아지똥의 모습도 빼떼기에서 어른거립니다. 오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 사랑, 아이들 위한 글쓰기를 내려 놓지 않으셨던 권정생 선생님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먹먹함을 가슴에 안고 꾸역꾸역 끝까지 그림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순리를 받아들이며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온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품어주고 챙겨주면서 모진 운명을 다독여 주는 모습이 권정생 선생님의 생전 가르침과 꼭 닮아있습니다.

“빼떼기”는 김환영 작가의 묵직한 그림과 만나 더욱 생생하고 울림 가득한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30년 전에 나온 동화를 그림책으로 만든다는 것, 그것도 온 국민에게 존경받는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를 그림책으로 만든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황토색과 먹색을 기본색으로 사용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 이야기 중간중간 강렬한 색감으로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한 그림에서 생명력이 꿈틀거리며 이야기가 되살아납니다. 2005년부터 시작한 김환영 작가의 “빼떼기” 그림 작업이 2017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니 그간 작가가 느꼈을 노고가 그림책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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