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자동차
책표지 : Daum 책
열일곱 살 자동차

글 김혜형 | 그림 김효은 | 낮은산
(발행 : 2017/05/15)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어머님이 당신의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다시 물려주신 방짜 놋양푼, 어린 시절 친정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앉은뱅이 나무 책상, 돌아가신 할머니가 버려지는 노끈을 꼬아 만들어 주신 삼십 년도 넘은 노란 바구니, 대학생 때 읽었던 빛바랜 소설책들……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물건에는 그 물건만이 간직한 고유의 향기와 느낌이 깃들어 있습니다. 무언가 잊혀진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혹시나 꿈속에서 속삭여 주려나요? ‘난 너의 지난 세월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단다.’ 하고 말이죠.

“열일곱 살 자동차”는 자동차의 시점에서 한 가족과 함께했던 나날들을 담담하고 조용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자동차도 열일곱 살, 자동차가 신나게 태우고 다녔던 아이도 열일곱 살. 그 시간 동안 아기였던 아이는 훌쩍 자랐고, 자동차는 더 이상 도로 위를 달리지 못할 만큼 낡아버렸어요. 오랜 시간 가족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자동차가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열일곱 살 자동차

도로 위를 쌩하니 달려가는 자동차, 힘차고 경쾌한 움직임이 무언가 굉장히 설레여 보입니다. 오늘은 아주아주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에요.

그날은 특별했어.
아기가 태어날 거란 말에 두근두근 얼마나 설렜다고.
아픈 엄마를 태우고 병원을 향해 달리는데
운전대를 잡은 아빠 손에 땀이 배었어.
그때 난 공장에서 갓 나온 반짝반짝 새 자동차였지.

엄마와 아빠를 태우고 갔던 반짝반짝 새 자동차에 이제 조그만 아기도 함께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태우고 조심조심 달리던 자동차, 그 아기가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자동차도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자동차를 빠방이라 부르며 좋아하던 아기는 자동차가 들려주는 동요를 목청껏 따라 부르면서 함박웃음을 짓곤했어요.

열일곱 살 자동차

아기가 자라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어요. 자동차는 가족과 함께 하는 매 순간순간이 행복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조금씩 낡아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폭우 쏟아지던 여름날 길 위에서 엔진이 꺼져 버렸던 적도 있어요.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갔다 오는 길엔 뒤따라오던 차에 들이받힌 적도 있었고요.

열일곱 살 자동차

품 안에 널 태우고 나는 어디라도 달려갔어.
기억나니? 우리가 함께 다녔던 수많은 길들.

그 길 위에서 보았던 수많은 풍경들, 수많은 계절과 흘러간 시간들, 그렇게 가족을 싣고 쉼 없이 달리는 동안 자동차는 녹슬고 삐걱거리면서 조금씩 낡아갑니다.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고 여기저기 긁힌 자리에 검붉은 녹이 퍼져가고 있었지만 자동차는 늘 행복했어요.

열일곱 살 자동차

뜻하지 않은 사고로 소음기가 고장 난 이후론 차에서 나는 소리마저 더욱 요란해졌어요. 자동차를 만든 회사에서도 더 이상 부품을 생산하지 않을 만큼 이제는 너무 오래된 자동차. 자동차가 질러대는 요란한 소리 때문에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갈 때마다 아이 친구들의 반응이 아주 요란했어요. 그럴 때면 아이는 얼굴이 빨개져 뒷자리에 얼른 올라탔죠. 자동차도 알아요. 이제는 아이가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열일곱 살 자동차

결국 자동차는 장을 보러 가거나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는 일 정도만 할 뿐 멀리 달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기어코 그 날이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아이의 열일곱 살 생일, 가족 나들이를 나선 길에 자동차는 마을길에서 갑자기 멈추고 말았어요. 견인차에 끌려 오는 자동차의 사이드미러에 아스라히 비춰진 가족의 모습… 이제 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가족의 모습을 확인하고 간직하고 싶은 자동차의 애절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네요.

열일곱 살 자동차

낡은 자동차를 대신할 새 트럭이 집에 오던 날, 집 앞 도로에 멈춰 서있는 자동차 운전석에 말없이 앉은 아이는 계기판 숫자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어요. ’32만 3137킬로미터’, 지나간 세월 동안 함께 달린 거리이자 함께 보낸 시간입니다. 멈춰버린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은 열일곱 살 아이와 열일곱 살 자동차, 둘은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회상하면서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음을 예감합니다. 자동차는 언젠가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 거라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아이에게 담담하면서 애잔한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다 기억할게.
포대기에 싸여있던 갓난 아기가
열일곱 살 멋진 소년으로 성장한 그 세월도.

꼬마야, 안녕.
안녕.

서로를 향해 마지막 눈길을 주고받는 자동차와 아이, 어스름 해가 떨어지고 붉은 노을이 저녁 하늘을 물들입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자동차가 가족들 마음 속에 깊게 물들어 있듯이 말이죠.

검색 몇 번에 클릭 몇 번이면 원하는 물건이 집 현관까지 배달되는 편리한 세상에 살다 보니 물건을 고르는 일도,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일도 너무나 쉬워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어디 사람과 물건의 관계뿐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죠. 엄마 뱃속에 있었던 한 아이가 열일 곱 청년으로 자라기까지 함께했던 자동차 이야기는 속전속결 만났다 금세 실증나 썰물처럼 밀려나가 버리는 세상 모든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제 몫을 다하고 떠난 낡고 오래된 자동차 이야기는 김혜형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해요. 자동차와 사람 사이에 전해지는 다양한 감정까지 차분하게 담아낸 김효은 작가의 그림은 이야기를 더욱 가슴 먹먹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제 몫을 다해 잘 쓰이고 돌아간 늙은 자동차를 보며, 사람의 생애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가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사랑스런 숯검댕이가 지금쯤 어디선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가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그러나 영영 없어지지는 않은 채, 다른 이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어 살아가고 있으니라 굳게 믿어요.

–  작가의 말 중에서


※ 함께 읽어 보세요 : 달려라, 빠방!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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