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연잎이 말했네

가시연잎이 말했네

장영복 | 그림 이혜리 | 보림
(발행 : 2019/10/25)


잎 양면, 줄기며 꽃잎을 싼 겉잎까지 촘촘하게 가시가 돋아나 있는 가시연꽃, 처음 보았을 때 둥글고 커다란 가시연잎에 촘촘히 돋은 가시들이 굉장히 기이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저렇게나 많은 가시가 돋아 있으니 누가 섣불리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책 속 개구리는 기꺼이 도전합니다. 홀로 외롭게 앉아있던 기다란 풀잎 위에서 폴짝, 그리곤 사뿐히 가시연잎 위에 내려앉았어요. 가시가 다치지 않게.

쟁반 같은 가시연잎이 배라면 좋겠네.
나는 가시가 다치지 않게 사뿐히
연잎에 내려앉겠네.
가시연잎 배를 타고 통통통 노래하며
연못 한 바퀴 돌아보겠네.

가시연잎이 말했네

가시투성이 가시연잎 위에 내려앉으면서도 자신보다는 가시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개구리의 고운 마음. 가시연잎과 개구리는 연못을 넘어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어요. 개구리는 연못 밖이 낯설어 겁이 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연못을 떠납니다.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지만 지금은 가시연잎과 함께였으니까요.

커다란 파도 헤치고 넓디넓은 바다에서 만난 가시복어는 가시연잎의 가시를 물어가려 했어요. 개구리가 쫓으려 하니 가시연잎은 기꺼이 자신의 가시를 다 내어주었어요. 그리곤 이렇게 말합니다.

“시원해. 갑옷을 벗은 기분이야.”

가시연잎이 말했네

가시를 벗어던지고 나니 더욱 자유로워진 가시연잎은 다가오는 친구들에게 흔쾌히 자리를 내어줍니다. 혼자 있고 싶은 돌고래에게도, 세상 일에 지친 가오리에게도, 어두운 바다 밑이 울적해진 대왕 문어에게도 한자리 내어주었어요. 다가온 친구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줄수록 가시연잎 배는 더 커다래지고 더 튼튼해집니다.

가시연잎이 말했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바다 위, 같은 가시연잎 배를 탄 개구리와 돌고래와 가오리와 문어.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이들은 가시연잎 위에서 ‘우리’가 됩니다. 함께 바라보는 세상은 참 아름답습니다.

가시연잎 위에서 휴식을 취한 친구들은 이제 하나 둘 제자리로 돌아갔어요. 처음처럼 세상에는 다시 가시연잎과 개구리뿐.가시연잎이 말했네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바다를 떠나 연못을 향해 통통통.

가시연잎이 말하네.
“연못이 그리웠어. 나는 연못에서 새로운 가시 키울래.”
나 웃음 머금고 고개 끄덕이겠네. 끄덕이며 말하겠네.
“함께여서 좋았어.”
가시연잎 웃겠네. 동그랗게 웃겠네.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지만 이제 개구리는 전과 달라요. 가시연잎도 달라요. 세상을 품어보고 ‘우리’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한발 펄쩍 뛰어올라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배웠고 지친 친구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가진 것을 내어놓고 잠시 쉬어갈 줄 아는 지혜를 배운 그들이니까요.

가시연잎이 말했네

어둠이 깃든 연못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개구리와 가시연잎. 이들은 이 밤, 또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사는 동안 우리는 무수히 얽힌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라고 지고 또 자라납니다. 아무런 관계없어 보이는 이들끼리도 알게 모르게 수많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맺습니다. 내어준 것 이상 채우고 돌아가는 가시연잎과 개구리처럼…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세상을 만나고 그 세상 속에서 느끼고 배우면서 사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시처럼 간결하고 아름다운 장영복 작가의 글에 담담하게 감정을 추스려 담아낸 이혜리 작가의 절제된 그림으로 완성된 그림책 “가시연잎이 말했네”,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함께여서 좋았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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