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의 규칙

시저의 규칙

글/그림 유준재 | 그림책공작소
(발행 : 2020/07/01)


2016년 출간된 그림책 “균형” 이후 오랜만에 만나보는 유준재 작가의 그림책 “시저의 규칙”입니다. 시저는 고대 로마 시대 무소불위의 정치가 카이사르(Caesar)의 영어식 이름이기도 하죠.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시저는 무자비한 주인공 악어의 이름입니다. 철저히 본능적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숲의 제왕 시저, 힘이 강한 시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로 시저가 사는 숲의 규칙입니다.

시저의 규칙

“나는 이 숲 속의 왕, 시저!
아무도 나와 견줄 수 없어. 나는 가장 거칠고 강해.
모두 내 먹잇감이야. 숨소리도 크게 내선 안 돼!
이게 바로 이 숲의 규칙이야. 나 시저의 규칙이지!”

시저에게 숲속의 모든 것은 자신에게 복종해야 할 대상이자 먹잇감일 뿐입니다. 먹이를 찾아 헤매던 작은 새 역시 예외는 아니었어요. 음흉한 미소와 눈빛, 욕망으로 꿈틀대는 시저의 몸짓이 섬뜩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규칙을 합리화 시키며 다른 동물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이기적인 시저에게 어미 새는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어요.

어미 새를 잔인하게 먹어치운 시저는 부화되지 못하고 알만 남아있는 새 둥지를 발견합니다. 처음엔 한입에 먹어치우려고 했지만 곧 시저는 새들이 알에서 나오면 그때 먹어치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시저의 규칙

어슬렁 어슬렁 둥지 주위를 맴돌면서 알을 지키는 시저. 지금 시저가 지키고 있는 것은 어미 잃은 딱한 처지의 알이 아닌 부화하면 곧바로 먹어치울 먹이입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것이 바로 시저의 규칙이자 이 숲의 규칙이니까요. 하지만 알들이 부화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저는 조금 마음이 흐트러졌어요. 알을 품는 동안 배고픔을 참아야 했고 또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마음 한편에는 이런 걱정도 생겼죠.

‘혹시 알에서 깨어난 새끼 새들이 나한테 따지면 어쩌지?
이 숲의 규칙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하나…?’

알이 부화한 후에도 시저의 규칙은 번번이 시저 자신에 의해 깨어집니다. 솜사탕 같은 새끼들을 보는 순간 조금 더 키워 잡아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시저는 정성을 다해 새끼 새들을 돌보았어요. 새끼 새들은 시저를 엄마인 양 졸졸 따라다녔구요. 시저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맛있게 받아먹으면서…

자신밖에 알지 못하던 시저에게 관계가 형성됩니다. 시저는 그런 관계 속에서 인내하는 법,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있음에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시저 역시 낯설게 느껴졌어요.

시저의 규칙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숲속 먹잇감이 줄어들자 시저의 인내심은 그만 바닥나기 시작했어요. 시저는 예전의 자신이 늘 그랬던 것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고 살금살금 조용히 새끼 새들에게 다가갔어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시저, 새끼 새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까요? 원래 계획대로 시저의 규칙은 그대로 지켜졌을까요?

이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회색빛 세상 안에 가두어 버렸던 시저. 본능은 영원히 바뀔 수 없는 걸까요?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며 새끼 새들의 지저귐을 즐기던 그 마음 역시 믿을 수 없었던 걸까요?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은 자연의 규칙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는 것 역시 자연의 규칙이에요. 우리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절대불변의 규칙.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 낸 규칙은 언제든 바뀔 수 있어요. 시대에 따라, 구성원들의 요구에 따라. 시저의 규칙 역시 그래요. 시저 스스로 마음먹기 따라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그래요.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져요. 그 세상은 잿빛 가득한 쓸쓸하고 우울한 세상일 수도 있고 빛으로 가득한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일 수 있어요.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낸 장면들, 강렬하게 그려낸 그림이 야생의 느낌을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어요. 캐릭터의 성격을 그대로 잡아내 거친 야생에서 본능대로 살아가는 시저는 거칠고 날카롭게, 시저의 심리적 변화를 이끌어낸 아기 새들은 솜털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려냈어요.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으로 시저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준재 작가 특유의 파란색은 “시저의 규칙”에서 초록이 섞인 영롱한 청록색으로 빛을 발합니다. 클로즈업 된 장면의 시저는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원경으로 잡은 장면 속 시저를 보고 있노라면 시저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그 속에 속한 작은 생명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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