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홍인순 | 그림 이혜리 | 보림
(발행 : 2005/05/10)


기묘하게 생긴 괴물과 포대기에 싸인 아기로 보이는 무언가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책표지부터 인상적인 그림책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괴물? 그럼 아기인 줄로만 알았던 바닥의 무언가도 혹시 괴물일까요?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드디어 바닥에 있던 생물체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아기가 아니었네요. 커다란 애벌레였습니다. 꼬물꼬물 느릿느릿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방금 모험을 시작한 애벌레. 귀여움과 기괴함의 경계선에 놓인듯한 애벌레의 흉찍(흉칙 + 깜찍)한 표정엔 다음 장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네요.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애벌레의 목적지는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숲이에요. 불빛 도시를 지나면 나오는 작은 숲. 문제는 불빛 도시엔 어마무시한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거죠. 어떤 괴물들인지 한 번 만나 보실래요?

가장 먼저 냄새가 고약한 방귀 가스를 내뿜는 방귀불 괴물. 걸리면 호흡 곤란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지도 몰라요. 그 다음은 벗기기 괴물입니다. 애벌레만 보면 껍질을 벗기려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에요. 잘못 걸리면 나비가 되는 꿈은 산산히 흩어져버리고 말거예요. 마지막은 애벌레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찐드기 괴물. 애벌레를 보기만 하면 무조건 달겨들어 찰싹 달라붙어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대요. 일단 걸리면 녀석이 놀다 지쳐 잠들기 전까지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놈입니다.

애벌레는 이 흉칙한 괴물들을 피해서 무사히 작은 숲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가 있나요. 잔뜩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지나갔지만 방귀불 괴물은 애벌레의 코앞에다 지독한 방귀불을 내뿜었어요. 애벌레는 한동안 숨을 쉴 수 없었죠.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이번엔 벗기기 괴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정말 조심했는데… 괴물 옆을 막 통과하려는 순간 녀석의 뒷꿈치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퍽 퍽 퍽 순식간에 커다란 손으로 엉덩이를 세 대나 후려치는 벗기기 괴물에게 껍질이 벗겨지는 것만큼은 피하기 위해 아픔을 꾹 참고 전속력을 다해 앞으로 전진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자! 찐드기 괴물에게 걸려드는 것만은 피하자! 맘 속으로 외치면서 말이죠.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하지만 안타깝게도 애벌레가 마음 속으로 그렇게 외치는 동안 녀석은 이미 애벌레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어쩌겠어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애벌레는 찐드기 괴물을 껴안고 이리저리 굴르기도 하고 콩콩콩 뛰기도 하고 빙긍빙글 춤도 추었죠. 녀석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마침내 찐드기 괴물이 지쳐 잠들자 그 틈을 타서 애벌레는 부랴부랴 그 자리에서 벗어나 작은 숲을 향해 전진 또 전진합니다. 드디어 눈 앞에 나타난 작은 숲. 여전히 작은 숲은 변함 없는 모습으로 애벌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찐드기 괴물이 꿀꺽 삼킬 뻔한 수정 구슬도, 벗기기 괴물이 머리에 둘렀던 변신 보자기도, 방귀불 괴물에게 빼앗겼다 되찾은 마법 딱지도 애벌레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다 무사했습니다.

이제 애벌레 세상이야, 만세!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보물들을 갖고 놀며 행복에 젖어드는 애벌레. 실컷 놀고 나서 보물들을 꼭꼭 숨겨둔 후 잎사귀 집에 쏙 기어들어가 잠이 드는 애벌레의 행복한 미소.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길! 설마 괴물들이 꿈에서까지 나타나 애벌레를 괴롭히진 않겠죠? 👻

강아, 늦겠다. 얼른 일어나야지.

다음 날 아침 곤히 잠든 강이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 애벌레와 괴물들의 이야기는 지난 밤 강이의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을까요? 아니면 가족들에게 심통이 난 강이가 엄마 아빠랑 동생을 심술궂은 괴물들로 변신시킨 걸까요?

아이들이 이따금씩 무언가 마뜩잖으면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들을 강이처럼 괴물 취급할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물론 그 마음이 굳어 버리면 큰일 나겠죠. 그렇지 않도록 아이의 마음을 다시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 건 다른 가족들의 몫입니다. 그게 가족이잖아요! 👪


저는 책에서 애벌레의 모험만 소개했지만 처음부터 꼼꼼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강이의 상상이 어떤 물건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한 번 찾아보세요. 뒤쪽 면지엔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난 강이의 눈에 들어온 아침햇살이 담겨 있는데 제 눈엔 마치 나비처럼 보였어요. 여러분 보기에도 그렇다면 이건 또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강이가 그린 가족 그림 두 장도 재미납니다. 한 장은 엄마 아빠 동생이 괴물이 되기 직전으로 보여요. 아빠의 방귀, 엄마의 잔소리, 쉬지 않고 보채는 동생, 울상이 된 강이… 하지만 강이 마음은 금방 풀어졌나봅니다. 또 한장의 그림 속 가족들은 강이와 함께 다정하게 웃고 있거든요.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피카소를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의 출판사 소개글을 읽다보니 펜과 색연필로 그린 그림은 피카소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피카소야 저같은 문외한도 다 알 정도라서 굳이 안찾아봐도 괴물들의 생김새가 ‘우는 여자’ 등 그가 그린 초상화들과 많이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에게선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하고 조금 찾아봤더니 호크니가 피카소를 오마주한 작품들이 있더군요. 자신의 그림에 피카소의 그림을 넣거나 피카소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식으로 말이죠.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의 앞뒤 면지는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들을 많이 닮았습니다. 앞쪽 면지에는 베란다에서 거실과 주방을 지나 강이의 방까지 이어지는 전경을 파편 조각들을 모아둔 것처럼 그렸고, 뒤쪽 면지엔 강이의 방 창문에 비친 아침 햇살을 똑같은 기법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앞뒤 면지와 가장 닮은 피카소의 그림은 어떤 작품일지 여러분 각자의 느낌으로 찾아보세요.

자기들 마음을 잘 담아내서 우리 아이들이 마음에 쏙 들어할 “우리 집에는 괴물이 우글우글”, 바로 우리 가족의 모습 같아서 더 재미있는 그림책입니다.


내 오랜 그림책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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