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매미

(원제 : Cicada)
글/그림 숀 탠 | 옮김 김경연 | 풀빛
(발행 : 2019/04/30)


비현실적인 세상 속에 침잠되어 있는 현실 비판, 기묘함 속에 숨어있는 우울함, 외로움의 끝자락에 걸쳐진 따스한 세계관 등 숀 탠의 그림책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림 한 장을 놓고도 이런저런 해석을 하고 여러 생각을 하느라 한 권을 다 보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까요.

호주 서부 끝자락 퍼스(Perth)라는 항구도시에서 이민 2세로 자란 숀 탠, 그런 유년 시절의 환경 탓인지 그의 그림책에는 경계에 선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이 참 많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느낄 두려움과 막막함 그리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한 이민자의 고독한 마음을 담은 그림책 “도착”(2008),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것들에 관한 이야기 “잃어버린 것”(2002), 식민 지배의 역사를 우화로 풀어낸 “토끼들”(2004), 그리고 최근에 출간한 인간 세계를 위해 평생 일했으나 끝끝내 인간 세계에 속하지 못한 “매미”가 바로 그런 그림책들이죠.

매미

가슴에 가지런히 모은 네 개의 손, 주름진 회색 양복 깃에 달린 신분증이 매미 역시 이 회사의 일원임을 알리고 있어요. 매미는 고층 빌딩에서 데이터를 입력하는 일을 합니다. 매미는 아파서 쉬는 날도 없이,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일을 해왔어요. 무려 십칠 년 동안이나.

톡 톡 톡!

3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매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는 매미의 언어 대신 ‘톡톡톡’이란 소리로 매미의 삶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작은 공간에서 쉴 새 없이 데이터 입력 작업을 하는 매미의 메마른 일상을 전하는 소리이며 매미의 현실을 고발하는 글을 쓰고 있는 화자의 자판기 소리이기도 합니다.

매미

인간이 아니기에 그 긴 시간을 일하고도 승진 한 번 못했어요. 인간과 화장실을 같이 쓸 수도 없어 열두 번 길을 건너 공중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죠.

인간의 일을 하고 있지만 인간은 매미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습니다. 뒷짐을 진 채 창문만 바라보고 있는 인사 부장, 키 작은 매미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어도 무심히 지나치는 다른 직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 매미는 직장에서 그런 존재입니다.

매미

작가 숀 탠이 “매미”의 초기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2005년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라고 합니다. 수백 개의 창문이 달려있는 회색 건물을 본 숀 탠은 그곳 칸막이마다 곤충이나 벌들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농담을 친구에게 했다고 해요.

벌집처럼 촘촘한 칸막이 한 칸에서 일하고 있는 매미, 그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며 한 시대를 거쳐간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집을 빌릴 형편이 되지 못해 매미는 사무실 벽 틈에 살고 있지만 회사는 모른 체합니다. 비좁은 공간에서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뭇잎을 먹고 있는 매미, 휴식 시간이지만 전혀 편안해 보이지 않아요. 불현듯 휴게 공간 하나 없어 화장실 구석자리에서 서둘러 식사를 하는 어느 청소노동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매미

십칠 년을 일한 매미가 은퇴하는 날입니다. 파티는 기대할 수 없어요. 악수조차 없는걸요. 이 순간마저도 상사는 팔짱을 끼고 매미에게 명령합니다. 책상을 치우라고.

평생 데이터를 입력했던 매미의 손이 낡은 책상을 닦습니다. 일을 할 때도 누군가의 구둣발에 짓밟힐 때도 매미의 표정은 한결같아요. 그저 무덤덤하고 그저 무표정할 뿐이죠. 아주 오랫동안 당해 왔던 일이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듯이.

이제 안녕을 고할 때입니다. 꾸릴 짐 하나 없이 맨몸으로 쫓겨난 매미가 천천히 계단을 오릅니다. 매미가 오르는 나선형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이 순간 복잡한 매미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매미

마침내 옥상에 올라가 난간에 위태롭게 선 순간 글자는 화면에서 사라지고 페이지를 가득 채운 그림으로 상황을 보여줍니다. 3인칭 시점에서 담담하게 들려주던 이야기의 나머지 해석은 이제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어요.

십칠 년이란 시간을 지내왔지만 정붙일 데 하나 없는 이곳, 그저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던 지난 삶. 뿌연 안개 낀 회색빛 도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비인간적인 사람들의 마음이면서 복잡한 매미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처량하고 쓸쓸한 매미의 뒷모습은 언젠가 접했던 뉴스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매미

순간 매미의 껍질이 쩌억 갈라집니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껍데기를 가르고 매미가 우화를 시작합니다. 진짜 매미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매미

매미가 비상을 시작합니다. 껍데기는 그 자리에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서있어요. 그 순간 여기저기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수많은 매미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빨간 매미들!

매미들은 모두 날아서 숲으로 돌아간다.
가끔 인간들을 생각한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톡 톡 톡!

해피 엔딩일까 새드 엔딩일까, 글자만 남은 마지막 페이지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뭅니다.

“매미”는 인간 실존의 허무와 절대 고독을 그린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회 속에서 그저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그레고르의 또 다른 얼굴이 바로 이 그림책 속 매미 아닐까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그저 한순간 스쳐가는 타인일 뿐이며 불확실한 존재일 테니까요.

매미의 17년이란 시간이 의아해서 찾아보니 미국에는 ‘십칠년매미(Magicicada septendecim)’라는 종이 있다고 합니다. 십칠년매미는 13~17년이란 긴 시간을 땅속에서 유충으로 보낸 후에야 비로소 우화한다고 해요.  2005년 베를린의 회색 건물에서 그림책의 첫 아이디어를 얻었던 숀 탠은 매미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림책의 또 다른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매미가 어둠 속에서 보내는 17년이란 시간, 대개의 사람들이 첫 직장을 얻어 퇴직하기까지의 기간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네요.

이름 모를 어느 매미의 이야기 속에 비친 우리들의 이야기 “매미”, 어렵고 난해하지만 숀 탠의 그림책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그림책 곳곳에 녹아있는 따뜻한 시선, 현실의 나를 반영한 이야기들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날아가야 할 숲은 어디에 있을까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됩니다.

※ 작가 숀 탠의 블로그 http://www.shauntan.net/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2 Replies to “매미

  1. 긴 호흡으로 읽어야 좋은 그림책인 것 같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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