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원제: Mr. Tiger Goes Wild)
글/그림 피터 브라운 | 옮긴이 서애경 | 사계절
(발행 : 2014/06/16)

※ 2014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 수상작


말쑥한 정장 차림에 모자까지 쓰고 한껏 도도한 표정으로 어딘가로 가고 있는 동물들, 그들 가운데 홀로 정면을 응시한 채 뭔가 불만인 듯한 호랑이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역시 멋진 코트에 나비 넥타이에 신사모자까지 쓰고 있는 호랑이씨.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모두들 잘 살고 있지만 호랑이씨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호랑이씨는 바르게만 사는게 싫어졌대요.(‘바르게’ 사는 것이 아닌 ‘바르게만’ 사는 것 말이예요.) 예의를 차려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도, 사슴씨가 인사하는 모습에서도 호랑이씨 혼자만 지루하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입니다.

호랑이씨는 갑갑했어요.
재미있게 살고 싶었어요.
뭔가 좀 삐뚜로 살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호랑이씨는 엉뚱한 생각을 실천해 보기로 하죠. 먼저 옷을 입은 채 네 발로 다니기 시작해요.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살짝 눈을 내리 뜬 채로 도도하고 고상한 표정만 지었던 다른 동물들은 호랑이씨의 그런 모습을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뜨기 시작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랑이씨는 조금씩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점점 더 엉뚱한 짓을 하기 시작하죠. 아이들을 잡으러 뛰어가기도 하고 높은 건물을 기어 올라가기도 하고, 벤치에서 크게 ‘어흥!’하고 울어보기도 해요. 급기야 옷을 벗어던지고 분수대에서 놀기까지 합니다.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그런 호랑이씨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던 친구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호랑이씨에게 한 마디 하고 말아요. 차라리 숲으로 가서 멋대로 살라고요.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호랑이씨는 냉큼 숲으로 달려갑니다. 옷 따위 모두 훌훌 벗어던지고 말이예요. 푸른 숲 속 넘치는 숲의 정기를 받고 마음대로 살면서 너무나 즐거운 호랑이씨는 마음껏 뛰어 놀고 소리 치면서  신이 났습니다.

잠시 동안 숲에서 신나게 마음대로 살았던 호랑이씨는 숲에서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로 해요. 친구도, 도시도, 집도 그리워졌대요. 그래서 돌아가기로 했는데,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다 있네요. 호랑이씨를 내쫓았던 도시의 친구들 표정이 조금씩 달라져 있는거예요. 심지어 코끼리 여사는 호랑이씨의 편안해 보이는 옷을 들고 기다리고 있기 까지 합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미소를 짓고 말이예요.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호랑이씨가 다시 돌아와 보니 무언가가 바뀌고 있었어요. 동물들이 저마다 네 발로 뛰어 다니기도 하고 두발로 걷기도 하고 원숭이씨는 지붕 위를 날아다니고 있고 게다가 이전의 잔뜩 도도했던 표정들은 다 사라지고 모두가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말이예요.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이제 호랑이씨는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살게 되었지요.

마지막 장면, 모자만 쓰고 발랄한 표정으로 숲을 향해 일렬로 뛰어 가는 동물들의 모습, 모두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게 된 동물들의 모습은 마냥 즐겁기만 해 보이네요 ^^

세상에 변화의 씨를 뿌린 호랑이씨

모두가 정장에 모자 까지 차려입고 꼿꼿이 걸어다니며 품위 있는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도시의 삶에서 호랑이씨는 뭔가 달라지고 싶어합니다.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삶에 변화를 필요로 했지만 처음엔 그게 어떤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딱 잘라 말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조금씩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친구들의 비난도 호랑이씨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자유를 찾아 숲으로 떠나죠.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아마도 자유를 찾아 떠난 호랑이씨의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야기는 홀로 숲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호랑이씨가 친구들과 집을 그리워 하며 다시 돌아오는 시점부터 좀 더 재미있어집니다.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호랑이씨 홀로 생각했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어느 순간 사회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호랑이씨가 떠난 후 다들 한 번씩 생각했겠죠? 아, 저렇게도 살 수 있는 거구나, 모두가 똑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을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불씨는 호랑이씨가 어렵게 지폈지만 그 뜨거운 마음은 실제 호랑이씨가 숲으로 떠나고 나자 모두의 마음 속에 들불처럼 번져나갔을겁니다.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지만 한 사람 두사람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면서 길이 만들어졌 듯 말이죠.

그렇게 세상은 변해 가는 것 아닐까요? 용기있는 선구자에 의해서 말이예요.

모두가 서있는 수직적 구도의 세상에 네 발로 걷기 시작하며 땅과 수평인 세상을 꿈꾸는 호랑이씨. 호랑이씨가 숲에서 돌아왔을때 장면을 보면 호랑이씨나 동물들은 서서 걷기도 하고 네발로 걷기도 해요.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세상에서는 수직으로도 수평으로도 모두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어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눈을 뜨다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모두가 눈을 지긋이 감고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눈을 뜨고 있는 존재가 있어요. 호랑이씨도 그렇지만 체면 따위 처음 부터 알지 못했다는 듯 신나게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습니다. 눈을 뜬 동물들은 모두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호랑이씨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동물들이 하나 둘씩 눈을 뜨기 시작해요. 처음에 동물들은 호랑이씨의 별난 행동이 못마땅하거나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 훗날 호랑이씨가 돌아왔을 때 눈을 뜬 동물들의 표정은 확연히 달라져 있습니다. 작가는 눈을 통해  ‘세상에 대한 눈을 뜨다’라는 표현을 한 것 같습니다.

다른 장소 같은 장면

호랑이씨가 엉뚱하게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도시에서 뛰어 노는 장면과 숲으로 가 홀로 자유롭게 살고 있을 때의 장면은 거의 비슷한 구도로 그려냈어요.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호랑이씨가 돌아오기로 결심한 것의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이 되요. 도시에서 이렇게 살았던 호랑이씨는 숲에서도 이렇게 놀고 나서 생각했겠죠. ‘친구와 집이 있는 도시에 가서도 이렇게 살 수 있겠구나’하고 말이죠.

글이 많지 않은 그림책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는 그림책입니다. 모두가 ‘예’라고 답할 때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는 세상, 다양한 생각들이 넘쳐 나고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세상,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 줄 아는 세상,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할 줄 아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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