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유치원

당근 유치원

글/그림 안녕달 | 창비
(발행 : 2020/05/22)


‘나 좋아하니? (당근!) 나 사랑하니? (당근!) I love you, You Love me~ ‘ 아이와 주거니 받거니 깔깔거리면서 당근송을 불렀던 오래전 생각이 나 혼자 웃어보았습니다. 5년 전(벌써 5년!  😯 ) 수박 수영장으로 여름을 후끈 달구었던 안녕달 작가, 올해는 당근 유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면지 주황색이 너무나 완벽한 당근색이라 펼칠 때마다 면지에서 당근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볶음밥에 카레에 김밥에 달걀말이에 넣으면 맛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당근, 길쭉길쭉하게 썰어 날로 아삭아삭 먹어도 맛있는 당근, 특히나 토끼가 너무나 좋아하는 당근. ^^

당근 유치원

아기 토끼들이 다니는 유치원, 당근 유치원. 오늘 새로운 아기 토끼가 엄마 손을 잡고 당근 유치원을 찾아왔어요. 한눈에 보아도 장난꾸러기, 심술꾸러기, 말썽꾸러기…꾸러기란 꾸러기는 다 모아놓은 듯한 심상찮은 분위기의 아기 토끼, 마지못해 엄마 손에 이끌려 유치원에 온 느낌이에요.

예쁘고 상냥해 보이는 여우 선생님, 고양이 선생님을 지나쳐 다람쥐 원장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간 곳에서 만난 담임선생님은…… 커다란 덩치의 곰 선생님! 마침 덩치만큼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버리려다 ‘어!’하고 돌아보는 곰 선생님과 마주친 아기 토끼의 표정은 놀람 자체입니다.

당근 유치원

아기 토끼는 곰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선생님은 목소리도 너무 크고 힘은 더 세거든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유아기 아이들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서투릅니다. 아기 토끼 역시 그래요. 다른 이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니 사물이나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판단할 뿐. 원인은 생각하지 못 한 채 그저 ‘안 돼!’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을 막아서는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선생님이 별로라고 생각되니 모든 게 다 별로. 그러니 유치원에서 뭘 해도 아기 토끼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없어.

재미가 없으니 유치원에 가기 싫고, 그러니 아침마다 엄마와 등원 전쟁입니다.

당근 유치원

‘오늘 유치원에 갈 기분이 아니야’라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엄마는 아기 토끼를 유치원에 데려다줍니다. 심술이 잔뜩 난 채로 유치원에 간 날,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늘 선생님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아기 토끼가 만든 코끼리를 멋있다 칭찬해 주셨고 친구랑 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아기 토끼 편을 들어주셨거든요. 바지에 지린 똥을 흙이라 우기는 아기 토끼의 말도 믿어 주시고 당근 사탕도 다른 아이들 몰래 아기 토끼만 주셨어요. (어, 그런데 다들 당근 사탕 하나씩 들고 있네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곰 선생님, 선생님의 손길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돌보아 주시는 믿음직한 선생님.

당근 유치원

우리 선생님은 예쁘다.

지금껏 선생님이 싫었던 마음은 모두 눈 녹듯 사르르… 아기 토끼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버립니다. 목소리도 크고 힘도 세서 더 멋진 선생님, 예쁜 우리 선생님.

이제 아기 토끼는 주말이면 선생님이 보고 싶어 유치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지는 그런 아이가 되었어요. 아침이면 예쁜 옷, 선생님 눈에 쏘옥 들만한 옷을 찾느라 또 다른 전쟁 한 판.

당근 유치원

나는 우리 선생님이랑 결혼해야겠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달라졌어요.^^ (선생님에게 착 달라붙어 선생님이랑 결혼해서 맨날 맨날 같이 놀 거라 울부짖는 아기 토끼를 엄마 아빠는 어떻게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갔을까요?)

우당탕탕 난리 법석이었던 당근 유치원에 고요한 밤이 찾아왔어요. 아이들이 퇴원한 유치원에 적막감이 감돕니다. 늦은 시간까지 다음 날 있을 발표회 준비를 마친 선생님도 드디어 퇴근할 시간이에요.

당근 유치원

오늘 하루 무사히 마쳤음을 감사하면서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선생님이 무심코 밤하늘을 바라보다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립니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격동의 하루를 보낸 선생님이 터뜨린 웃음의  의미가 내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찌르 찌르 찌르 초여름 풀벌레 소리,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한 선생님은 이렇게 내일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으시겠죠. 캄캄한 밤 하늘 반짝이는 별만큼이나 고 작고 맹랑하고 귀여운 아기 토끼들을 떠올리면서…

제각각 자기 말만 떠들어 대는 유치원 아이들을 요리조리 날뛰고 재잘대는 아기 토끼로, 믿음직한 유치원 선생님을 힘세고 목소리 큰 듬직한 곰 선생님으로, 그리고 아이들로 정신없는 유치원 상황을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밀하게 묘사했어요. 귀여운 토끼 아이들을 보며 눈으로는 웃으면서도 마음속으론 생각하게 됩니다. ‘아, 선생님은 정말 정말 위대하다!’, 선생님이 별로라서 선생님이 좋아서 매일 아침 아기 토끼와 등원 전쟁을 벌이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생각합니다. ‘아, 엄마는 정말 정말 위대하다!’

아기자기한 그림, 독특한 색감으로 펼쳐놓은 순수 동심의 세계 “당근 유치원”, 철부지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의 묵직한 사랑에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자라면서 아이들은 그 시절의 기억들을 조금씩 잊어버릴 거예요. 하지만 유년기 사랑으로 채워진 가슴은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세상 모두 나를 응원해 주고 있으며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읽어 보세요 : 선생님은 몬스터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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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규
최대규
2020/06/30 11:06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으로 읽다가, 점점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분들…그 많은 분들의 수고로 이 세상이 평안하게 움직여가고, 어린 아이들이 하루 하루 성장해 가는 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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