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글/그림 권윤덕 | 창비
(발행 : 2005/11/15)


다가가면 물러나고 한발 물러나면 한 발 다가오는 밀당의 고수 고양이. 그 모습이 부러워 스리슬쩍 끼어들어 함께 놀고픈 마음 간절해지네요. 랜선 집사, 고양이 그림책 볼 때마다 심쿵입니다.^^

1995년 “만희네 집” 출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새로운 그림책을 선보이고 있는 권윤덕 작가는 우리 그림책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2005년 출간된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는 권윤덕 작가의 일곱 번째 작품이에요.

뒤표지에 이야기의 배경이 소개되어 있어요. 학교 갔다 돌아오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 어느 날 고양이가 찾아왔다고. 그 고양이가 바로 따라쟁이 삼색 고양이, 하지만 어찌나 도도한지 불러도 오지 않고 안아 주려 하면 도망가고 얼굴 마주하면 눈을 감아 버리는 깍쟁이예요.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모든 건 네가 아니라 내가 결정하는거야. 고양이 마음이 그렇다고 하죠. 아이가 모른 척하니 고양이가 살그머니 다가갑니다. 그렇게 아이가 하는 것마다 다 따라 하니…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내가 신문지 밑에 숨어도
문 뒤에 숨어도 따라 해.

책상 밑, 옷장 속 등등 집안에는 고양이와 밀당 놀이하기 좋은 장소가 널리고 널렸어요. 고양이처럼 걷기, 고양이처럼 숨기, 고양이와 친구가 되려면 고양이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 고양이 마음을 알지요.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처럼, 사이좋은 형제자매처럼. 사랑하면 닮는다고 하죠? 고양이 같은 표정, 고양이 같은 동작, 고양이가 아이를 따라 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가 고양이를 따라 하는 느낌이에요.

권윤덕 작가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특히나 고양이의 우아한 동작에 매료되었다고. 그림 속에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과 우아함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요.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놀다 심심해지면 아이는 고양이와 함께 밖을 내다봅니다. 삼삼오오 모여 재미있게 뛰노는 아이들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여요. 그래서 고양이와 관계가 남달랐던 걸까요? 창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계가 둘로 나뉘어 있어요. 아이는 고양이와 이쪽 세상에 고립되어 있는 듯 보여요. 저쪽 세상이 궁금하지만 선뜻 나설 용기가 부족합니다.

내 친구는 고양이밖에 없고
고양이 친구도 나밖에 없고.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어느 날 아이는 결심합니다. 오늘부터 내가 고양이를 따라 하기로.

커다란 고양이 눈에 아이 얼굴이 비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양쪽 눈에 비친 아이 얼굴이 조금 달라요. 고양이 왼쪽 눈에 비친 아이 얼굴이 지금까지의 둥글둥글 순둥순둥한 아이 모습이라면 오른쪽 눈에 비친 얼굴은 도도하면서도 새침한 고양이를 닮았어요. 고양이와의 관계를 통해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고양이처럼 깜깜한 창밖 살펴보기 (이제 무섭지 않아요), 고양이처럼 높은 곳에 올라 먼 곳 바라보기 (모든 것이 달라 보여요), 고양이처럼 몸 부풀리기 (어떤 것도 겁나지 않아요), 고양이를 따라 하는 동안 보지 못했던 것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자그마하게 그렸던 아이를 고양이를 따라 하고부터는 화면을 가득 채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고양이 같은 눈으로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으로 아이의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죠. 용기를 가득 충전한 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혼자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 하지만 둘이 함께라면 무서울 것 없어 보입니다.

이제 남은 일은 성큼 앞으로 한발 내딛기.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어귀를 맘껏 달리는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어요. 물론 그들 사이엔 고양이도 함께하고 있어요.

고양이와의 관계를 통해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 그림책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누군가와 친구가 되려면 먼저 상대를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해요. 관심과 모방, 그리고 행동하기.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져 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친구가 되는 것이구요. 그렇게 우린 성장합니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에 2년 앞서 2003년 “시리동동 거미동동”이 출간되었어요. 이 그림책에는 “시리동동 거미동동”의 빨간 원피스 입은 아이와 하얀 토끼가 작은 인형으로 등장합니다. 어느 페이지에 숨어있는지 찾아보세요.
※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수풀 속에 고양이가 혼자 숨어 있는 장면이 나와요. 다음엔 어떤 친구를 찾아갈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에요. 혹시 고양이는 외로운 아이를 찾아다니며 친구들 사이를 이어주는 요정인 걸까요? 그렇다면 두 눈 크게 뜨고 다녀야겠어요. 다음 번에 고양이가 나를 간택할 수도 있으니까. ^^


내 오랜 그림책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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