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인 날
글/그림 김고은 | 천개의바람
(발행 : 2021/04/01)
아이가 끼여있는 문을 따라 세로로 쓴 “끼인 날”이란 노란 색 그림책 제목이 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문틈 사이 끼인 아이 표정이 너무나 리얼해 얼른 빼내주어야 할 것만 같아요. 어쩌다 그리되었는지 사연 들어보러 후다닥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어요.
하굣길,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는 하얀 개가 하얀 구름 사이에 끼어있는 걸 발견합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구름에 끼어있던 개를 구해주었어요.
“너는 왜 여기에 끼어 있니?”
“지붕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서 그만….”
그래서… 구름 사이에 끼게 되었다? 운수가 나쁘면 그리될 수도 있지요. 난 그저 평소처럼 행동했을 뿐인데.
구름 사이 낀 하얀 개를 구해주었던 날을 시작으로 매일같이 아이 눈에 어딘가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존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장면에서 끼어있는 무언가를 한 번 찾아보세요. 아이 눈길을 따라서 따라서……, 찾으셨나요?
할머니 이마에 저거 저거, 설마? 맞아요. 슈퍼 할머니 주름살 사이에 낀 모기. 아이는 조심조심 주름살을 벌려 모기를 구해주었어요. 그렇게 덜덜 떨며 도망치는 모기 입이 할머니 주름살 모양으로 구부러졌다지요. 그렇게 어딘가에 끼어 딱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구해주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었어요. 네 탓이야! 너 때문이야! 싸움하는 엄마 아빠 사이엔 아이가 낄 틈이 없어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자리도 없었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둘 사이 무언가 끼어있었어요.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 서로에게 ‘네 탓’을 시전하는 싸움 요정들이었어요.
저 싸움 요정들은 왜 엄마 아빠 사이에 낀 걸까?
엄마 아빠가 싸워서 낀 걸까?
쟤네들이 끼어서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걸까?
집이 산산조각 나기 전 아이는 모두를 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도, 그 사이 낀 싸움 요정들도 요지부동.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아이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꼭 끼인 상태가 되고 말았어요. 부탁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겁도 주고, 살살 구슬려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있나요? 우리 가족 일인데… 마지막 필살기를 사용해 아이는 싸움 요정들을 엄마 아빠 사이에서 빼냈어요. 싸움 요정들이 새로 싸움 붙일 사람들을 찾아 멀리 날아가 버리자 드디어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셋이 꼭 안고 소파에서 잠든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지쳐 잠든 가족, 그 사이 포근하게 끼인 아이, 세상 모든 평화가 깃든 포근하고 나른한 오후입니다.
아이가 싸움 요정들을 빼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 어렵지 않은 간단한 방법이니 한 번 생각해 보고 그림책으로 확인해 보세요. 어느 날 갑자기 주체할 수 없게 화가 난다면… 그건 싸움 요정들이 우리를 찾아온 날일지도 모르니 차분하게 살펴보세요. 싸움 요정들이 우리 사이 끼어있지는 않은지.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그 사이에 끼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누가 나 좀 꺼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살아 보니 다들 어딘가에, 어느 사이에 끼어 당황하고 때론 힘들지만 또 그러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거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고 싶었어요.– 작가의 말 중에서
요리조리 끼어 중재자 역할도 하고 해결사 역할도 하며 둥글둥글 자라나는 아이 모습을 재미있게 그린 그림책 “끼인 날”, 수많은 관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 가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건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작은 실수 때문에, 싸움 요정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속상해하지 말고 툭툭 털고 씩씩하게 일어나세요.
‘오늘은 운수가 좀 나빴을 뿐이야!’ 라고 생각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