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특급 비밀 프로젝트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

벙커 안에서 과학자들은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저 멀리 폭파 현장을 바라봅니다. 곧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이내 무시무시한 섬광과 지옥과도 같은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릅니다. 그 다음 장면은 까만 배경색으로 가득한 텅빈 페이지뿐입니다. 핵폭탄이 실제로 사용된다면 이 지구상에는 아무 것도 남아나지 않는다는 잔혹한 경고겠죠.

하지만 현실에서 그 날 벙커 안에 있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그 결말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비록 적이지만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두 도시에 연거푸 핵폭탄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사람들의 머리 바로 위로 핵폭탄을 주저 없이 떨어뜨린지 73년이 지난 2018년 6월 12일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이 만났습니다. 종전과 비핵화를 이루고 평화를 되찾기 위한 만남이었습니다. 그 만남이 끝난 후 미국의 기자들은 트럼프에게 묻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종전이니 비핵화니 논의하기 전에 인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저 질문을 한 기자는 미국인입니다. 회담이 있기 73년 전에 핵폭탄을 한 개도 아닌 두 개씩이나 남의 나라에 떨어뜨린, 그것도 생존이 아닌 핵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인 나라의 백성이 할만한 질문은 아닙니다.
※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Little Boy’는 농축우라늄으로 제조했고, 사흘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한 ‘Fat Man’은 플루토늄 원폭입니다. 전쟁의 다급함으로 원폭이 불가피했었다면 굳이 사흘의 간격을 두고 종류가 다른 핵폭탄을 각각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 두 번의 원폭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2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에는 4만여 명의 한국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출처 : 원자탄, 인류 역사상 최악의 과학기술 드라마 )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을 각각 지배하는 것을 상호 인정한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우린 그저 밀약의 이름으로만 외워왔지만 사실 저 밀약의 주인공 태프트는 훗날 미국의 27대 대통령이 됩니다. 북미 정상 회담 후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쩔거냐는 질문을 한 기자는 자기네 나라의 27대 대통령이 한반도의 인권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단 일 초라도 생각해 봤을까요?

굳이 2차대전 당시 원폭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재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전쟁의 대부분은 미국이 원인이거나 미국이 그 상대국입니다. 자국민을 포함해서 숱한 목숨을 자신들이 벌이는 전쟁의 위험 속에 밀어넣은 나라의 기자가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라고 묻는 장면을 보며 밀려오는 욕지기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지켜보고 있자면 결국 이 땅의 평화를 진심으로 바라는 건 우리 당사자들 뿐이구나 하는 생각뿐입니다. 국내 정치와 언론계의 수구 세력의 행태가 일본의 아베 무리나 극우 언론과 마치 사전에 짜기라도 한 양 똑같이 움직이는 건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자신들의 유불리에 눈이 멀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지금 당장의 정국에 훼방을 놓는 미국 진보 언론이나 민주당의 행태 역시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니 말입니다.

‘호혜성 이타주의’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도 미래에 나의 행동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게 될 거라는 기대가 높을수록 호의를 베풀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입니다. 내가 평화를 원한다면 상대방에게 ‘네가 먼저 총을 내려놔!’라고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총에서 탄창을 빼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이 핵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지구 상에 16,000여 개의 핵 위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뒤집어 말하면 전세계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이루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미국이 자신들이 보유한 핵을 포기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호의를 바란다면 자신이 먼저 호의를 베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
책표지 : Daum 책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

(원제 : The Secret Project)
조나 윈터 | 그림 지넷 윈터 | 옮김 마술연필 | 보물창고
(발행 : 2018/03/20)

조나 윈터와 지넷 윈터 모두 인물 그림책과 같은 논픽션 그림책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작가입니다. 조나 윈터의 경우 가온빛에는 “베토벤의 기적같은 피아노 이사 39번”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초특급 비밀 프로젝트” 역시 정확한 포인트를 콕 집어내는 작가들의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과학자들이 핵실험을 하는 과정을 뭔가 은밀한 듯 하면서도 일상적인 모습인 듯 착각하게 만들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결국은 핵의 무시무시한 잔혹함을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독자들 스스로 느낄 수 있게끔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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