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주면 알맹이보다 선물을 담은 상자를 더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어요. 빈 상자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어서 좋고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계속 상상을 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그 예쁜 마음이 너무 예뻐서 웃고, 이유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너무 컸던 것이 우스워서 또 웃었어요.

유행, 경쟁, 과시와 욕망 사이 효율과 효용이라는 허울 아래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쓸모란 무엇일까요? 쓸모 있음과 없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개구리 우산이 물었어”, “쓰레기통 요정”, “떨어질 수 없어”, “고무줄은 네 거야” 네 권의 그림책과 함께 쓸모에 관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개구리 우산이 물었어

개구리 우산이 물었어

글/그림 안효림 | 웅진주니어
(2020/06/29)

빗방울이 톡, 파란 개구리 우산에 떨어진 순간 우산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나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지, 나는 왜 태어난 걸까?

비 피하는 용도로 잠깐 사용되었다 비가 그치면 현관에서 혹은 베란다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는 우산, 쓸모의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존재의 이유가 초라합니다. (비 오는 날 누군가와 우산을) 나눠 쓸 수 있는 마음, (우산을 들고 )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라고 존재하는 것 같다는 무지개 우산의 현답이 마음을 무지갯빛으로 채워줍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우산의 쓰임을 바라보면서 우리 삶을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반가운 존재이고 또 따뜻한 존재일 수 있는 것.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아닐까요? 필요와 쓸모로서의 용도로만 모든 걸 바라본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팍팍해질까요. 쓸모보다 소중한 것을 찾을 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그래서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쓰레기통 요정

쓰레기통 요정

글/그림 안녕달 | 책읽는곰
(발행 : 2019/10/10)

버려지고 잊혀진 것, 생각만 해도 더러워 가까이 가기 싫어지는 곳, 쓰레기통. 그곳에 사는 요정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쓰레기통 가까이 오면 쓰레기통 요정은 해맑은 얼굴로 ‘소원을 들어 드려요!’하고 외칩니다. 하지만 쓰레기통 요정을 본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아요. 깜짝 놀라거나 뒤로 넘어지거나 무시하거나 아니면 한계를 넘어서는 걸 요구하고는 시큰둥해지거나. 그런데 이 요정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반기는 이들이 있었으니 엄마가 버린 곰인형을 찾던 어린아이와 폐지를 줍던 할아버지였어요.

쓰레기통에서 건져 올릴 게 뻔한데 이들은 쓰레기통 요정이 건넨 작고 소중한 것을 보고 누구보다 기뻐합니다. 요정이 건넨 물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요정은 그들의 해맑은 마음과 순수한 웃음을 먹고 살아요. 곧 쓰레기통에 집어던질 물건을 사느라 오늘을 허덕이며 사는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그 마음.

잠시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를 빛나게 하는 건 무엇인지.

“쓰레기통 요정” 리뷰 보기


떨어질 수 없어

떨어질 수 없어

(원제 : Inseparables)
글 마르 파봉 | 그림 마리아 히론 | 옮김 고양이수염 | 이마주

(발행 : 2018/11/15)

클라라를 만나 행복했던 파란 신발, 행복은 언제까지고 영원할 것 같았지만 어느 날 신발 한 짝이 찢어지면서 버림받게 됩니다. 신발은 쓰레기장에서 또 한 번 이별의 아픔을 겪어요. 찢어진 신발 한 짝은 버려두고 멀쩡한 신발 한 짝만 어디론가 옮겨지게 되었어요.

신발 한 짝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또다시 버림받지 않을까 불안에 떨던 신발 한 짝은 깨끗하게 세탁되어 양말 한 짝과 함께 누군가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신발은 리타라는 아이를 만났어요. 신발을 신고 신나게 춤을 추는 리타에겐 다리가 한쪽뿐이었지요. 다리가 하나뿐인 소녀, 한 짝뿐인 신발과 양말. 불안해 보일 수 있는 존재가 만나 함께 춤추는 장면은 이 그림책에서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장면입니다.

새로운 의미가 된 신발을 통해 우리는 완전하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쓸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찢어져 버려진 남은 신발마저도 화분으로 다시 태어난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합니다. 버려진 것들은 쓸모 없어서가 아니라 쓸 줄 몰랐기 때문은 아닐까?

‘소각’이 아니라 ‘소생’한 파란 신발. 빛나는 마음이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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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은 내 거야

고무줄은 내 거야

글/그림 요시타케 신스케 | 옮김 유문조 | 위즈덤하우스
(2020/03/15)

만약 쓰레기통 앞에 떨어진 노란 고무줄 하나를 발견한다면?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잠시 생각해 보세요. 아이는 고무줄을 들고 다급하게 엄마를 부르더니 이렇게 물었어요. “있잖아, 이 고무줄 나 주면 안 돼? 응?” 엄마는 무심한 얼굴로 ‘그래. 가져.’라고 허락을 해주었죠.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그 흔하디흔한 고무줄로 온종일 온갖 상상을 쏟아내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림책을 보는 동안 깜짝 놀라게 됩니다. ‘아니, 저 까짓 게 뭐라고’ 하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어디 떨어진 고무줄 없나 두리번거리는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림책을 읽는 동안 우린 생각하게 됩니다. 쓸모란 쓸모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분명 있을 거예요. 우리 딸아이에게는 아기였을 때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낡고 너덜너덜한) 기다란 베개가 그것이고 저에게는 초등학교 졸업 즈음 아빠가 사주신 (이제는 맞지도 않는) 14K 반지가 그런 것이에요. 그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것이기 때문에,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두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 보물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언가의 가치를 획일화된 쓸모만으로 기준 삼을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구요. 어느 날 불현듯 나의 순수함에 의심이 든다면 이 그림책을 꼭 읽어보세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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