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날들

“네가 사는 곳을 날마다 잘 살펴보렴.
하루하루는 다 다르지만
모든 날들이 아름다우니까.”

끊임없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합니다. 여러 생각을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고 수없이 많은 판단 속에 행동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살아가는 동안 이 과정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그런 흐름이나 행동, 생각을 모두 명확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어?’하고 돌아볼 때가 있죠. 몸이 몹시 아픈 날이라든지, 생일이라든지 혹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누군가를 새로 만나거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를 만난 날. 아무튼 그런 날.

봄이 이렇게 예뻤나, 여기 이런 꽃이 피었었구나. 위층 꼬마가 벌써 저렇게 자랐네,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건강했을 때는 왜 몰랐을까… 새삼스럽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요?

에메 아저씨는 일곱 살 때 엄마에게 사진기를 선물 받았대요. 그때부터 아저씨는 자기 주변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어요. 여백으로 가득한 그림책 왼쪽 페이지에는 아저씨와 아저씨 주변 사람들이 그려져 있어요. 오른쪽 페이지에는 아저씨가 살고 있는 집주변 풍경이 화면 가득 그려져 있어요. 하나의 장면에 사람과 공간이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이지요.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일곱 살이었던 아저씨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아저씨의 공간은 계속해서 변해갑니다. 작은 개울이 있던 곳에 조그마한 다리가 생겨나고 기찻길이 생겨났어요. 아이들은 점점 자라나고 엄마는 조금씩 늙어갑니다. 풍경이 변해가고 사람도 바뀌어가지만 변치 않는 것은 에메 아저씨의 고향집에 대한 사랑이에요.

시간과 함께 풍경도 흘러 흘러 변해가지만 아저씨의 마음은 언제나 영원합니다. 아저씨가 그 공간에서 사라진 후에도 아저씨는 존재해요. 모두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따뜻한 추억으로… 아저씨가  남겨놓은 추억들을 아이가 발견하는 장면에 마음이 찡해집니다. 아저씨가 유품으로 남긴 낡은 카메라와 함께 있는 앨범 속 장면, 바로 이 그림책의 첫 장면이거든요.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사랑한 에메 아저씨의 마음은 또 다른 손을 거쳐 전해집니다.

나뭇 가지 사이 비쳐들어오는 햇살 한 줌,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쾌한 웃음소리, 봄날 작은 새의 지저귐, 같은 자리에서 해마다 피어나는 예쁜 꽃, 흘러왔다 흘러가는 모든 것들에는 시간의 추억이 서려있어요. 누군가의 다정한 순간들이 담겨있어요. 오늘 내가 발견한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요? 잠시 짬을 내어 세상을 한 번 바라보세요. 이 세상이 다정하게 나에게 건네는 선물을…


우리의 모든 날들

우리의 모든 날들

(원제 : Jour Après Jour)
글/그림 로맹 베르나르 | 옮김 이경혜 | 모래알
(발행 : 2020/05/20)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공간이 어떻게 변화되고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잔잔하게 그려낸 그림책 “우리의 모든 날들”, 한 장면을 반으로 나누어 밤과 낮을 모두 담아낸 표지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 그림책은 공간 구성이 재미있어요. 배경을 없앤 하얀 여백의 왼쪽 페이지에 아저씨와 주변 인물들을 배치했고 아저씨가 사는 집 주변 풍경은 오른쪽 페이지에 다채로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의 그림들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답니다. 강아지와 노는 장면에는 뒤쪽으로 나무를 실은 트럭이 보이는데 오른쪽 장면을 보면 커다란 나무 몇 그루가 잘려 있어요. 앞 페이지에서 커다란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뒤쪽 무언가가 무덤이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죠.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아저씨가 들고 가던 꽃다발, 오른쪽 화면을 보면 그 꽃다발이 새로 생긴 무덤 위에 놓여있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무덤인지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림을 통해 그 무덤이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있어요.

우리의 오늘은 늘 똑같다 생각했던 – 어쩌면 지루하고 따분하다 생각했던 – 나날들이 아주 작은 변화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에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기게 될까요? 오늘 문득 이 모든 순간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멋진 그림책 덕분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0 0 vote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