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 없는 외출

저 커다란 문을 열고 이 세계로 나왔을 아이,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커 보이는 건  이미 이런 경험을 수없이 많이 해봤기 때문인가 봅니다. 자기 보다 더 큰 그림자가 근심처럼 턱하니 아이 앞에 놓여있어요. 오도카니 혼자 서서 자기 앞에 펼쳐진 길을 바라보는 아이 심정은 지금 어떨까요?

처음 사회에 발 내딛던 순간, 엄마 아빠 품을 떠나 결혼하던 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생명을 낳아 가슴에 품었던 순간. 모두 내 선택이었고 내 의지였지만 잘 할 수 있을 거란 확신보다는 두렵고 막막한 마음이 앞섰어요. 그림 속 저 아이처럼요.

그때는 지금의 제 나이쯤 되면 두려움이 없을 줄 알았어요. 무슨 일이든 쉽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세상 모든 이치에 훤해지고 척하면 척, 모든 걸 다 꿰뚫어 볼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인생은 여전히 알쏭달쏭 언제나 오리무중. 나는 오늘도 인생의 길 위에 서 있는 초보 여행자입니다.

그 숲에 그 아이가 살고 있어요. 내 마음에도 그 아이가 살고 있어요.


허락 없는 외출

허락 없는 외출

글/그림 휘리 | 오후의소묘
(발행 : 2020/11/25)

글 없이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림책입니다. 문을 열고 나온 아이는 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때론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때론 외로워 보이기도 해요. 아이는 한적한 숲 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타기도 하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기도 해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친 바람을 만나기도 하구요.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는 길을 아이 혼자 걷고 있습니다. 다행인 건 수호신처럼 작은 공룡 인형이 언제나 아이와 함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폭신해 보이는 인형이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에요.

이리저리 흔들리며 걷는 모습이 인생길을 걷는 우리 모습 같아 작은 아이가 한없이 애처롭고, 힘내라 응원하게 됩니다. 그림책을 보는 동안 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리광 많은 아이, 하지만 대체로 씩씩하고 살짝 무모하기도 한 어린아이를 만나는 것 같았어요.

휘리 작가는 미완성인 지금의 내가 어떤 사건의 결과일지 궁금한 마음에서 이 그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직 마음을 따라가는 여행. 그렇게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한 장씩 한 장씩. 이 그림책은 그렇게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항상 푸르지만은 않은 숲
무거운 숲에서도 날아오는 새
커다란 바람이 나를 놀라게 하는 밤
그리고 다시 밝아오는 아침

익숙한 불안
서투른 안도
나는 언제나 그 사이에 서 있다

–  “허락 없는 외출” 에필로그 중에서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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