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바쁜 출근길에 비까지 내려 옆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모두들 제 갈길만 재촉하는 도로 위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듭니다. 달려드는 자동차들을 피해 길을 건너려는 아기 고양이의 어설픈 몸짓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 안 그래도 막히는 출근길 정체가 더 심해질까 짜증 내는 사람들…

아침부터 작은 생명이 다치는 일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건 짜증스러운 마음이건 아기 고양이가 무사히 길을 건너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설령 갑작스레 뛰어든 고양이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차를 탓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다들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추돌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데 고양이 한 마리 살리자고 급정거를 할 수는 없지…. 잘 한 거야…’

다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자동차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섭니다. 사방에서 경적들이 빵빵거리며 길을 재촉합니다. 운전자가 달려나와 아기 고양이를 안아들고는 서둘러 차로 돌아갑니다. 자동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다행이야~’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 초면인 옆사람과 멋쩍은 웃음 주고 받는 사람들, ‘앞에 무슨 일이지? 사고라도 났나?’하며 궁금해 하는 사람들…

모두 지각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오늘은 지각해도 좋은 날입니다.

아무런 사고도 나지 않았고, 다친 아기 고양이도 없고, 지각은 했지만 다들 무사히 출근한 아침입니다. 잠깐의 상황을 모른 채 그 길을 지나친 사람들에게는 평소보다 유난히 길이 막혔던 아침일 뿐이지만, 그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아기 고양이가 다치지 않아서 참 다행인 조금은 특별한 아침입니다.

‘지각’은 ‘정해진 시각보다 늦게 출근하거나 등교함’이란 뜻 외에 ‘알아서 깨달음(知覺)’이란 뜻도 있습니다. 지옥철에 꽉 찬 사람들, 정체된 도로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자동차들, 밀접한 거리에서 살아가지만 점점 더 서로에게 무관심해져가는 요즘 아주 잠깐이라도 우리 이웃을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작가들은 두 가지 뜻을 가진 ‘지각’이란 단어에 담아낸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각

지각

허정윤 | 그림 이명애 | 위즈덤하우스
(2022/10/25)

출근길 정체된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통해 이웃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요즘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그림책 “지각”. 허정윤 작가의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스토리와 우리들 마음을 쿡 찌르는 듯한 이명애 작가의 그림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사족

‘서강대교에서 만난 아기 고양이에게, 그때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고백합니다.'(허정윤 작가), ‘작업실을 오가며 만나는 고양이들에게 무탈한 하루를 선물합니다.'(이명애 작가) 라는 두 작가의 담백한 헌사에 비해 출판사의 책소개글은 꽤 자극적입니다.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선택의 순간,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순간의 선택이 모여 인생이 됩니다. 매순간 진실한 선택을 하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기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나서지 못한 이들 모두 잘못된 선택, 진실하지 못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니지 않나 싶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허정윤, 이명애 두 작가는 출판사의 저 카피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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