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

맨드라미꽃
뇌처럼 생긴 맨드라미 꽃잎은 단단하고 뻣뻣해요.
손으로 쓰다듬거나 가볍게 톡톡 쳐도
여간해선 꽃잎이 떨어지거나 찢어지지 않아요.
머리가 아플 때 뇌를 닮은 이 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맨드라미도 꽃일까 생각했던 시절이 있어요. 꽃 하면 떠오르는 예쁘다는 느낌과는 동떨어진 뻣뻣하고 단단한 모양새에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름으로 가득한 뇌를 닮은 모양이 징그러웠고 붉은 색깔이 지나치게 선명해 무섭게 느껴졌었거든요. ‘꽃’이라 부르는 것조차 어색해 그냥 맨드라미라고만 불렀던 꽃. 담벼락이나 장독대 아래, 길가 어디나 흔히 피어있던 붉은 맨드라미.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예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았던 그 맨드라미를 소피 블랙올은 ‘매일을 채우는 52가지 행복’ 목록 열세 번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맨드라미를 기억 속에서 다시 소환해 보았습니다.

‘머리가 아플 때 뇌를 닮은 이 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라는 소피 블랙올의 생각이 재미있습니다. 누군가는 맨드라미가 어딘가 무섭게 느껴졌는데 누군가는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니… 이 짧은 이야기 하나가 오랜 기억을 소환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불러옵니다. 내게는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은 그런 게 뭐가 있을까?

다음에 맨드라미꽃을 보게 된다면… 비바람에도 꺾일 것 같지 않고 찢어질 것 같지 않았던 그 작고 단단한 꽃을 어른의 눈으로 다시 찬찬히 바라보려고 합니다. 다음에 맨드라미꽃을 다시 보게 된다면.


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

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 매일을 채우는 52가지 행복

(원제: Things to Look Forward to: 52 Large and Small Joys for Today and Every Day)
글/그림 소피 블랙올 | 옮김 정회성 | 웅진주니어
(2023/11/30)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을 살아왔던 소피 블랙올은 팬데믹과 함께 닥쳐온 경제적 문제, 전 남편의 사고사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삶이 송두리째 먹구름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다 ‘하루하루 살면서 기대할 만한 것들’ 목록을 정리해 보기로 마음먹고 목록을 기록하면서 그중 몇 가지를 그림과 함께 SNS에 올렸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고 합니다.

『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은 그렇게 탄생한 책입니다. 처음부터 찬찬히 한 장 한 장 읽어도 좋고 무심히 툭 한 페이지를 열고 보아도 좋아요. 내 이야기와 연결해 보면 더욱 따뜻하게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나면? 나의 목록을 만들어 보는 거죠. 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을…

나는 늘 되새기곤 해요.
짙은 먹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더라도
지평선 어딘가에는 밝은 곳이 있게 마련이라고.
어쩌면 그곳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 바라보아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 스스로 나서서 만들어야만 하는 곳일지도 모르지요.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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