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계란말이 버스

삼 년 동안 내린 눈은 온 세상을 멈춰 버렸어요.
학교도 도서관도 회사도 식당도 모두 문을 닫았어요.
사람들 마음까지도요.

그런 까닭으로 오랫동안 멈춰 있던 계란말이 버스가 오늘 여행을 떠나요.
멈춰 버린 세상에서 미뤄 둘 수밖에 없던 약속을 지키러 가요.

기분이 이상해요.
무언가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코끝이 찡해 오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죠.

안녕, 봄.

달동네에서도 제일 꼭대기 집, 그곳에 사는 아이는 그림책에서 본 계란말이 버스를 굳게 믿습니다. 밤하늘의 노란 달과 가장 가까운 자기 집에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푹신푹신하고 포근한 계란말이 버스가 와 줄 거라고.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소외된 곳에서 아이는 이웃과, 세상과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계란말이 버스 공장장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계란말이 버스를 꼭 보고 싶다고, 그곳에 있는 자신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계란말이 버스가 편지를 보낸 아이를 찾아 언덕을 오릅니다. 쌓인 눈에 버스가 미끄러져 오르지 못하게 되자 어디선가 하나 둘 나와 힘을 보태는 사람들. 세상이 멈춰 버린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들이 계란말이 버스 덕분에 활짝 열렸습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이내 다정한 이웃의 웃음을 되찾습니다.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를 부비며 반가워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 하나 모여 계란말이 버스가 다시 언덕을 오를 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사는 곳에 도착합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가슴이 따뜻합니다. 언덕을 오르는 내내 함께 했던 이들의 다정한 눈빛들을 떠올리니 코끝이 찡해집니다.

계란말이 버스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안녕, 봄.” 하고 건네는 인사 한 마디에 꾹꾹 누르며 참았던 감정이 터지고 맙니다. 아무리 불러 보아도 더 이상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그 이름들…


그날 밤 계란말이 버스

그날 밤 계란말이 버스

글/그림 김규정 | 보리
(2024/01/02)

5년 전 우리에게 달려왔었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버스 『계란말이 버스』가 다시 달립니다. 모든 게 멈춰 버린 세상을 다시 힘차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각자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서로가 척 진 세상을 다시 문을 활짝 열고 서로에게 따뜻한 온정을 나누는 세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그날 밤 계란말이 버스』가 다시 달립니다. 계란말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이웃의 따뜻한 마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우리의 수많은 봄이들을 위해서…

그날로부터 10년이 지났어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세상을 보여 주고 있나요?

작가가 던지는 한 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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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
나루터
2024/03/04 09:05

공감가는 글. 공감가는 그림에 꾸욱 누르고 갑니다. 그림책 찾아봐야 겠어요.

가온빛지기
Admin
2024/03/04 09:32
답글 to  나루터

나루터님 반갑습니다!
전작 “계란말이 버스”와 함께 보시면 더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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