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고 나서야 따뜻했던 지난 시간이 고마웠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다 내 삶도 이렇게 늘 한 박자씩 늦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고마운 사람들, 즐거운 기억들. 늘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니 말이에요. 아마도 무더위가 한창인 내년 여름 휴가철 즈음 되면 저는 분명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이런 무더위 보다야 눈 내리는 지난겨울이 훨씬 나았던 것 같아!’ ^^

행복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무엇을 갖고 싶었는지, 그걸 제대로 찾았는지, 잘 간직하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며 살고 있는지, 그래서 지금 행복한지… 여러분에게 행복은 어떤 빛깔, 어떤 모양, 어떤 모습 그리고 어떤 의미인가요? 여러분은 행복한가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원제 : Le Tracas De Blaise)
라파엘 프리에 | 그림 줄리앙 마르티니에르 | 옮김 이하나 | 그림책공작소
(발행 : 2020/10/17)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블레즈씨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건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수북한 털로 덮인 커다란 발을 바라보며 블레즈씨는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어, 이게 뭐야?’하고.

하지만 블레즈씨는 오래 생각하고 고민할 여유가 없었어요. 어쨌든 회사에 가야 하니까. 당장 시급한 건 오늘 또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슬픈 현실. 온종일 기다란 장화로 이상해진 발을 감추고 걱정거리를 잊기 위해 더욱 일에 집중했던 블레즈씨는 그날 밤 내일은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잠들었어요.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블레즈씨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집니다. 화요일 아침엔 하반신 전체가 털로 뒤덮인 채 깨어났고 수요일 아침에 깨어났을 때는 온몸이 털로 뒤덮였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회사는 가야 하니까…
… 블레즈씨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매일 같이 반복되는 고달픈 하루를 마치고 잠든 블레즈씨. 한밤중 달빛 아래 깨어난 블레즈씨는 이제 영락없는 곰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쯤이면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인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했던 예상을 뒤엎고 말이에요. 곰이 된 블레즈씨는 가만히 밤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밤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이제껏 시간에 쫓기고 삶에 치여 허둥대고 투덜대던 블레즈씨는 온데간데 없어요. 본연의 ‘나’로 돌아간 듯 평화롭고 침착해 보이는 곰 한 마리만 남았습니다. 금요일 아침 회사가 아닌 숲으로 들어간 블레즈씨는 생각했어요.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고.

숲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이제껏 살았던 도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그곳에 살 때는 몰랐던 것들, 그 둘은 그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나도 모르게 공감이 되어 그들 곁에 나란히 앉아 그들과 함께 그들이 떠나온 도시를 조용히 바라봅니다.

일상에 쫓겨 ‘나’를 잊은 채 바쁜 삶을 살던 인간 블레즈씨, 그의 방에 있던 커튼, 액자 그림, 벽지, 타일, 이불, 자동차, 옷 색깔, 곰돌이 인형까지 모두 숲을 닮아 있어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갑니다.


작은 당나귀

작은 당나귀

글/그림 김예인 | 느림보
(발행 : 2010/02/04)

저녁 노을이 지면
神들의 商店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城

-기형도 “숲으로 된 성벽” 중에서

김예인 작가의 “작은 당나귀”는 기형도 시인의 시 “숲으로 된 성벽”을 모티브로 만든 그림책입니다. 시에서 농부들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성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당나귀는 이 그림책에서 당나귀 머리의 작은 소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작은 당나귀

어느 도시의 한 양복점에서 일하는 당나귀 소녀. 홍수처럼 밀려가고 밀려오는 수많은 사람들 속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는 당나귀 소녀는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해 보입니다. 언제나 떠나는 꿈을 꾸는 소녀. 팍팍하고 메마른 현실 속에서 나를 잃고 가슴에 품었던 푸른 꿈조차 잃어버린 듯 멍한 작은 당나귀 소녀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작은 당나귀

“도시 끝에 울창한 숲이 있다네.
소리 없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한 숲.
그곳에 평화로운 성이 있다네!”

어느 날 우연히 떠돌이 시인을 만난 당나귀 소녀는 그가 말한 신비한 숲을 찾아 떠나게 됩니다. 그녀가 늘 꿈꾸었던 그곳으로.

작은 당나귀

그곳에는 그녀가 이제껏 동경했던 아름답고 신비한 숲이 있었어요. 그녀는 그곳에서 숨을 멈추고 온 마음으로 행복과 평화를 느껴봅니다. 잿빛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삶이 환한 빛으로 가득해집니다.

골동품 상인 역시 떠돌이 시인의 말을 따라 숲을 찾으러 들어왔어요. 사람들을 불러 모은 그가 신비의 숲에서 찾으려는 건 보물이었죠. 그들은 밤새도록 숲을 파헤치고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그들의 욕망을 채워줄 호화로운 보물을 찾기 위해.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곳은 구름이나 공기처럼 소리 없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한 숲이었으니까요.

마음의 평화를 꿈꾸던 당나귀 소녀에게 숲은 더없이 소중한 보물입니다. 매일같이 똑같은 무미건조한 삶에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오아시스 같은 그곳. 여전히 당나귀 소녀는 도시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삶이 숨 막히게 느껴지지 않아요. 당나귀 소녀에게는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푸른 숲이 마음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그 숲은 모든 것을 돈과 물질로만 측정하는 이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아요.

본질은 늘 눈에 잘 보이지 않아요.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된 신비한 숲, 숲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는 건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 아닐까요?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어지러운 날, 작은 당나귀 소녀가 되어 보세요. 내 마음을 품어줄 공간을 찾아 그곳에서 나의 숲을 만나보는 거예요. 투명하게 나를 비춰줄 나만의 신비한 숲을…

시를 눈으로 읽었을 때와 직접 낭송해 보았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시에 담긴 아름다운 운율, 함축된 의미를 모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기형도 시인의 “숲으로 된 성벽”을 소리 내어 찬찬히 낭송해 보세요. 그리고 다시 “작은 당나귀”를 감상해 보세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갈 거예요. 한 편의 시와 그림책, 그리고 내가 꿈꾸는 그곳에 영원히 존재하는 나만의 숲. 그곳에 그 숲이 있습니다. 내 본래의 마음이 그곳에 있어요. 오늘 내가 나에게 전해주는 작은 선물입니다.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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