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연말연시에 플래너를 구입하면 가장 먼저 뭘 하나요? 제 경우에는 생일을 적습니다. 양력으로 지내는 우리 가족 생일이야 굳이 따로 표시하지 않아도 되지만 부모님들 생신은 음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미리 표시를 해두지 않으면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아내와 딸 생일뿐만 아니라 제 생일도 빼먹지 않고 다 메모를 하긴 합니다. 새해를 앞두고 새 플래너의 빈칸에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 한 명 한 명 그들의 생일을 써넣는다는 건 단순히 기억을 거들기 위한 행위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요.

누구에게나 일 년에 단 하루뿐인 생일이니 아주 특별한 날임에 틀림없지만, 인간의 평균 수명(2021년 기준 83.6세)을 놓고 보면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여든 번 이상 맞이하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유난히 생일 챙기는 것을 중히 여기고, 또 어떤 이는 생일을 기억하는 것조차 번거롭고 귀찮은 일로 여깁니다. 혼자서 조용히 보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인들과 밤새도록 놀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도 있죠.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요? 사실 뭐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만 좋으면 그만이죠 뭐~ 여러분 자신의 생일인걸요.

그림책 신간들 중에서 생일 관련 그림책 두 권을 골랐습니다. “생일”은 생일의 의미와 축하의 가치, 그리고 생일을 축하하는 방법의 다양성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완벽한 생일 파티”는 생일 파티를 매개로 세대 간의 소통과 교감을 다루면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톡톡 튀는 탄산음료 같은 특별함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그림책입니다.


완벽한 생일 파티 vs 생일

생일

(원제: Födelsedagen)
글/그림 울리카 케스테레 | 옮김 김지은 | 문학과지성사
(2023/01/08)

곰, 호랑이, 개, 용, 생쥐, 너구리, 조랑말, 사자, 올빼미, 늑대… 다양한 동물들 만큼이나 다양한 생일 축하 방법. 호랑이 레아는 생일날 친구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선물을 주며 자기만 바라봐 줄 때가 가장 좋대요. 올해로 팔백마흔네 살이 되는 용 이고르는 생일이 오는 게 두렵기만 하고, 조랑말 군은 가장 친한 나비 프란스와 함께 다정한 둘만의 생일 파티를 좋아하죠. 물론 사자처럼 생일을 잊어버리는 친구도 있어요.

제가 가장 마음에 든 건 늑대의 생일 축하 방식입니다. 늑대는 생일날 혼자서 아주 멀리까지 배를 몰고 나갑니다. 파티도 없고 케이크도 없죠. 그냥 항해할 뿐입니다. 보통의 날과 다름없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바람에 몸을 싣고 묵묵히 파도를 헤쳐 나가는 오직 나만의 생일 축하. 멋지지 않나요?

생일

오늘은 대단하거나, 조촐한 당신의 날이에요.
어떻게 축하할 거예요?
시끌벅적하게 보낼 건가요?
아니면 잔잔하고 차분하게?
또는 아무 일도 없이?

생일을 보내는 방법은 참 많아요.
어느 방법이든 잘못된 것은 아니랍니다.

생일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날이라고, 진정한 축하는 생일을 맞은 이를 진심으로 아끼고 그의 삶을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그림책 “생일”입니다.


완벽한 생일 파티

(원제: Grandma Z)
글/그림 대니얼 그레이 바넷 | 옮김 김지은 | 노란상상
(2023/02/07)

해마다 특별한 생일 파티를 기대하는 앨버트의 바람과는 달리 엄마 아빠는 아주아주 평범한 생일 축하를 원합니다. 앨버트는 로봇 피냐타와 요술 풍선 강아지, 그리고 의자 빼앗기 놀이 등 화려하고 신나는 파티를 제안해 보지만 지저분한 걸 싫어하는 아빠와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엄마 덕분에 올해도 앨버트의 생일 파티는 생일 양말과 생일 토스트가 전부입니다.

작가 대니얼 그레이 바넷은 호주 사람인데 호주에서는 생일 양말이란 게 있나 봅니다. 그림책 속에 생일 양말 그림이 나오는데 목이 아주 긴 양말이었습니다. 거기에 선물을 담아 주나 했는데 엄마가 ‘그러지 말고 생일 양말이나 신자’고 하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생일 양말은 뭐 그렇다 치고 압권은 생일 토스트입니다. 노릇노릇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에 잼이 발라져 있는데… 명색이 생일인데… 토스트라니… 어쩔 수 없이 체념한 채 소원을 빌기 위해 앨버트가 가만히 눈을 감자 그의 손에 있던 생일 토스트가 초콜릿과 체리가 듬뿍 올려진 멋진 케이크로 변신합니다. 앨버트가 상상 속의 케이크를 두 손에 들고 소원을 빌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앨버트가 문을 열자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축하를 건넵니다. “생일 축하한다, 앨버트. 초콜릿과 체리를 듬뿍 올린 케이크라니 아주 잘 골랐구나. 그럼 이제 나가 볼까?”라고. 앨버트의 상상 케이크를 직접 눈으로 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묘사하며 등장하는 할머니.

지금껏 모노톤이었던 그림은 앨버트가 멋진 케이크를 상상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오렌지 색감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할머니가 등장할 때부터는 밝고 경쾌한 파란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얼마나 특별하고 얼마나 신나는 일들이 펼쳐질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상상하실 수 있죠? 🤩

앨버트와 할머니는 아주아주 신나는 시간을 보냈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다정하게 앨버트를 부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앨버트,
오늘이 정말 특별한 날이 되려면
할 일이 딱 하나 더 남았어.”

완벽한 생일 파티

할머니가 말한 딱 하나 남은 할 일은 과연 어떤 일이었을까요? 해마다 생일이면 앨버트가 그토록 바라고 상상했었던 완벽한 생일 파티 아니었을까요? 바로 위 그림처럼 말이죠.

삭막함까지 느껴지는 생일 토스트가 매년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상상의 힘을 잃지 않은 앨버트의 순수한 동심, 그리고 엄마 아빠의 경직된 훈육 방식에서 벗어나 제약과 경계를 무너뜨리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도와준 할머니의 사랑이 만나 평범함 속에서 아주 특별한 생일의 추억을 만들어냈습니다. 덕분에 그날 이후 앨버트는 평범하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대요.

그동안 난 우리 아이와 제대로 소통하고 있었는지, 난 우리 아이가 정말 바라고 꿈꾸는 것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 혹시 우리 아이가 내가 쌓아 올린 벽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해주는 그림책 “완벽한 생일 파티”입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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