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웃는다
책표지 : Daum 책
아이는 웃는다

오사다 히로시 | 그림 이세 히데코 | 옮김 황진희 | 천개의바람
(발행 : 2017/02/15)

2017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 선정작


미처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그녀의 그림을 일단 보고나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가 이세 히데코의 새 그림책 “아이는 웃는다”. 팬심은 호들갑스레 반가워 하지만 책을 소개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그저 반갑기만 한 일은 결코 아닙니다. 보는 즐거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소개하기는 만만치 않은 게 그녀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웃는다

그림책을 활짝 펼쳐들고 겉표지부터 감상을 시작합니다. 이 한 장만으로도 이 책을 기다린 마음에 대한 보상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 온 글작가의 이름, ‘오사다 히로시’. 낯익은 이름이어서 찾아보니 제 기억이 맞았습니다. 두 작가는 이번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 나이 지긋한 시인과 화가는 만났었습니다.

함께하는 첫 작업을 마친 뒤 두 번째 작품은 “아이는 웃는다”로 하기로 약속했었다는데, 안타깝게도 시인은 그림책이 출간되기 전인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그림책을 보고 있자면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 희망과 절망의 감정들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듯한데, 아마도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을 떠난 시인에 대한 화가의 감정이 스며든 탓인가 봅니다.

“아이는 웃는다”는 일본의 시인 오사다 히로시의 시집 “기적”에 실린 동명의 시를 이세 히데코의 그림을 통해 새로이 만들어낸 그림책입니다.

아이는 웃는다

소리 내어 우는 걸 배웠다.
울다가 그치는 걸 배웠다.
두 주먹 꼭 움켜쥐고
조용히 눈꺼풀 감는 것도 배웠다.
평온하게 잠드는 것도 배웠다.
문득 눈을 뜨고,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아이는 웃는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말 아닌 말이, 웃음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먼 옛날 세상의 처음부터 있었던 말.

사람이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그저 웃음을 짓게 하던
어린 시절, 무엇 하나 배운 것이 없는
아주 잠깐 동안이라고 생각한다.

서는 것. 걷는 것. 멈추는 것.
여기에서 거기까지, 혼자 가는 것.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무언가를 얻는 것일까?
아니다. 배우는 것은 배워서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잃는 것이다.

사람은, 말을 배우고 행복을 잃는다.
그리고 배운 말과 같은 만큼의 슬픔을 알게 된다.

아직 말을 모르기 때문에, 아이는 웃는다.
웃는 것 밖에 모르기 때문에, 아이는 웃는다.
더 이상 웃지 않는 어른을 보고,
아이는 웃는다.

왜 어른이 되면 사람은
묻지 않는 걸까? 이를테면 행복을 잃었다 해도
인생은 여전히 웃음 짓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우선은 그림을 배제하고 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말 아닌 말이 웃음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먼 옛날 세상의 처음부터 있었던 말’, 시인은 그것을 바로 웃음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아이의 웃음 말이죠.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더 이상 웃지 않는 어른을 보고 아이는 웃는다.
행복을 잃었다 해도 인생은 여전히 웃음 짓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아이는 웃는다

아이는 웃는다

아이는 웃는다

아이는 웃는다

아이는 웃는다

아이는 웃는다

앞서도 말했지만 시인의 이야기를 캔버스에 담아낸 이세 히데코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 희망과 절망의 감정들이 아련하게 배어 있습니다.

시인과 화가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 삶에서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은 분리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그리고 시인과 화가는 희망합니다. 슬픔 속에서 기쁨의 웃음이 피어나기를, 절망 속에서 희망이 샘솟기를. 자신들의 시와 그림이 이 세상의 작은 위로와 웃음, 그리고 기적이 되기를.

40대를 훌쩍 넘어서 뒤늦게 그림책 사랑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한 “아이는 웃는다” 역시 그런 그림책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이 지긋한 시인이 인생의 황혼기에 깨달은 삶의 의미, 그리고 그 정수를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낸 화가의 그림, 그림책 “아이는 웃는다”를 통해 아이의 웃음을, 우리가 채워가는 삶의 하루하루가 모두 기적임을 배웁니다.


이 인호

에디터, 가온빛 레터, 가온빛 레터 플러스 담당 | ino@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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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hee Ju
seonghee Ju
2017/10/19 17:19

그림….정말 이쁘네요…어린시절의 순수함을 그대로 살려내는 듯한…
어른이 된 나는 오늘도 웃습니다….나의 어린시절 친구들 덕분에~~^^

정혜경
정혜경
2020/02/11 17:56

푸른 빛깔이 정말 신비롭게 빠져들게 합니다~~^^

최대규
최대규
2020/09/29 16:43

아련한 향수에 젖습니다.
지금은 번화가가 되어버린 홍대앞 거리들,
어릴 적에 기차가 아주 가끔 다니는 철길이 있었고,
그 앞에는 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현상 넘어서 실재의 세계,
플라톤적으로 말하면 이데아를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생명의 세계, 그것은 닫힌 세계가 아니라,
하늘로 열린 세계여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요, 슬픔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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