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를 잡으로 간 빨간 모자

늑대를 잡으러 간 빨간 모자

(원제 : The Last Wolf)
글/그림 미니 그레이 | 옮김 신수진 | 모래알

(발행 : 2018/11/30)


그림 형제가 쓴 “빨간 모자”, 워낙에 유명하다 보니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그림책 등에서 수많은 패러디물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는 동화죠. 2005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작이면서 보스턴 글로브 혼북상 수상작인 “트랙션맨이 왔어요!”를 쓴 미니 그레이의 신작 “늑대를 잡으러 간 빨간 모자” 역시 빨간 모자를 패러디해서 만든 그림책이에요. 원제 “The Last Wolf”를 보고 추측할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강하고 무섭고 위험한 늑대 이야기가 아닌 세상에 홀로 남겨진 마지막 늑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늑대를 잡으로 간 빨간 모자

늑대를 잡으러 가겠다면서 당당하게 집을 나서는 빨간 모자, 그런데 늑대를 잡으러 가는 빨간 모자의 차림새가 재미있습니다. 빨간 모자가 아닌 사냥 모자를 쓰고 장난감 총을 둘러메고 도시락을 챙겨서 나서는 차림새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집 근처 어디선가 한바탕 재미나게 놀다 오겠다는 의미겠죠. 그런 빨간 모자를 보면서 엄마는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지난 백 년간 이 근처에는 늑대라곤 한 마리도 없었으니까’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늑대를 잡으로 간 빨간 모자

숲속을 헤쳐 나가며 나름의 모험을 즐기는 빨간 모자, 무언가 늑대를 닮은 형체와 만날 때마다 흠칫 놀라지만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쓰레기 봉지이거나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였어요. 흠, 숲속에서 늑대를 만나는 일보다 쓰레기를 만나기가 더 쉽다니 이거 좀 심상찮은 분위기죠. 야심 차게 늑대를 사냥하겠다고 선언하며 나섰는데 과연 빨간 모자는 늑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엄마 말대로라면 무려 백 년간이나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빨간 모자가 숲에서 늑대를 만날 일은 절대 절대 없으려나요?

늑대를 잡으로 간 빨간 모자

숲속 깊이 들어갔다 길을 잃고 헤매던 빨간 모자는 커다란 나무 집을 발견했어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나무집,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빨간 모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죠. 손잡이를 돌려 보고 노크도 해보고 부서져라 두들겨 대기도 했거든요. 그러자 한참만에 그곳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빼꼼 내민 이는 다름 아닌…

이 땅에 하나 남은
마지막 늑대였어요.

빨간 모자보다 늑대의 표정이 훨씬 더 조심스러워 보입니다. 사냥감을 만난 기쁨보다는 뭔가 곤란하다는 표정의 이 늑대가 바로 이 땅에 하나 남은 마지막 늑대였죠. 그리고 이 마지막 늑대가 살고 있는 수상한 나무집에는……

늑대를 잡으로 간 빨간 모자

마지막 스라소니와 마지막 곰도 같이 살고 있었어요. 이들 역시 갑작스러운 손님의 등장에 몹시 당황한 표정입니다. 세상에나 인간 아이라니?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위험해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꽤나 멀어 보이는 마지막 늑대와 마지막 스라소니, 그리고, 마지막 곰. 이들은 아늑한 분위기의 집안으로 빨간 모자를 들이고는 함께 차를 마시면서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빨간 모자는 모르는 아주 좋았던 옛 시절의 이야기를…

잠시만 상상해 보세요. 이들에게 아주 좋았던 옛 시절이란 어떤 시절일지, 그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말이에요.늑대를 잡으로 간 빨간 모자

“옛날엔 말이야, 숲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곳곳에 군침 도는 먹잇감들이 차고 넘쳤지.”

‘옛날엔 말이야’라는 말속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오래전 숲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있습니다. 숲이 사라진 자리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의 처지는 안타깝기 그지없어요. 잡동사니 쓰레기 더미를 뒤져 찾아낸 먹이는 볼품없을 뿐 아니라 이미 가공된 것들이라 그곳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보기도 어렵다는 이들의 하소연에 늑대를 잡으러 왔던 빨간 모자는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늑대를 잡으로 간 빨간 모자

날이 저물자 동물들은 빨간 모자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어요.

빨간 모자와 마지막 늑대,
마지막 남은 곰 그리고 마지막 스라소니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숲을 천천히 헤쳐 나갔어요.

숲속 깊이 들어와 길을 잃었다는 빨간 모자,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맙니다. 깊은 숲속 한가운데 자리한 마지막 늑대의 집이 너무도 빤히 보이거든요. 원래 숲이었던 곳을 침범한 수많은 집들이 작은 숲의 숨통을 조이면서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아 보여요. 남은 자리마저 내놓으라고, 아직도 사람들이 살 공간이 너무너무 모자란다고 말이죠.

늑대를 잡으로 간 빨간 모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빨간 모자는 엄마와 함께 나무를 심기로 합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백 년을 살 나무를 위해서는 대단한 것이 필요하지 않아.
씨앗 한 알, 흙 한 줌, 햇살, 공기, 물 그리고…….”

‘……’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나요? 사랑, 관심, 마음? 내 작은 관심이 우리의 미래를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보다 나은 방향으로…

깊은 숲속에 살고 있는 못된 늑대에게 속아 잡아먹히게 된다는 빨간 모자 이야기를 사라진 작은 숲속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마지막 늑대 이야기로 웃프게 바꾸어 버린 그림책 “늑대를 잡으러 간 빨간 모자”, 숲이 사라진 자리에 방치된 마지막 늑대의 모습은 소통이 사라져 단절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계는 훨씬 더 가까워졌지만 이웃끼리의 거리는 오히려 더욱 멀어져 버린 건 어쩌면 예전의 그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숲이 사라져버렸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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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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