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과 독재자

수탉과 독재자

(원제 : The Rooster Who Would Not Be Quiet!)
카르멘 애그라 디디 | 그림 유진 옐친 | 옮김 김경희 | 길벗어린이

(발행 : 2018/06/15)


이 이야기는 밤낮없이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도시 라파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수탉과 독재자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자유롭게 목청껏 노래 부를 수 있었던 자유의 도시 라파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런 자유의 소음에 피곤해하기 시작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노래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졌고 잠을 잘 수도 없다면서 불만스러워합니다. 결국은 시의 운영을 제대로 못한다며 시장을 쫒아내고 새로운 시장을 뽑기로 했대요.

시장 후보로 나선 여러 사람들 중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를 약속한 후보는 오직 페페 씨 한 명뿐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장엔 당연히 페페 씨가 엄청난 표를 얻으며 당선됐죠.

페페 씨가 시장으로 당선 된 다음 날 도시 광장에서는 새로운 법이 공표됩니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말아 주세요.

수탉과 독재자

단순히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말라던 법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공공장소로 제한되었던 법은 집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바뀌었고, 집에서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더니 급기야는 때와 장소에 상관 없이 ‘무조건 조용히!’ 해야만 하는 것으로 개악되기에 이릅니다.

이쯤 되니 주전자마저 보글보글 소리가 날까 봐 두려워하는 지경이 되었어요.

페페 씨가 시장이 된 후 도시가 조용해지자 만족스러워했던 시민들도 시간히 흐를수록 지나친 통제 때문에 살기 힘들어합니다. 주전자조차 보글보글 거릴 수 없는 도시 라파스에서 더 이상 살기 힘들다며 하나 둘 라파스 시를 떠났죠.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 들을 수 있을만큼 조용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법을 익힙니다. 물론 그저 밤에 푹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죠.

수탉과 독재자

라파스 시가 그렇게 아무런 소음 없는 적막한 도시로 바뀌어가던 어느 날 수탉 가이토가 가족과 함께 이사를 옵니다. 망고나무에 둥지를 튼 가이토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수탉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어요.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꼬~끼~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페페 시장은 라파스 시에서는 절대로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법에 정해져 있다며 수탉 가이토에게 침묵을 강요합니다.수탉과 독재자

하지만 말도 안되는 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수탉 가이토는 페페 시장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가이토가 둥지를 튼 망고나무를 잘라 버리거나 감옥에 가두고 굶겨 가며 페페 시장은 침묵을 강요했지만 가이토는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수탉과 독재자

어떤 협박과 회유에도 노래 부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수탉 가이토에게 페페 시장이 마지막으로 꺼내든 카드는 죽음입니다. 한 번만 더 노래를 부른다면 닭고기 수프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페페 시장에게 가이토는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요?

수탉과 독재자

죽은 닭은 노래 부를 수 없지요.
하지만 노래의 힘은 사라지지 않아요.
노래는 작은 수탉 한 마리의 울음소리보다 크고
약한 사람을 억누르는 독재자보다 강하죠.
노래하는 자가 있는 한 노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탉 가이토는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바로 그 때…

수탉과 독재자

라파스 시 곳곳에서 작은 소리가 퍼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꼬끼오’하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하나 둘 울려 퍼지던 작은 소리들이 하나로 힘차게 도시 전체를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이 설 자리가 없음을 뒤늦게 깨달은 시장 페페 씨는 라파스 시를 떠납니다.

수탉과 독재자

라파스 시는 다시 예전처럼 밤낮없이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때론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조금은 불편해도 서로의 목소리를 내며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을.

힘찬 노래로 침묵에 잠긴 도시를 깨워낸 수탉 가이토와 그를 지켜낸 시민들의 이야기 “수탉과 독재자”, 죽음을 직면한 순간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목청을 돋운 가이토를 외면하지 않은 용기 있는 시민들의 함성, 십여 년의 침묵을 깨고 촛불로 일어난 2016년 겨울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수탉은 해가 뜨면 노래를 부릅니다. 대낮에도, 해가 질 때에도, 한밤중에도 노래하죠. 기분이 좋을 때도 노래하고, 아무튼 그게 수탉의 삶입니다.

수탉처럼 어린아이들도 저마다 진실하고 강하며 누구도 짓밟을 수 없는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우리의 신념과 믿음을 스스로 억누르고 자신의 목소리를 삼키는 방법을 익힙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요구에 저항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진실을 외치는 사람은 늘 존재합니다. 무모하든 현명하든 그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에게 노래 부를 용기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 카르멘 애그라 디디

2009년 1월 20일 서울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 철거를 반대하던 시민들이 시위를 하던 중 죽어갔습니다(용산 참사에 관하여).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돈 몇 푼의 보상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함께 가자며 손 내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커녕 무참히 그들의 목숨을 빼았았고, 그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 아프고 갑갑한 건 10년이 지나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 이 순간에도 10주기를 기리는 글들마다 무책임하고 한심스러운 자들의 댓글로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탉 가이토가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목청을 가다듬던 그 순간 연대의 함성을 외쳤던 라파스 시민들처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서로 아끼고 돌보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잇속밖에는 모르는 가진 자들과 정치꾼들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연대임을.

※ 글을 쓴 카르멘 애그라 디디는 쿠바 출신의 난민입니다. “수탉과 독재자”는 쿠바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담아 만든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이 인호

이 인호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 수다에 체력 고갈되어가는 아내를 18년째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남편. 한때 아내가 쓴 딸아이 육아일기에 '396개월 남아'로 등장했었던 그 남아. 그림책 좋아하는 542개월 남아로 폭풍 성장 중 ^^ | 2015년 7월 | ino@gaonbit.kr

One Reply to “수탉과 독재자”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