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등대

안녕, 나의 등대

(원제 : Hello Lighthouse)
글/그림 소피 블랙올 | 옮김 정회성 | 비룡소
(발행 : 2019/04/19)

2019 가온빛 추천 BEST 101 선정작
※ 2019년 칼데콧 메달 수상작


그림책을 만나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탄사를 내뱉게 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제게는 소피 블랙올의 그림책이 그렇습니다. 숨결을 불어넣은 듯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들, 가만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속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치유되는 느낌을 받곤 해요.

2019년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안녕, 나의 등대”는 가족과 함께 헌신적으로 밤바다를 지키던 한 등대지기와 그의 가족, 그리고 등대의 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높이 솟은 등대처럼 그림책을 길쭉한 판형으로 만들었어요. 둥글게 돌아가며 바다를 비추는 등대 불빛처럼 그림책 제목이 등대를 둥글게 감싸고 있습니다. 표지 그림 속 등대 꼭대기에 서 있는 이가 바로 이곳 등대에 새로 부임한 등대지기입니다.

안녕, 나의 등대

등대는 해 질 녘부터 새벽까지 불을 밝혀요.
여기예요!
… 여기예요!
… 여기예요!
… 여기예요!
여기 등대가 있어요!

등대는 해 질 녘 넓디넓은 바다를 향해 노란 불빛을 비추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바다 멀리까지 불빛을 비추어주는 것이 등대의 임무입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도,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날에도, 안개가 자욱이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날에도, 한 겨울 세상이 모두 꽁꽁 얼어붙은 날에도 등대는 한결같이 바다를 향해 외치고 있어요. ‘여기예요, 여기 등대가 있어요’라고. 등대의 외침은 고독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이자 이곳에 존재하는 자신을 믿고 멀리까지 무사히 항해하라는 인사이자 당부이기도 합니다.

안녕, 나의 등대

어느 날, 새 등대지기가 찾아왔어요. 등대지기는 등대의 곳곳을 돌며 자신의 임무를 시작합니다. 등대 렌즈를 깨끗하게 닦고 연료를 채우고 심지를 말끔히 다듬어요. 램프를 돌리는 태엽도 감아놓았죠. 등대지기는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실행했어요. 그리곤 업무 일지에 이 모든 일을 하나하나 기록해 놓았어요.

우뚝 서있는 등대, 그 안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장면이에요. 소피 블랙올은 벼룩시장에서 등대의 안과 밖을 그린 오래된 그림 한 점을 발견하면서 이 그림책의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이후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직접 여러 등대를 찾아가는 수고 끝에 이 그림책의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의 삶은 등대지기나 등대나 다를 바 없어요. 등대 안쪽 일은 등대지기가, 등대 바깥쪽 일은 등대가 맡고 있을 뿐이죠. 등대지기의 일상을 담은 장면과 바다 한가운데 온몸으로 시간을 견뎌내는 등대의 일상을 담은 장면이 번갈아 등장하는 동안 바다의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지나갑니다.

안녕, 나의 등대

등대에 새 식구가 늘었어요. 등대지기에게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주는 배가 그리운 등대지기의 아내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었거든요. 곁에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등대지기의 소원이 마법처럼 이루어진 날입니다. 아내의 등장으로 등대는 전보다 훨씬 온기 가득한 장소가 되었어요.

등대지기가 할 일은 굉장히 많아요. 등대를 지키고 업무 일지를 써 내려가야 하는 일 외에도 불의의 사고를 입어 바다에 빠진 선원들을 구해주기도 해요. 등대지기가 아픈 날에는 아내가 남편을 대신해 그 임무를 수행합니다. 등대 곳곳을 요리조리 뛰어다니고 나선형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그러는 동안에 시간은 꾸준히 흘러갑니다. 바다에 수많은 계절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안녕, 나의 등대

등대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어요. 등대지기의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났거든요. 등대지기는 아내가 편안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고 저녁이 되자 잊지 않고 등대의 불을 밝혀두었어요. 아기가 태어난 것 역시 업무 일지에 적어두었답니다.

등대를 지키러 온 등대지기, 등대지기를 찾아온 아내, 그리고 깜짝 선물처럼 찾아온 아기까지 고즈넉한 밤바다 한가운데 우뚝 선 등대에 온기가 돌아요. 셋이 함께 바라보는 바다는 더욱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안녕, 나의 등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이상 등대지기가 해야 할 업무는 사라졌어요. 등대지기는 이미 알고 있었죠. 머지않아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할 날이 찾아올 거라는걸. 해안경비 대원들이 등대에 전구로 빛을 내는 새 기계를 달고 나자 더 이상 등대지기가 할 일도 없어졌어요. 결국 등대지기 가족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등대를 떠납니다.

세 사람은 부서지는 파도 너머,
점점 멀어지는 등대를 바라보았어요.
안녕, 등대야!
안녕!
… 잘 있어!
…안녕!

다가올 때에도 떠나갈 때에도 등대는 그저 말없이 바다를 비추고 있어요. 등대는 알고 있을 거예요.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등대지기 가족 역시 알고 있어요. 등대와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는지.

끊임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쉬지 않고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등대는 여전히 노란 불빛을 바다에 비추며 외칩니다. ‘여기예요, 여기 등대가 있어요’하고. 그 외침은 이제 등대지기를 향한 그리움의 외침 같습니다. 여기 내가 있는 걸 잊지 말라고, 나 항상 여기에 있다고.

안녕, 나의 등대

등대 홀로 바다를 비추고 있는 장면의 접지를 펼치면 등대의 외침이 공허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바닷가 저편 빨간 지붕 집의 노란 불빛도 바다를 비추고 있어요. 등대를 향해 ‘안녕, 나의 등대야!’하고 외치면서요. 그 빨간 지붕 집에는 등대지기였던 한 남자와 그의 아내와 예쁜 아이가 함께 살고 있어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를 사랑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소피 블랙올은 높은 온도에서 뜨겁게 압착해서 만든 수채화 종이 위에 먹과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바다를 지키는 등대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냈어요. 등대지기 가족들이 정성 어린 손길로 가꾼  등대 안쪽 모습은 둥그런 등대처럼 둥근 화면 분할 방식을 사용해 포근하고 아늑하게 표현했어요.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이 점점 빠르게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는 분명 존재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믿음, 정직한 마음,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등대를 지켰던 사람들의 거룩하고 숭고한 마음 역시 그런 것들 중 하나겠죠.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의 의미를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그림책 “안녕, 나의 등대”, ‘여기예요’ 외치는 이들을 향해 ‘안녕’하고 인사하고 싶어집니다. 때론 혼자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칼데콧 수상작 보기


이 선주

가온빛 대표 에디터, 그림책 강연 및 책놀이 프로그램 운영, "그림책과 놀아요" 저자(열린어린이, 2007),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가온빛 Pinterest 운영 | seonju.lee@gaonbit.kr
5 1 vote
Article Rating
알림
알림 설정
guest

6 Comments
오래된 댓글부터
최근 댓글부터 좋아요 순으로
Inline Feedbacks
모든 댓글 보기
이선주
이선주
2019/05/29 12:56

안녕하세요, 매일같이 방문하여 엄선된 그림책 읽기에 폭 빠져사는 초등 교사입니다. 3학년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곳에 추천된 그림책들을 참고하여 아이들과의 수업이 매우 풍요로워지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실에서 수업할 때 종종 스캔된 그림을 크게 화면에 띄워놓는데요… 스캔된 화면이 선생님의 사진처럼 선명하거나 깨끗하질 않더라고요. 뭐…책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림책을 깔끔하게 스캔하고 싶네요. 혹시 어떤 방식으로 그림책을 스캔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오늘 하루도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이선주
이선주
2019/05/31 09:01
답글 to  이 선주

답변 주셔서 감사해요~ ^^ 경험이 쌓이면 좀 더 사진 찍는 노하우가 쌓일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찍어봐야겠습니다. 오늘은 [토선생 거선생]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합니다. 전래동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어 아이들이 신선하게 생각할 것 같네요. 선생님도 빛나는 금요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이경희
이경희
2019/09/19 10:37

초등학생 아이들과 책읽고 글쓰는 수업을 시작하려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 여길 왔는데 놀랍네요!!! 오랜 시간 쌓아올린 귀한 자료들 보고 배울 수 있어 고맙습니다. 자주 오겠습니다.

가온빛지기
Admin
2019/09/22 23:17
답글 to  이경희

이경희 님, 반갑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림책 읽기와 체험 활동에 가온빛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주 뵈요~ ^^

6
0
이 글 어땠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