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선생 거선생

토선생 거선생

박정섭 | 그림 이육남 | 사계절
(발행 : 2019/05/10)


하얀 종이 위에 먹으로 그린 그림이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입니다. 그 가운데 세로로 걸린 그림책 제목은 “토선생 거선생”, 제목만 듣고 단번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란 걸 눈치챘어요. 자세히 보면 벽에 걸린 족자 속에도 토끼와 거북이가 등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족자 속 둘의 모습이 뭔가 좀 이상해 보입니다. 승자인 거북이는 잔뜩 풀 죽은 표정이고 패자인 토끼가 의기양양해 보이니 말이에요. 소품 속에도 깨알 같은 유머 코드가 들어있어요. 개다리소반 위에 올려있는 ‘토끼와 거북’ 책이며 이 분위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스마트폰 상자와 아이 패드 상자라니… 엽전 꾸러미 옆에 놓인 앙증맞은 토끼와 거북 인형은 또 어떻고요. ^^

토끼가 시건방 떨다 그만
거북이한테 진 이야기는 다들 한번쯤 들어봤지?
그 뒷이야기가 쬐끔 재미지다고 하던데
어디 들어볼 텐가?

토선생 거선생

자존심 빼면 시체인 토선생, 결국 거선생을 찾아가 다시 한 번 경주를 해보자고 졸라댑니다. 하지만 거선생은 그저 시큰둥 할 뿐이에요. 토선생이 날마다 당근이며 최신형 스마트폰, 옛이야기책까지 싸들고 거선생을 찾아와 졸라대지만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불편해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토선생의 소원대로 재경기가 결정되고 맙니다. 거선생은 여전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토선생 거선생

토선생은 공평하게 하자며 거선생의 무거운 등딱지를 짊어지고 경기에 임했어요. 시작 소리와 함께 달려나가는 토선생, 그 무거운 거북 등딱지를 짊어지고도 토선생은 폴짝폴짝 뛰어 저만치 앞서 나갑니다. 하지만 결승선을 앞두고 완전히 지쳐버렸어요. 결국 토선생은 잠시 쉬었다 가기로 결정하고 등딱지를 베개 삼아 쿨쿨 잠이 들고 맙니다. 다시 하면 더 잘할 것 같았지만 결국 똑같은 상황의 반복일 뿐이네요.

거선생의 의견 따윈 상관없이 제멋대로 등딱지를 벗겨 달아난 토선생,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가는 거선생. 토선생의 목표는 거선생을 이겨 구겨진 체면을 되살리는 것이고 거선생은 오로지 자신의 등딱지를 토선생으로부터 되찾는 것입니다. 등딱지가 없으니 너무나 추워 금방이라도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았거든요.

토선생 거선생

감기에 걸린 거선생의 기침 소리에 깜짝 놀라 토선생이 깨어났어요. 간신히 이곳까지 온 거선생이 등딱지를 돌려달라 애원했지만 토선생은 그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할 뿐입니다.

승부란 냉정한 거 아니겠는가?
에잇! 난 바빠서 이만.

그래도 토선생 일말의 가책은 느끼는 모양입니다. 쓰러진 거선생을 슬쩍 돌아보는 표정이 그리 편치 않아 보이니 말이에요.

토선생 거선생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요? 아픈 몸을 이끌고 엉금엉금 기어 오는 거선생을 돌아보다 그만 발밑 낭떠러지를 보지 못한 토선생은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버렸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폭우가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구덩이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위기일발의 순간 토선생을 구해준 이는 다름 아닌 거선생이었어요. 하지만 거선생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토선생 거선생

이제 경주는 의미를 잃었어요. 토선생은 거선생을 업고 비 내리는 산을 걸어내려오면서 말합니다.

내 얼른 약방에 데려다줌세.
마음 푹 놓고 매달려 있게나.
나 빠른 거 알지?

빠른 달리기 실력으로 어떻게든 거선생 한 번 이겨보자 용을 쓰던 토선생, 하지만 이제 토선생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거선생을 위해 약방까지 빠르게 가겠다 약속합니다. 그러나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토선생도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그렇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 날 것 같았지만 꾀돌이 토선생은 그 순간 그림책 바깥의 작가 양반과 독자 양반을 소환합니다. 우리 좀 살려달라고,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이야기가 이대로 끝나버린다면서 말이죠.

독자의 목소리이자 작가의 목소리가 속수무책 쏟아지는 비와 함께 쏟아져 내립니다. 이미 답은 토선생이 쥐고 있다고… 이야기의 시작도 토선생이 했으니 이 이야기의 끝을 결정할 수 있는 이도 토선생입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결정할 수 있는 건 분명 무대 위 주인공일 테니까요.

토선생 거선생

더듬더듬 주변을 둘러보던 토선생, 거선생을 등딱지에 태워 힘차게 밀어냅니다. 으랏차차차차차차! 등딱지를 타고 속도감 있게 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경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슈웅~ 힘차게 내려가던 등딱지가 가속이 붙어 신나게 날아갑니다. 그렇게 날고 날아가다 결국 둘은 그림책 밖으로 날아갔어요.

이야~ 온 세상이 달리 보이는구먼.
혹시 자네도 그런가?

그깟 승부가 뭐라고, 그깟 체면이 뭐라고… 높이 날아 멀리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달라 보였겠지요.

먹의 농담으로 그려낸 흥미진진한 ‘토끼와 거북’의 뒷이야기 “토선생 거선생”, 일희일비하는 인생, 한숨 돌리고 멀리서 바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리저리 꼬이고 꼬인 막막한 상황 앞에서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상황을 풀어갈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요.


※ 그림책 속에서 김홍도와 정선의 풍속화와 산수화를 패러디한 그림을 찾아보세요.

김홍도 ‘주막’, ‘우물가’, ‘씨름’, ‘빨래터’, 정선의 ‘시화상간도’,‘인왕제색도’를 패러디한 이육남 작가의 그림들을 찾아보세요. 먹의 농담으로 표현한 디테일한 그림들이 그림 읽는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 함께 읽어 보세요 : 제리 핑크니의 토끼와 거북이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2 Replies to “토선생 거선생

    1. 좋아요 하트 플러그인이 자꾸 오류를 일으켜서 삭제했습니다. 더 좋은 걸 찾아봤지만 마땅한게 없어요 ㅡ.ㅡ

      쿠룸 님 마음만 받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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