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머나먼 곳 vs. 괴물들이 사는 나라

아주 머나먼 곳
책표지 : Daum 책
아주 머나먼 곳 (Very Far Away)

글/그림 모리스 센닥, 옮긴이 서남희, 시공주니어


아주 머나먼 곳

마틴은 갓 태어난 동생 목욕시키느라 한창 정신 없는 엄마에게 무언가 물어봤어요. 하지만, 엄마는 마틴에게 대꾸해 줄만한 겨를이 없이 바쁘기만 하네요. 서운한 마음에 화가 난 마틴은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어디로 가려는걸까요?

흥. 그럼 난 나가 버릴래.
아주 머나먼 곳으로 가 버릴래.
그곳에선 누군가 내 질문에 대답해 줄 거야.

흠… 과연 그럴까요?

아주 머나먼 곳

아무도 자기를 못알아 보게 카우보이 모자도 쓰고, 가짜 콧수염도 만들어 붙인 마틴은 아주 머나먼 곳을 찾아 가는 길에서 하나 둘 친구들을 만납니다. 모두들 자기만의 ‘머나먼 곳’을 꿈 꾸는 친구들이예요. 제일 늦게 나타난 고양이는 다른 친구들이 머나먼 곳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머나먼 곳이 어딘지 알아.
이 주변을 뺑뺑 돌다가
모퉁이에서 두 번째 창문이 있는 지하실이야.

가고 싶어?

아주 머나먼 곳

고양이가 안내한 머나먼 곳에 도착한 마틴과 친구들. 참새가 자기가 태어난 곳에 대해 말해 주면서 추억에 젖어 들기 시작합니다. 왕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할만큼 고상한 삶을 살았다는 참새가 열심히 지난 날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동안 말은 자기 바램대로 꿈나라에 가 있는 것 같아요. 고양이는 엄마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놀던 시절을 노래했어요.

아주 머나먼 곳

그런데, 처음엔 서로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 주는 듯 했지만 서로 자기 얘기만 하려고 고집 피우다 싸움이 나고 말았어요. 결국 말과 참새와 고양이는 제각기 자신들의 길로 떠나 버리고 마틴만 덩그러니 혼자 남았어요.

아주 머나먼 곳

이제 슬슬 마틴도 집에 가고 싶고, 엄마가 보고 싶어지나봐요.

엄마가 아기를 다 씻겼을지도 몰라.
아직 목욕이 안끝났으면 계단에 앉아
자동차들을 세면서 기다려야지.

그 다음에 엄마가 나한테 말해 줄 거야.
고상하다는게 무슨 뜻인지,
왜 말들은 꿈을 꾸고, 고양이들은 노래할 줄도 모르면서 늘 노래 하는지 말이야.

마틴은 집까지 줄곧 뛰어갔답니다.

엄마가 왜 자신의 질문에 바로 대답해 주지 못했는지 마틴도 잘 알고 있었네요. 그리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엄마의 환한 미소와 편안하기 그지 없는 엄마 품 모두 자기 차지라는 것도 말이죠. 엄마가 있는 집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 가는 마틴의 뒷모습 좀 보세요 ^^

지난 번에 소개했던 그림책  “착한 엄마가 되어라, 얍!“이 생각나네요. 엄마 때문에 화가 났던 소녀가 엄마 흉을 실컷 하고 나서는 ‘그래도 우리 엄마니까 좋다’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처럼, 마틴 역시 엄마 때문에 화가 나 아주 머나먼 곳으로 떠나왔지만 그래도 엄마가 있는 집이 제일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죠.  동생 목욕 시켜 주느라 자신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던 엄마가 미웠던 마틴은 돌아가면서 엄마를 이해합니다. 동생을 다 씻겼을거라고, 아직 안 끝났다면 자기가 기다려 줄 수 있다고(그것도 엄마와 동생이 방해 받지 않도록 계단에 앉아서…^^), 그러고나면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해줄거라구요. 그렇게 마틴은 떠나왔던 곳으로 서둘러 돌아갑니다. ^^ 엄마에게 물어 볼 질문을 가득 안은채로 말이예요.


모리스 센닥은 수많은 작품에 일러스트를 맡아 그렸지만 글과 그림을 모두 작업한 작품은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1956년 글과 그림을 모두 직접 작업한 첫 작품 “Kenny’s Window”를 펴낸 이후 1957년 낸 두번째 그림책이 바로 이 책  “아주 머나먼 곳”입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63년 발표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칼데콧 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아주 머나먼 곳”과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두 50여년 전에 만들어진 그림책이네요. 좋은 그림책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통하는 모양입니다.

여하튼 “아주 머나먼 곳”을 읽다 보니 문득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겹쳐지는 부분이 떠올라 두 작품을 한 번 비교해 보았습니다.

아주 머나먼 곳 vs 괴물들이 사는 나라
(좌) 아주 머나먼 곳(1957) / (우) 괴물들이 사는 나라(1963)
엄마 때문에 화가 난 두 아이, 원인은?

아주 머나먼 곳 vs 괴물들이 사는 나라

우선 마틴은 자신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 엄마때문에 화가 났어요. 그래서 아주 머나먼 곳으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짐을 쌉니다. 마틴은 스스로 엄마를 떠날 준비를 시작해요. 반면에 말썽 전문가인 맥스는 그야말로 온갖 말썽을 피우고 피우다 급기야는 엄마를 잡아먹겠다는 말까지 하는 바람에 저녁 밥도 먹지 못하고 방안에 갇히게 되었죠.

둘 다 엄마 때문에 화가 났지만 조금 차이는 있네요. 마틴은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했던 거고, 맥스는 어쨌든 잘못을 해서 엄마에게 벌을 받는 상황이니까요. 잔뜩 심통이 난 마틴과 맥스의 표정 좀 보세요 ^^

그래서 엄마를 떠나기로 하다.

아주 머나먼 곳 vs 괴물들이 사는 나라

마틴은 짐을 싸고 아무도 못 알아보게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가짜 콧수염을 붙여 변장을 한 채로 집을 떠납니다. 뚜벅뚜벅 걸어서요. 실제로는 집 밖으로 나가 동네 어딘가를 맴돌았겠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말이죠.

맥스는 늘 입고 장난치던 늑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방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맥스호를 타고 멀리 멀리 떠납니다. 환상의 세계로 떠났기 때문에 맥스의 모험이 훨씬 멀고 길게 느껴집니다.

재미난 것은 두 아이의 떠나는 모습이 아주 대조적이란 사실이죠. 아주 머나먼 곳을 향해 떠나는 마틴의 뒷모습은 왠지 쓸쓸해 보이지 않나요? 반면 맥스의 눈 감은 표정은 ‘밥도 주지않고 가두는 엄마 따위 필요없어! 다시는 돌아 오지 않겠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험에서 만난 친구들

아주 머나먼 곳

마틴은 길을 가다 참새와 말과 고양이를 만나게 되요. 셋은 아주 머나먼 곳에서 있었던 행복했던 시절을 상상하며 그리움과 그간의 설움에 눈물을 흘리다 함께 떠나기로 합니다. 누가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닌 서로 친구가 되어서 말이예요. 아주 머나먼 곳을 찾기 위해 마틴은 고양이의 도움을 받습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맥스가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맥스 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괴물들이 사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말썽 전문가 맥스에게 이런 괴물들쯤은 식은 죽 먹기죠 ^^ 괴물들을 단번에 제압하고 괴물들의 왕이 되어 밤새도록 소동을 벌이며 신나게 놉니다.

마틴은 길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긴 하지만 그들의 대장이 되거나 그들과 완벽하게 동화되지는 못해요. 하지만 맥스는 괴물들의 리더가 되고 괴물들은 맥스 없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상상하기도 싫어할만큼 맥스에게 푹 빠지죠.

환상의 세계에서 마틴과 맥스는 정말 행복했을까?

아주 머나먼 곳

마틴은 한 시간 반 동안은 정말 좋았어요. 질문을 마음껏 하고 놀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한 시간 반이 흐르자 각자의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면서 서로 불만이 쌓이고 결국 싸움이 나고 말아요. 엄마가 질문을 안 받아 준다는 이유로 집을 나왔는데, 다른 동물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마틴은 아주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을 통해 자신이 질문을 하는 만큼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받고 싶은 관심만큼 그 사람에게 먼저 관심을 가져 주면 된다는 사실 말이죠.

괴물들이 사는 나라

맥스 역시 괴물들의 나라에서 왕으로 대접 받으며 행복하게 보냅니다. 한바탕 열심히 놀고난 후 저녁 밥도 안주고 괴물들을 잠자리로 쫓아 버리고 나니 집이 슬슬 그리워 지기 시작해요. 배도 고팠을테구요. 무엇보다도 엄마가 보고 싶었겠죠. ‘명령하는 나’보다는 ‘사랑받고 이해 받는 나’로 돌아가고 싶어진거죠.

괴물들 사이에서 왕이 되어 온갖 장난과 말썽을 다 해본 맥스는 현실에서의 엄마노릇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때마침 풍겨 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는 맥스를 보고 싶은 엄마가 있는 현실로 돌아가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죠.

다시 현실세계로!

아주 머나먼 곳

한 시간 반의 한계 시간을 끝으로 싸운 이들은 각자 헤어지기로 합니다. 먼저 말이 머리를 빼서 나오고 참새와 고양이가 나옵니다. 아주 머나먼 곳에 마틴을 혼자 둔채로요.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 결정한 마틴 역시 카우보이 모자를 다시 쓰며 준비를 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아주 머나먼 곳에서 나옵니다.

혼자 남겨진 마틴이 두번이나 배신당했다며 상심했을까요? 마틴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구실을 찾은 셈입니다.^^

아주 머나먼 곳

반면 맥스는 괴물들을 남겨 둔채 맥스호를 타고 집을 향해 떠나갑니다. 괴물들은 맥스에게 매달려 보고 협박도 하면서 맥스를 말리지만 맥스는 미련 없이 손을 흔들며 집을 향해 떠나갑니다. 떠나가는 맥스를 보며 괴물들은 화가 잔뜩 나 있는 표정입니다. 마치 방 안에 갇혔을 때의 맥스처럼요.

마틴, 맥스  집으로 돌아오다!

아주 머나먼 곳 vs 괴물들이 사는 나라

카우보이 모자가 벗겨질까봐 손으로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집으로 돌아가는 마틴은 발걸음이 꽤 급한가 봅니다. 맥스는 집으로 돌아와 처음의 화난 표정과는 달리 그리움에 젖은 표정을 하고 서있습니다. 달빛이 비치는 창가에는 엄마가 가져다 놓은 저녁 식사가 놓여있어요. 늑대옷의 모자를 벗은 맥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아이의 모습입니다.(마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아이들 표정 같아요. 처음의 화난 표정과 비교해 보면)

엄마에게 종종종 달려가는 마틴의 뒷모습이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한편으로는 쑥스러운 것 같기도 한 편안한 미소의 맥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죠? 바로 나의 어린시절이었고,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 아닌가요? ^^  1957년의 아이도 동생이 생기면 질투가 났고, 엄마에게 화가 나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했다는 사실, 그리고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도 그런다는 사실, 스마트폰이 범람하고 화성으로 신혼여행 가는 세상이 온다 해도 그럴거라는 사실! 누가 가르쳐 준것도 아닌데 말이예요.

엄마와 마틴, 엄마와 맥스 사이의 갈등은 특정인게서만 나타 날 수 있는 별다른 감정이 아닙니다. 모든 어른과 아이 사이, 모든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예요.

모리스 센닥은 두 그림책 속에서 엄마의 모습은 가장 현실감 있는 모습으로 그려냈고, 아이의 모습은 상상력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아이는 엄마와의 갈등이 최고조가 되는 시점에서 머나먼 곳으로 떠나 모험을 하고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 돌아오면서  ‘아주 머나 먼 곳은 결국 엄마와의 화해, 사랑과 이해가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그림책 모두 화난 아이를 엄마가 꼭 안아 달래주는 방법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화를 풀고 제 방에서 웃으며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요. 마틴은 자신의 질문을 실컷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화’를 풀게 되었고, 맥스는 맘껏 말썽을 피우면서 ‘화’를 풀게 되었습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앞서 만들어진 “아주 머나먼 곳” 역시 아이들의 마음 속 상처를 깊이 공감해 주고 그들의 반항을 정당화 시켜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화를 풀어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리스 센닥만의 개성이 넘치는 그림책입니다.

아이가 속상한 일, 화난 일로 마음 아플 때 떠나고 싶은 ‘아주 머나먼 곳’이 바로 우리집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


이 선주

이 선주

열여덟 살 딸내미와 폭풍수다에 체력 고갈 중 | 2000년부터 육아, 그림책,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중학교 3년간의 홈에듀케이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 "겨레한가온빛" 운영 | '찾아가는 어린이 책놀이터' 수업 진행 | '그림책과 놀아요'(열린어린이) 출간(2007) | 2016년 4월 | seonju.lee@gaonbi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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